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는 빵집

4화. 다들 잘 사는 것 같아서

by 봉봉

거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집은 이상하게 어두웠다.

밝기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벽에 닿는 빛도 충분했고 TV 화면도 밝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공간 전체가 조금 눌려 있는 느낌이었다.

TV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크게 웃고 있었고 자막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는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다.
몸은 편한 자세였지만 마음은 어딘가 걸려 있었다.


손에 들린 핸드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켰는데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익숙한 화면.

햇빛이 들어오는 카페 창가 사진.
하얀 접시, 작은 케이크, 환하게 웃는 얼굴.

“오늘도 감사한 하루 :)”

그녀는 화면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

좋아요 숫자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아이 생일 파티.
풍선이 천장 가까이 떠 있었고 케이크 위 촛불이 반짝였다.

다음.

누군가의 승진 소식.

다음.

운동 인증.

다음.

여행 사진.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화면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다들 되게 열심히 산다.”

말이 작게 흘러나왔다.

부러운 건지, 피곤한 건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그녀는 화면을 껐다.

그리고 다시 켰다.

그리고 또 껐다.

가슴 안쪽이 얇게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막히는 건 아니었지만, 숨을 조금 더 크게 쉬어야 하는 느낌.

“왜 이렇게 기운이 빠지지…”

아무 일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그게 더 이상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철컥.

“나 왔어.”

남편이었다.

그녀는 고개만 살짝 돌렸다.

“응.”

남편이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조용해.”

그녀는 잠깐 망설였다.

말할까 말까.

괜히 말하면 별일 아닌 걸 크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말했다.

“나 요즘 좀 이상해.”

“왜 또.”

그 말투가 가벼워서 그녀는 살짝 서운했다.

“왜 또가 아니라… 그냥 좀 그래.”

남편이 부엌으로 가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럼 왜.”

그녀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다들 잘 사는 것 같아서.”

남편이 물을 마시다 멈췄다.

“누가?”

“그냥… 다들.”

남편이 웃었다.

“또 인스타 봤지.”

“...응.”

남편이 소파에 앉았다.

“거기 올라오는 거 다 진짜 아니야.”

그녀는 바로 말했다.

“알아. 근데 알아도 기분이 이상해.”

그녀는 말하려다가 멈췄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나만 멈춰 있는 느낌...?”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멈춰 있다고 느껴?”

그녀는 소파 천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나 하루 종일 열심히 살거든. 근데 밤 되면 아무것도 안 한 느낌이야.”


남편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되게 방향이 있는 것 같은데…”

“너도 있지.”

그녀는 웃었다.

“나 방향 있는 거 맞아?”

그 말이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둘 사이 공기가 잠깐 멈췄다.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그럴 때 있지.”

그녀는 웃었다.

“나 예전에 되게 재밌게 살고 싶었거든.”

“지금도 재밌잖아.”

“가끔.”

잠깐 침묵.

“그냥… 들어줘.”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냥… 나도 잘 살고 싶은데.”

남편이 말했다.

“지금도 잘 살고 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위로인데 위로가 안 돼.”



잠깐 밖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추우니까 겉옷 입고.”

“알겠어.”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걷고, 또 걸었다.

분명 늘 걷던 동네인데, 익숙하지만 낯선 곳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 끝에서 빵집 불빛이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그녀는 걸음을 조금 늦췄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문을 밀자

딸랑.

맑고 작은 종소리가 공기 위로 가볍게 흩어졌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안쪽의 따뜻한 공기와 섞이며 아주 잠깐 공기가 흔들렸다.

따뜻했다.

온도만 따뜻한 게 아니라, 공기가 부드러웠다.

버터가 녹은 듯한 고소한 향이 먼저 코끝에 닿았고, 그 뒤로 커피 향이 천천히 따라왔다.

그녀는 문 바로 안쪽에서 잠깐 멈춰 섰다.

마치 공간의 숨결을 먼저 느끼는 사람처럼.

바닥은 오래된 나무였고, 걸을 때 아주 작은 삐걱거림이 들렸다.

창가 쪽에는 노란 조명이 낮게 걸려 있었고, 유리 진열장 안의 빵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떤 빵은 표면이 살짝 갈라져 있었고, 어떤 빵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그녀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따뜻하다…’

카운터 뒤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은 재빨리 훑는 시선이 아니라, 잠깐 머무르는 시선이었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

“안녕하세요…”

자기 목소리가 공간 안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진열장을 천천히 보다가 말했다.

“…여기 들어오니까 마음이 조금 느려지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웃었다.

“공기가 느리거든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요즘 제 머릿속은 너무 빠른데요.”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 많이 하셨죠.”

그녀는 잠깐 놀란 듯 웃었다.

“티 나요?”

“네.”

그 사람은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비교를 많이 하면… 눈이 조금 더 빨리 움직여요.”

그녀는 진열장 유리를 손끝으로 살짝 만졌다.

“오늘 하루 종일 누군가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화면으로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 조용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다들 잘 사는 것 같아서요.”

그 사람은 잠깐 생각하는 듯했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죠.”

“네.”

“근데 잘 사는 모습은… 보통 한 장면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한 장면이요?”

“네. 영화처럼.”

그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한 장면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상상하거든요.”

그녀는 말이 없었다.

“…맞네요.”

그 사람이 케이크를 꺼냈다.

노릇하게 구워진 표면 위에 황금빛 코코넛 토핑이 얹혀 있었다.

“드뢰메카게예요.”

“덴마크 사람들이 꿈의 케이크라고 불러요.”

그녀는 웃었다.

“지금 저한테 필요한 것 같네요.”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촉촉한 빵 사이로 달콤한 코코넛 토핑이 천천히 퍼졌다.
버터 향이 입 안에 오래 남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잠깐 생각이 멈췄던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공기였다.

차갑지 않았다.

맑았다.

숨을 들이마시자
공기가 가슴 안쪽까지 부드럽게 들어왔다.

마치 한 번도 먼지가 섞인 적 없는 공기처럼
가볍고 투명했다.

그녀는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따뜻한 빵집의 온기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고
그 온기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자전거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바퀴가 포장된 길 위를 부드럽게 스치는 소리.

누군가 웃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시끄럽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공기 안에 잘 섞여 조용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햇빛이 달랐다.

노랗게 내려앉는 빛이 아니라 하얗고 부드럽게 퍼지는 빛.

그 빛은 그림자를 또렷하게 만들지 않고 모든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눈앞에는 낮은 건물들이 보였다.

파스텔톤의 벽, 큰 창문, 창가에 놓인 작은 식물들

누군가는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고 커튼이 아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 발짝 걸었다.

바닥이 낯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와본 적 있는 장소처럼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말소리가 들렸다.

낯선 발음이었다.

부드럽고 천천히 이어지는 언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들이 보였다.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서 있었고,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서두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여기… 어디지…’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카페 앞 작은 칠판이 보였다.

하얀 분필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낯선 언어였다.

그녀는 그 글자를 한참 바라봤다.

그때였다.

옆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First time in Copenhagen?”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햇빛을 등지고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녀는 잠깐 숨을 멈췄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하지만 이상하게 놀랍지 않았다.

그저

‘아…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그녀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이렇게 천천히 걸어본 적 있었나…’

앞에 작은 카페가 보였다.

유리창에는 김이 살짝 서려 있었고 안쪽에는 따뜻한 빛이 퍼져 있었다.


문을 열자

딸랑.

종소리가 낮게 울렸다.

안쪽 공기는 따뜻했다.

빵집의 따뜻함과는 조금 달랐다.

여기는 햇빛이 섞인 따뜻함이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갓 구운 빵 냄새가 아주 옅게 섞여 있었다.

나무 테이블 위에는 작은 꽃병이 놓여 있었고, 흰 꽃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펼쳐놓은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그냥 창밖을 보는 사람

누구도 급해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서 있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의 속도를 느끼는 사람처럼.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살짝 움직이며 낮은 소리를 냈다.

창문 밖에서는 자전거가 지나가고 있었고,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직원이 다가왔다.

밝지만 차분한 표정이었다.

“Hi.”

그녀는 잠깐 웃었다.

“Hi.”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글자를 읽으려 했지만 사실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커피 하나 주세요.”

직원이 웃었다.

“Of course.”

잠시 후 작은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커피에서 김이 얇게 올라왔다.

그녀는 잔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그녀는 바로 마시지 않았다.

그냥 잠깐 손에 쥐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웃음이 자주 섞였다.

맞은편 자리에서는 한 여자가 창밖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했다.

쓴맛이 입 안에 퍼졌다가
천천히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지 않고 누군가의 기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다는 것.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몸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느낌.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그 어색함이 조금씩 풀렸다.

숨이 깊어졌다.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직원이 다시 지나가며 물었다.

“Everything good?”

그녀는 웃었다.

“네… 좋아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되게 편하네요.”

직원이 웃었다.

“Take your time.”

그 말이 마음 안에 조용히 머물렀다.

Take your time.

시간을 써도 된다는 말.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누구도 누군가의 속도를 재촉하지 않는 풍경.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항상 누군가 속도에 맞춰 살았구나.’

손으로 커피잔을 다시 감싸 쥐었다.

따뜻함이 손바닥을 통해 천천히 올라왔다.

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나… 뭐 좋아하지…”

그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처음으로 떠올린 질문 같았다.

햇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테이블 위 그림자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처음으로 조용해졌다.

머릿속이 아니라 마음이.


카페를 나왔을 때 공기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햇빛은 낮게 내려와 있었고 바람은 차갑지 않게 얼굴을 스쳤다.

그녀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할 이유도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발걸음이 이어지는 대로 걸었다.

길은 점점 넓어졌다.

건물 사이로 옅은 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밝은 공간처럼 보였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자 그것이 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다였다.

바람의 냄새가 달라졌다.

짠 냄새가 아주 옅게 섞여 있었고 공기가 조금 더 시원해졌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크지 않았다.

조용히 반복되는 소리였다.

철썩…

잠깐 멈췄다가

철썩…

그 일정한 리듬이 마음을 천천히 풀어놓는 것 같았다.

모래 위로 내려갔다.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신발 안쪽으로 모래가 조금 들어왔지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닷물은 잔잔했다.

햇빛이 물 위에 부드럽게 퍼져 있었고 멀리서 갈매기 한 마리가 천천히 날고 있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걷고 있었다.

아무도 누군가를 의식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파도 가까이에서 멈췄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조금 흔들었다.

그녀는 바다를 바라봤다.

아무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생각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바라봤다.

파도는 계속 밀려왔다가 돌아갔다.

밀려왔다가 돌아가고 다시 밀려왔다.

그 단순한 움직임을 보고 있자 어깨에 힘이 조금씩 빠졌다.

그녀는 문득 느꼈다.

자신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맞추지도 않고 누군가보다 잘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여기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셨다.

바람이 가슴 깊이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늘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살아왔다는 걸.

잘하고 있다는 것, 괜찮다는 것,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렸다.

철썩…

철썩…

그 소리를 듣고 있자 마음 안쪽이 조용해졌다.

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냥 나로 있어도 되는 거구나.”

그 말은 깨달음이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던 말을 처음으로 믿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람이 조금 더 불었다.

코트 자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아도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아무 부족함이 없다는 느낌.

그녀는 잠깐 웃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웃음이었다.

파도가 발끝 가까이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 움직임을 한참 바라봤다.

그녀는 더 이상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바람이 지나갔다.

멀리서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햇빛이 물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바다를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따뜻한 공기였다.

차갑지 않았다.

손끝에 남아 있던 바람의 감촉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익숙한 향이 아주 옅게 퍼져 있었다.

버터와 밀가루, 그리고 막 구운 빵에서만 나는 따뜻한 냄새.

그녀는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눈앞에는 나무 카운터가 있었고 조명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아까와 같은 공간이었지만 어딘가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진열장 안의 빵들은 여전히 조용히 놓여 있었다.

시간이 그 자리만 비켜 지나가는 것처럼 고요했다.

카운터 뒤에서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작게 웃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주인이 물었다.

“어떠셨어요.”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잠깐 생각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느껴지는 말을 꺼냈다.

“…조용했어요.”

잠깐 웃었다.

“…그리고 편했어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잠깐 침묵이 흘렀다.

빵집 안 공기는 여전히 따뜻했고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금속 소리가 났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진열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까 들어올 때와 지금 바라보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그때는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었다.

주인이 빵 하나를 종이에 싸서 건넸다.

둥글고 따뜻한 빵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받았다.

온기가 손바닥에 천천히 퍼졌다.

“…감사해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주인은 웃었다.

“조심히 가세요.”

그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무 바닥이 아주 작게 소리를 냈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따뜻했다.

문을 열었다.

딸랑.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밖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차갑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뒤돌아봤다.

가게 안 조명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주인은 여전히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딸랑.

종소리가 짧게 울렸다.

골목은 조용했다.

가로등 불빛이 바닥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고
바람이 아주 부드럽게 지나갔다.

그녀는 걸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걸음이었다.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짐하지도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상태가 괜찮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손에 들린 빵에서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온기가 이상하게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충분하네.”

밤공기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 끝에서 아주 옅은 빛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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