행복을 찾는 빵집

3화.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by 봉봉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눈이 먼저 떠졌다.
커튼 틈으로 얇은 빛이 들어왔다. 방 안은 아직 잠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옆에서 아이가 한 번 몸을 뒤척였다. 이불이 사각 하고 움직였고, 곧 다시 고른 숨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듣다가 혼자 입꼬리를 올렸다.

“얘들아… 진짜 이 시간만큼은 천사야.”

말은 아주 작게 나왔다. 누가 들으면 웃을 말인데,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런 말은 원래 자기한테 하는 거니까.

그녀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발바닥이 차가웠다.


부엌 불을 켜자 형광등이 ‘딱’ 하고 켜지는 소리가 났다.
싱크대에서 물을 틀었다. 물이 철컥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프라이팬을 올리고 계란을 깨는 순간, 작은 균열 소리가 부엌에 퍼졌다. 그 소리가 묘하게 안심이 됐다.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했다. 소리로.

밥솥을 열자 김이 올라왔다. 김이 손가락 끝을 스치자 그녀는 손을 털며 웃었다.

“아, 뜨거.”


그때 방문 문이 열리는 소리.

“엄마….”

첫째가 눈을 반쯤 뜬 얼굴로 문턱에 서 있었다. 머리는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일어났어?”

“나… 늦었어?”

그녀는 시계를 봤다.

“안 늦었어. 근데 늦을 수는 있어. 지금부터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첫째가 눈을 크게 떴다.

“엄마 말 왜 이렇게 무서워.”

“빨리 세수하고 와. 밥 식는다.”

그때 둘째 방에서도 소리가 났다. 이불이 끌리는 소리, 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

“엄마. 나 체육복.”

“어제 의자에 걸어놨어.”

“없어.”

“있어.”

“진짜 없어.”

그녀는 한숨을 쉬는 척하며 부엌에서 말했다.

“그럼 우리 집에 체육복 도둑이 있나 보다.”

둘째가 진지하게 되물었다.

“도둑이 체육복을 왜 훔쳐.”

“그러게. 이상한 도둑이네.”

잠시 뒤 둘째가 방에서 외쳤다.

“엄마! 여기 있었어!”

그녀는 웃었다.

“그럼 도둑은 네 기억력이었네.”

둘째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력은 도둑 아니야!”


식탁에 앉자 두 아이가 동시에 말을 쏟았다.

“엄마 오늘 급식 뭐야?”

“엄마는 급식 안 먹어.”

“그래도 알아야 되잖아.”

“엄마가 어떻게 알아.”

첫째가 말했다.

“엄마는 엄마잖아.”

그 말이 너무 당연해서 그녀는 잠깐 웃었다. 엄마라는 말은 아이들 입에서 세상에서 제일 쉬운 단어로 굴러 나왔다.

“엄마는 엄마지. 근데 급식 담당은 아니지.”

둘째가 물컵을 내밀었다.

“엄마 물.”

“네, 물.”

첫째가 김치를 더 달라고 했고, 둘째는 계란이 더 필요하다고 했고, 그녀는 두 손으로 동시에 뭔가를 옮기며 말했다.

“잠깐만, 엄마 팔이 두 개밖에 없어.”

둘째가 순진하게 말했다.

“그럼 세 개 만들면 되지.”

그녀는 웃었다.

“세 개 만들면 설거지도 세 배야. 싫어.”

첫째가 가방을 메며 말했다.

“엄마 나 오늘 학원 늦게 끝나.”

“몇 시?”

“아홉 시.”

“밥은?”

“학원 앞에서 먹고 올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습관처럼 덧붙였다.

“문자는 꼭 해.”

“알았어.”

둘째가 신발을 신다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내일은 나도 학원 앞에서 먹을래.”

“너는 아직 여섯 시에 끝나.”

“그래도 먹고 싶어.”

“먹고 싶으면… 오늘 집에서 맛있는 거 먹어. 내일은 내일의 너가 결정해.”

둘째가 잠깐 멈칫했다.

“엄마 오늘도 무서워.”

그녀는 웃으며 둘째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엄마는 무서운 게 아니라 현실적이야.”


현관에서 아이들이 번갈아 말했다.

“엄마 다녀올게!”

“다녀와.”

“엄마 사랑해!”

그 말은 둘째의 즉흥이었다. 신발끈도 제대로 안 묶은 채 튀어나가면서 외친 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도.”

문이 닫히자 집이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튀던 소리가 ‘탁’ 하고 사라졌다.

그녀는 현관에 잠깐 서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양말 한 짝을 주워 들었다.

“…얘는 또 왜 여기 있지.”

양말을 세탁 바구니에 넣으며 혼자 웃었다.
그냥… 웃길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매일 작은 코미디를 남기고 갔다.

빨래를 돌리고, 식탁을 닦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잠깐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봤다.

햇빛이 좋았다.
‘오늘 날씨 좋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생각이 따라왔다.
‘오늘 저녁은 뭐 하지.’



저녁이 되자 다시 소리가 집을 채웠다.

“엄마! 나 오늘 진짜 웃긴 거 있었어!”

둘째가 신발도 다 벗기 전에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뭔데?”

“체육 시간에 친구가 공 던졌는데… 선생님 머리에 ‘딱’! 맞았어!”

둘째가 두 손으로 ‘딱’을 재현했다. 그 진지한 표정에 그녀는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 괜찮으셨어?”

“괜찮대. 근데 얼굴이 빨개졌어.”

첫째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건 창피해서 그렇지.”

둘째가 발끈했다.

“아니야! 공이 세서!”

그녀는 밥을 퍼며 말했다.

“세든 약하든, 선생님 머리는 하나뿐이야. 공은 조심.”

첫째가 슬쩍 웃었다.

“엄마 진짜 어른 같아.”

“엄마는 어른이지.”

“근데 왜 가끔 애 같아.”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엄마도 가끔 애로 돌아가고 싶어서.”

둘째가 바로 물었다.

“그럼 엄마도 우리랑 놀이터 갈래?”

그녀는 웃었다.

“놀이터 가면 엄마 무릎 아파.”

“그럼 그네만 타.”

“그네는… 괜찮을지도.”

말이 그렇게 흘러가다, 첫째가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엄마, 나 내일 수행평가 있는데.”

“뭐 하는데?”

“발표.”

둘째가 놀라 말했다.

“형 발표해? 와.”

첫째가 짧게 웃었다.

“너도 할 날 와.”

둘째가 바로 말했다.

“난 발표 안 할래.”

그녀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둘째를 봤다.

“너도 언젠가 해야 할 때가 와. 근데 오늘은 안 해도 돼.”

둘째가 안심한 듯 밥을 먹었다.

그녀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힘든 게 아니라, 살아있는 느낌. 집이 숨 쉬는 느낌.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을 때,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TV를 켜는 것도, 핸드폰을 보는 것도 아닌… 그냥 잠깐의 시간.

그녀는 오늘을 떠올렸다.

아침에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던 목소리, 저녁에 웃었던 장면, 밥상 위의 소란.

‘나는… 잘 살고 있구나.’

그 생각이 먼저 왔다.
그런데 그 다음에 아주 작게,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근데… 나는 오늘 어디 있었지?’

그 질문은 어둡지 않았다.
그냥, 궁금했다.
내가 나를 잠깐 보고 싶어서.


그녀는 겉옷을 걸쳤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순간, 방에서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그녀는 자동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조용히 다녀올게.”

누가 들을 리 없는데도.

골목을 걸었다. 밤 공기가 차가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혼자 걷는 게 이렇게 좋았나.’
그녀는 웃었다.


그러다 작은 불빛을 발견했다. 작은 빵집.

문을 열자 종이 울렸다.

딸랑.

따뜻한 공기와 버터 향이 반겼다.

카운터 뒤 사람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오늘은… 걸음이 가볍네요.”

그녀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가요? 저 그냥… 잠깐 산책하다가요.”

“산책하다가 빵집에 들어오는 분들은 두 종류예요.”

“두 종류요?”

“배가 고픈 분, 그리고… 마음이 고픈 분.”

그녀는 웃었다.

“그럼 저는 둘 다일 수도 있겠네요. 저녁 먹고 나왔는데도 냄새가 너무 좋아요.”

“그럼요. 냄새는 배보다 먼저 들어오거든요.”

그녀가 진열대를 보며 말했다.

“저… 달달한 건 아니고, 너무 묵직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좋다’ 싶은 걸 먹고 싶어요.”

“그 말이 제일 어려워요.”

“그쵸?”

“근데 해결책은 있어요. 크루아상.”

그는 크루아상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요, 엄청난 위로를 하진 않아요. 근데 먹는 동안 ‘아, 이 맛’ 하고 웃게 해요.”

그녀는 접시에 놓인 크루아상을 보고 말했다.

“저 웃고 싶었나 봐요.”

그가 가볍게 맞장구쳤다.

“그럼 잘 오셨어요.”

그녀는 창가에 앉았다.
빵을 손에 들자 따뜻했다.

그녀가 말했다.

“겹이 되게 많네요.”

“버터를 접고 또 접고, 또 접어요.”

“괜히 인생 같네요.”

“인생도 접나요?”

그녀는 웃었다.

“접죠. 애들 옷도 접고, 마음도 접고, 하루도 접고.”

그가 말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하나만 펴놓고 가요. 접지 말고.”

그 말이 가볍게 들렸는데,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녀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진짜 웃기다.”

“뭐가요?”

“맛있어서요. 그냥 맛있는 게 오랜만이라.”

그녀는 눈을 감았다.

햇살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카페였다. 창밖으로는 낮은 집들과 자전거가 지나갔다. 어디선가 접시 부딪히는 소리, 프랑스어가 물결처럼 흘렀다.

그녀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와… 여기 진짜 예쁘다.”

“예쁘죠?”

앞치마를 두른 바리스타가 웃으며 다가왔다.

“처음 오셨어요?”

“네. 근데… 처음인데 이상하게 처음 같지 않아요.”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 말, 여행자들이 자주 해요.”

“여행자요?”

“네. 여기 앉는 순간, 다들 여행자가 되거든요.”

그녀는 웃었다.

“그럼 저도 여행자네요.”

“당연하죠. 여행자는요, 시간을 좀 낭비해야 해요.”

그녀가 되물었다.

“낭비요?”

“네. 일부러.”

그녀는 그 말이 재미있어서 웃었다.

“저는 낭비를 잘 못하는데.”

“그럼 오늘 연습하면 돼요.”

그는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서는 연습해도 아무도 평가 안 해요.”

그녀는 메뉴판을 보며 말했다.

“저 프랑스어 못해요.”

“괜찮아요. 제가 해요.”

“그럼… 추천해 주세요.”

그는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카페 크렘. 우유 거품이 부드러워요. 오늘 같은 날엔요.”

“오늘 같은 날?”

그가 그녀를 보고 말했다.

“웃고 있는데… 손이 조금 바쁘게 움직이는 날.”

그녀는 ‘들킨’ 표정으로 웃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서 일하면요, 사람들 손이 먼저 말해요.”

그녀는 웃으며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저… 아이가 둘이에요.”

그가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몇 살이에요?”

“초등… 아니, 하나는 좀 더 컸고요. 둘이 성격이 완전 달라요.”

“어느 쪽이 더 말이 많아요?”

“둘째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둘째는 하루에 ‘엄마’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몰라요. 근데 그게 귀여워요. 진짜로.”

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엄마라는 이름은… 좋은 이름이네요.”

“좋죠.”

그녀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좋은데… 가끔은요, 제 이름이 생각이 안 나요.”

그 말은 웃으면서 나왔고, 그래서 더 진짜였다.

그가 묻지 않고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그녀를 편하게 했다.

그녀가 덧붙였다.

“우울한 건 아니에요. 행복해요. 애들도 사랑하고, 집도 좋고… 근데 하루가 ‘엄마’로만 꽉 차있으니까.”

“그래서…”

그가 천천히 말했다.

“잠깐 ‘당신’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그가 가볍게 웃었다.

“그럼 오늘은요. 여기서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앉아있는 사람.”

“그럼 제가 뭐라고 불리면 돼요?”

그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원하면 이름으로요.”

그녀가 웃었다.

“제 이름을 제가 요즘 잘 안 부르는데요.”

“그럼 제가 불러줄까요?”

그 농담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녀는 잠깐 숨을 고르고, 아주 작게 말했다.

“…불러보고 싶어요. 제가요.”

그녀는 눈을 감고, 속으로 자기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이라 낯설었는데, 그 낯섦이 싫지 않았다.

그녀는 웃었다.

“아… 있네요.”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럼요. 사라지지 않아요. 잠깐 뒤로 가 있을 뿐.”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러운 거품이 입술에 닿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를 찾는다는 건, 큰 결심이 아니라 이런 작은 한 모금 같은 거구나.’




눈을 뜨자 다시 빵집이었다.
크루아상 끝이 접시 위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그가 먼저 말했다.

“어땠어요. 오늘 여행.”

그녀는 웃었다.

“좋았어요. 진짜로… ‘엄마’가 아닌 시간이었어요. 근데 이상하게 죄책감은 안 들어요.”

“왜요?”

그녀가 생각하다 말했다.

“제가 행복한 엄마라서 그런가 봐요.”

그가 웃었다.

“그럼 완벽하네요.”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크루아상 하나 더 포장해 주세요.”

“누구 드릴 거예요?”

그녀는 웃었다.

“저요.”

“내일 아침에요?”

“네. 아침에 애들이 또 ‘엄마!’ 하고 부르면… 저도 ‘응!’ 하고 웃으면서, 속으로 한 번만 제 이름도 불러보려고요.”

그가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좋은 계획이네요.”

그녀는 봉투를 받아 들고 문을 열었다.


딸랑.

밤 공기가 차가웠다.
그런데 마음은 따뜻했다.

그녀는 집으로 걸어가며 아주 작게 속으로 말했다.

자기 이름을.

그리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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