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도 좀 앉아도 될까
알람이 울리기 조금 전, 유진은 먼저 눈을 떴다.
완전히 깬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몸이 먼저 시간을 기억해 낸 것에 가까웠다.
방 안은 아직 어두웠다.
커튼 틈 사이로 아주 옅은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지만, 그 빛은 방을 밝힐 정도는 아니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을 켜 보지 않아도 지금이 몇 시쯤인지 알 수 있었다. 다섯 시 반 전후. 늘 그쯤이었다.
유진은 눈을 감은 채 잠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옆에서는 남편이 아직 깊게 자고 있었다.
아이들 방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 전체가 아주 잠깐, 누구의 하루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조용한 시간 속에 들어 있었다.
그 시간은 원래 조금 평화로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른 새벽의 고요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에게 그 시간은 오래전부터 시작 전의 정적에 가까웠다.
이제 곧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몸의 침묵.
곧 수많은 일들이 이어질 것을 알고 있는 마음의 짧은 유예.
알람이 울렸다.
작고 단정한 벨소리였다.
유진은 재빨리 손을 뻗어 소리를 껐다. 혹시라도 남편이나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그녀는 늘 알람이 두 번째 울리기 전에 꺼 버리는 사람이었다.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키자 바닥이 조금 차가웠다.
유진은 발끝으로 실내화를 찾았다.
방문을 여는 손놀림도 자연스럽게 조용했다.
주방으로 나왔을 때, 집 안은 아직 밤 같았다.
냉장고 작은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창문 바깥은 잿빛도 아닌, 푸른빛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유진은 싱크대 위에 놓인 컵에 물을 한 잔 따랐다. 물 마시는 소리조차 크게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서야 그녀는 부엌 불을 켰다.
형광등 불빛이 탁, 켜지면서 부엌이 한 번에 현실로 돌아왔다.
식탁 위에 어젯밤 미처 접어 두지 못한 행주가 보였고, 아이들 물통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구석에는 오늘 아침에 써야 할 도시락 통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유진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계란, 반찬통, 어제 손질해 둔 채소, 햄, 우유, 아이들 요거트. 손은 익숙하게 움직였다.
무엇을 먼저 꺼내고, 어떤 순서로 불을 켜고, 언제 밥솥을 열어야 하는지, 그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오래 해 온 일은 몸이 먼저 기억했다.
프라이팬 위에서 기름이 얇게 퍼지는 소리가 났다.
달걀을 깨뜨리자 흰자와 노른자가 퍼지며 작게 치익 소리를 냈다.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고, 도시락 반찬을 덜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를 굽고, 남편이 출근길에 먹을 커피를 내리기 위해 캡슐을 기계에 넣었다.
지이잉.
커피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밀어냈다.
그 사이 유진은 밥솥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어제보다 밥이 조금 적게 남아 있었다. 점심 도시락 두 개를 싸려면 아주 모자라지는 않겠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다. 유진은 잠깐 계산하듯 밥 양을 눈으로 가늠한 뒤, 반찬 배치를 바꿨다. 아이 도시락에는 밥을 조금 더 넣고, 자기 것은 줄이는 식의 작은 조정은 이제 너무 익숙해서 조정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었다.
“엄마…”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부엌 문턱에 서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눌려 있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응, 일어났어?”
유진은 달걀을 뒤집으며 말했다.
아들은 잠깐 멍하게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말은?”
“서랍 두 번째 칸.”
아이의 질문은 매일 비슷했다.
그리고 유진의 대답도 매일 비슷했다.
누군가는 그걸 귀찮다고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유진은 오래전부터 그런 감정을 지나온 사람이었다. 지금은 귀찮음보다는 자동에 가까웠다.
잠시 후 둘째가 나왔다.
세수를 했는지 얼굴은 젖어 있었고, 머리카락 끝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졌다.
“엄마, 나 머리 좀 묶어 줘.”
유진은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은 뒤 아이 뒤로 섰다.
고무줄을 입에 잠깐 물고, 손가락으로 잔머리를 모아 묶었다.
아이 머리에서는 샴푸 냄새가 났다. 아직 어린 살 냄새와 섞인 그 냄새는 너무 익숙해서, 어떤 날은 그게 하루의 첫 번째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시간이 빨랐다.
늘 그렇듯, 아침은 생각보다 더 빨리 자기 몫을 다해 버렸다.
남편도 방에서 나왔다.
셔츠 단추를 채우며 식탁에 앉았다.
그는 하품을 한 번 하고, 유진이 내려둔 커피 잔을 손에 쥐었다.
“오늘 비 온대?”
“오전엔 괜찮고 오후부터 온대.”
“아이들 우산 챙겨 줬어?”
유진은 대답 대신 현관 쪽을 가리켰다.
“문 옆에 세 개 세워놨어.”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무심해서라기보다, 너무 당연한 흐름이 되어 버려서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유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는 것과 괜찮은 것은 늘 같은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부엌을 한 번 더 정리하고 나니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아까 새벽의 조용함과는 달랐다.
이번의 조용함은 이미 많은 소리를 지나온 뒤의 조용함이었다.
컵이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 목소리, 현관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 물 끓는 소리, “엄마 내 거 어디 있어” 같은 질문들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야 잠깐 찾아오는 짧은 비어 있음.
유진은 싱크대 앞에 서서 마지막 컵 하나를 헹궜다.
물줄기가 컵 안쪽을 때리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 컵을 뒤집어 건조대에 올려두고 잠깐 벽시계를 봤다.
지금부터는 자기 출근 시간이었다.
아직 자기 얼굴도 제대로 못 들여다본 채, 유진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를 묶고, 얇은 화장을 했다. 거울 속 얼굴은 늘 보던 얼굴이었다. 피곤해 보이지 않게 정리된 얼굴. 회사에서 누가 봐도 “정돈된 사람”으로 보일 얼굴.
그 얼굴을 잠깐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거울 속 사람이 정말 자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붙잡을 수는 없었다.
출근해야 했다.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비슷한 표정이었다.
완전히 깨어 있지도, 그렇다고 잠든 것도 아닌 얼굴들.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멍한 표정으로 광고판만 보고 있었다.
유진은 문 옆에 서 있었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유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응, 엄마.”
엄마 목소리는 아침부터 조금 바빴다.
“유진아, 너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되니?”
유진은 반사적으로 머릿속 일정을 떠올렸다.
아이들 학원. 장보기. 밀린 집안일. 시댁 가는 날이었나. 아니면 다음 주였나.
“왜요?”
“외삼촌 제사 있잖아. 이번엔 좀 일찍 와서 나 좀 도와줘야겠다.”
유진은 아무 말 없이 잠깐 고개를 숙였다.
전철 안내 방송이 머리 위에서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엄마는 말을 이었다.
“네 동생은 애가 어려서 그렇고, 막내는 지방에 있고… 결국 네가 와야지, 어떡하니.”
그 말은 원망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당연해서, 설명조차 필요 없다는 식으로 들렸다.
유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제가 갈게요.”
“그래, 역시 우리 딸밖에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 유진은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잠깐 바라봤다.
역시 우리 딸밖에 없다.
좋은 말이었다.
고맙고도 무거운 말.
그녀는 그 문장이 가슴 어디에 걸려 있는 느낌으로 다음 역까지 서 있었다.
회사에서는 늘 하던 일들이 이어졌다.
메일 확인.
회의.
자료 정리.
갑자기 수정된 일정.
점심시간 직전까지 이어진 팀장 호출.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늘 말했다.
“유진 씨는 진짜 꼼꼼해요.”
“유진 씨 없으면 이거 누가 해요.”
“역시 맡기면 깔끔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괜찮아요.”
그 말도 오래전부터 자기 입 안에서 자연스럽게 굳어 버린 말들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시어머니였다.
유진은 잠깐 숨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유진아, 바쁘지?”
유진은 본능적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그 말이 나온 뒤에야
정말 아닌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시어머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주말에 김장 조금 일찍 할까 하는데, 너 토요일 오전에 좀 일찍 와줄 수 있니?”
유진은 잠깐 눈을 감았다.
토요일 오전.
친정 제사 준비.
아이들 일정.
그리고 시댁 김장.
머릿속에서 시간이 겹쳐졌다.
“아… 제가 토요일에 친정 쪽 일이 조금 있어서요.”
시어머니는 금방 말했다.
“아이고, 그래? 그럼 토요일은 어렵겠네.”
그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이해심 있어 보여서, 유진은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시간 맞춰볼게요.”
그 말이 또 먼저 나왔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유진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아직 수정 중이던 문서가 떠 있었다.
행이 정렬되지 않은 표가 눈앞에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 위에 머물지 못했다.
왜 항상 내가 먼저 맞춰 보겠다고 말할까.
그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바로 다른 생각이 덮었다.
그래도 도리는 해야지.
그 말은 누가 방금 해준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안에는 오래전부터 그 문장이 있었다.
장녀니까.
며느리니까.
엄마니까.
좋은 사람이니까.
그 문장들은 너무 오래 그녀 안에 살아서 이제는 자기 생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퇴근길은 아침보다 더 피곤했다.
몸은 무거웠고, 머릿속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들로 가득했다.
장 봐야 할 것들이 떠올랐고, 아이들이 내일 학교에서 준비해야 할 준비물이 생각났고, 친정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 하나 싶었고, 시어머니께는 뭐라고 시간을 조정해 말씀드려야 하나 생각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은 아침보다 조금 더 흐려 보였다.
집 근처 마트에서 우유와 두부와 파, 달걀을 샀다.
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손가락 사이가 조금 아팠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웠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숙제를 봐주고, 내일 챙길 것들을 확인하고, 남편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고, 부엌을 다시 정리하고 나니 시계는 어느새 열 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때서야 집 안은 겨우 조용해졌다.
유진은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마지막 접시 하나를 닦고 있었다.
따뜻한 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엌 형광등은 희고 단단한 빛으로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냉장고는 낮게 웅웅거렸고, 창문 바깥에는 차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가며 빛을 남겼다.
그녀는 접시를 헹구다가 잠깐 손을 멈췄다.
싱크대에 두 손을 짚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 순간, 하루 종일 겨우 버티고 있던 생각 하나가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언제 쉬지.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저렸다.
쉬는 시간은 있었다.
분명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앉아 있는 시간도 있었고, 아이들이 잠든 뒤 휴대폰을 넘기며 멍하니 있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지쳐서 주저앉아 있는 시간에 더 가까웠다.
정말로 자기가 편해서, 누구의 기대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런 시간이 있었던가.
유진은 아주 천천히 물을 잠갔다.
물방울이 싱크대 안쪽으로 떨어졌다.
툭.
툭.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그녀는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손등은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요즘 로션을 제대로 바른 적이 있었나 잠깐 생각했지만, 그것도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밤공기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녀는 가디건 소매를 손등까지 조금 더 끌어내렸다.
골목은 조용했다.
가로등 불빛이 바닥 위에 둥글게 퍼져 있었고, 멀리서 누군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잠깐, 집이라는 공간 바깥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몇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골목 끝에서 노란 불빛 하나가 보였다.
따뜻한 빛이었다.
유진은 걸음을 멈췄다.
이 길을 몇 년째 다니고 있었는데 저런 가게가 있었던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빛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유진은 천천히 그 빛 쪽으로 걸어갔다.
유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골목 끝의 불빛은 가까이 갈수록 조금 더 따뜻하게 보였다.
가로등의 하얀 불빛과는 다른 색이었다.
조금 더 노랗고, 조금 더 부드러운 빛.
마치 오래된 카페나 작은 식당 창문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처럼, 사람의 온도가 섞여 있는 빛이었다.
그녀는 잠깐 멈춰 섰다.
간판이 보였다.
조그마한 나무 간판이었다.
요즘 가게들처럼 번쩍이거나 디자인이 화려하지 않았다.
나무 판에 손으로 새긴 것 같은 글씨가 조용히 새겨져 있었다.
"행복을 찾는 빵집"
유진은 그 글자를 한 번 더 읽었다.
행복을 찾는 빵집.
이상한 이름이었다.
행복을 판다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빵집도 아니고.
행복을 찾는 빵집.
그녀는 그 말이 왜인지 모르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가게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문 위에는 작은 종이 달려 있었다.
유진이 문을 밀자
딸랑.
맑은 소리가 아주 작게 울렸다.
그 소리는 조용한 밤 골목에서 들리던 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가게 안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유진은 한 발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달랐다.
밖의 밤공기는 조금 차가웠는데
가게 안의 공기는 부드럽게 따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있었다.
갓 구운 빵 냄새.
버터가 녹으면서 나는 고소한 향, 설탕이 살짝 캐러멜처럼 녹을 때 나는 달콤한 냄새, 밀가루가 구워질 때 나는 따뜻한 향.
그 냄새는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였다.
유진은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가게는 크지 않았다.
벽은 따뜻한 베이지색이었고 천장에는 작은 전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었다.
빛은 밝지 않았지만 공간을 충분히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왼쪽에는 작은 테이블 두 개가 있었다.
누군가 앉아 있다가 방금 일어난 것처럼 의자가 조금 뒤로 빠져 있었다.
창가에는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올리브나무였다.
작은 잎들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게 한가운데 긴 나무 진열대가 있었다.
그 위에는 빵들이 놓여 있었다.
많은 종류는 아니었다.
크루아상, 스콘, 작은 타르트, 치아바타 같은 빵 몇 가지.
그리고 진열대 한쪽에 작은 접시에 놓인 디저트가 하나 있었다.
작고 네모난 투명한 통에 담긴 디저트였다.
코코아 가루가 위에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유진은 그걸 잠깐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 뒤에 여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마흔쯤일 수도 있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을 수도 있었다.
머리는 길게 묶어 뒤로 넘겨 놓았고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앞치마에는 밀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 여자는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처음 오셨죠.”
유진은 잠깐 당황했다.
“아… 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오는 분들이 더 많아요.”
유진은 잠깐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여기… 언제 생겼어요?”
여자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필요한 사람에게 보일 때요.”
유진은 그 말을 듣고 웃을지 말지 잠깐 망설였다.
장난처럼 들리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자는 진열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많이 힘들었네요.”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여자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런 날이 있어요.”
잠깐 조용해졌다.
가게 안 어딘가에서 오븐이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유진은 진열대를 바라봤다.
“빵… 사야 하나요?”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빵을 하나 고르죠.”
“왜요?”
여자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게 조금 도움이 되거든요.”
유진은 잠깐 그 말을 생각했다.
도움.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수십 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
회사에서.
친정 엄마에게.
시어머니에게.
하지만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고른 적이 있었던가.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그 디저트에 멈췄다.
투명컵에 담긴 디저트.
여자는 말했다.
“티라미수예요.”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천천히 설명했다.
“이탈리아 디저트죠.”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뜻은…”
그녀는 유진을 바라봤다.
“나를 끌어올려 줘.”
유진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여자는 투명컵을 조심스럽게 접시에 올렸다.
그리고 유진 쪽으로 밀어 주었다.
“오늘은 이게 좋겠네요.”
유진은 잠깐 그 디저트를 바라봤다.
코코아 가루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숟가락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티라미수를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달았다.
하지만 무겁지 않았다.
커피 향이 아주 부드럽게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가게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주 조금.
마치 누군가 창문을 열어 다른 나라의 공기를 들여보낸 것처럼.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가게 창문 바깥의 밤 골목이 조금 달라 보였다.
티라미수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유진은 숟가락을 입에서 천천히 빼냈다.
처음에는 코코아 가루의 쌉쌀한 향이 살짝 느껴졌고, 그 다음에는 마스카르포네 치즈의 부드러운 단맛이 혀 위에 퍼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커피에 적신 사보이아르디의 향이 아주 은은하게 남았다.
그녀는 그 맛을 잠깐 가만히 느꼈다.
빵집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오븐에서 나는 아주 작은 열 소리, 어딘가에서 나무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자기 숨소리.
유진은 숟가락을 다시 티라미수에 넣었다.
한 번 더 떠올렸다.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웃는 소리였다.
겹쳐지는 목소리였다.
유진은 잠깐 숟가락을 멈췄다.
그 소리는 점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
버터 냄새 대신 올리브오일 냄새가 났다.
토마토의 신선한 향, 바질의 초록 냄새, 와인이 공기 속에 아주 얇게 섞여 있는 향.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있던 빵집의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햇빛이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었다.
노란빛에 가까운 따뜻한 빛이 창문을 통해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유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는 지금 집 안에 서 있었다.
오래된 이탈리아식 집 같았다.
벽은 두꺼운 회색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창문은 나무 프레임이었고, 바닥은 테라코타 타일이었다.
창문 밖에서는 빨래가 흔들리고 있었다.
흰 셔츠 한 장이 바람에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커다란 나무 식탁 주위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열 명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와인을 따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접시를 옮기고 있었고, 누군가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빠르고 음악처럼 흘러갔다.
이탈리아어였다.
“Marco! Non così!”
“Ah, mamma!”
“Lascia stare!”
사람들이 웃었다.
유진은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그녀를 발견했다.
짙은 곱슬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였다.
앞치마를 하고 있었고 손에는 큰 접시가 들려 있었다.
여자는 유진을 보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유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거기 서 있지 말고 와서 앉아요!”
유진은 잠깐 멈칫했다.
“제가… 앉아도 돼요?”
여자는 눈을 크게 뜨더니 웃었다.
“당연하죠!”
그리고 뒤에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Marco, sedia!”
마르코라고 불린 남자가 바로 의자를 하나 끌어왔다.
나무 의자였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끄르륵.
그 소리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유진은 천천히 앉았다.
식탁 위에는 음식이 가득했다.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큰 그릇에 담긴 파스타, 올리브와 빵, 샐러드, 와인병 두 개.
누군가 유진 앞에 빵을 하나 놓아 주었다.
따뜻했다.
아직도 약간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옆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오늘은 가족 저녁이에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그 장면을 잠깐 바라봤다.
그 순간 문득 한국의 식탁이 떠올랐다.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아마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유진아, 물 좀 가져와라.”
“유진아, 접시 좀 더 꺼내라.”
그녀는 그 생각을 하다가 조금 놀랐다.
여기서는 그런 말이 없었다.
누가 해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필요한 사람이 움직였다.
그때 앞치마를 한 여자가 말했다.
“오늘 요리는 내가 했어.”
옆에 있던 남자가 웃었다.
“하지만 다음 주는 내가 안 해.”
사람들이 웃었다.
“왜?”
남자가 말했다.
“쉬어야 하니까.”
그 말은 너무 가볍게 흘러갔다.
쉬어야 하니까.
유진은 그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 말이 자기 삶에서는 왜 그렇게 어렵게 들렸을까.
옆에 앉은 여자가 물었다.
“유진, 뭐 생각해요?”
유진은 잠깐 웃었다.
“그냥…”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조금 다르네요.”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유진은 식탁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누군가는 와인을 따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빵을 찢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냥 앉아 있었다.
“누가 해야 한다는 느낌이 없어요.”
여자는 잠깐 유진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당연하죠.”
그리고 말했다.
“가족이니까.”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여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그래도 각자 자기 삶이 있잖아요.”
그 말은 너무 평범하게 들렸다.
마치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처럼.
유진은 그 말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굴려 보았다.
각자 자기 삶이 있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누군가의 삶 속에서만 살아왔다는 것을.
딸로.
장녀로.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그 역할들은 모두 진짜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유진은 없었다.
그때 앞치마를 한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유진.”
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마요.”
유진은 놀라서 물었다.
“제가요?”
여자는 웃었다.
“응.”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그냥 앉아 있어요.”
유진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식탁 위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웃고 있었고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진은 아주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걸까.
그리고 그 생각이 이상하게도 조금 따뜻했다.
식탁 위의 공기는 따뜻했다.
와인잔이 서로 닿을 때마다 맑은 소리가 짧게 울렸다.
딸깍.
그 소리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는 달랐다.
얇은 유리가 서로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웃다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는 빠르게 흘러갔다.
유진은 그 말들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분위기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편안했다.
억지로 예의를 차리는 느낌이 없었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도 없었다.
그저함께 있는 사람들 같았다.
유진은 식탁 위의 접시들을 바라봤다.
토마토가 올려진 브루스케타, 올리브가 담긴 작은 그릇, 큰 접시에 담긴 파스타.
그리고 빵.
막 잘라 놓은 빵의 단면이 보였다.
올리브오일이 살짝 스며들어 있었다.
유진은 잠깐 손을 움직였다.
포크를 들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의 시선이 식탁 위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누군가 물병을 집어 들었고 다른 사람이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유진의 몸이 아주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그녀는 의자를 조금 밀었다.
일어나려는 몸의 움직임.
거의 자동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누군가 물을 따라야 한다.
누군가 접시를 더 가져와야 한다.
누군가 냅킨을 챙겨야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먼저 올라왔다.
유진은 의자를 조금 더 밀었다.
그때였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했다.
“유진.”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였다.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어디 가요?”
유진은 잠깐 당황했다.
“아… 물… 제가 따라 드리려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리고 손으로 가볍게 식탁 반대편을 가리켰다.
마르코가 이미 물병을 들고 있었다.
유진은 잠깐 멈췄다.
몸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그녀는 잠깐 말을 고르듯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항상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유진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여자는 빵을 한 조각 찢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요리했고 마르코가 물을 따르고 안나는 샐러드를 만들었어요.”
그녀는 포크로 샐러드를 집었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하겠죠.”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누군가가 항상 하는 건 조금 이상하잖아요.”
그 말은 부드러웠지만 유진의 마음 어디에 아주 작게 닿았다.
누군가가 항상 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유진은 그 문장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반복했다.
한국에서는 그 문장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지.”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주 정해져 있었다.
그녀였다.
며느리.
장녀.
맡길 수 있는 사람.
잘 해내는 사람.
좋은 사람.
그때 식탁 반대편에서 어떤 노년의 여자가 말했다.
이 집의 어머니인 것 같았다.
“유진.”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노년의 여자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는 유진을 한 번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그녀는 잠깐 말을 찾았다.
“…며느리가 항상 일하나요?”
식탁이 잠깐 조용해졌다.
유진은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 꼭 그런 건 아닌데…”
말이 조금 꼬였다.
노년의 여자는 조용히 웃었다.
“여기서는 아니에요.”
그녀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가족은…”
잠깐 생각했다.
“…서로 돕는 거지 누군가가 계속 봉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말은 아주 조용하게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유진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노년의 여자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유진을 바라봤다.
“손님은 더더욱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사람들이 웃었다.
유진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서 그녀의 마음 어딘가가 아주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유진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녀의 손은 식탁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손.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식탁 위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크게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파스타를 더 덜어 주고 있었고 누군가는 와인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유진을 바라보지 않았다.
누구도 “유진 씨가 해야죠.”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유진은 아주 작은 깨달음을 느꼈다.
그녀가 일어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세상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게 조금 따뜻했다.
유진은 조용히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걸까.
그리고 그 질문은 처음으로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그 순간 유진은 문득 아까 먹었던 티라미수의 맛을 떠올렸다.
코코아의 쌉쌀함.
그리고 부드러운 단맛.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식탁 위의 불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와인 냄새 대신 버터 냄새가 났다.
토마토 향 대신 빵 냄새가 났다.
유진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그 빵집 안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열대 위에는 아까 보았던 빵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작은 전구들이 천장에 달려 있었고 창문 밖에는 다시 한국의 밤 골목이 보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진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 뒤에는 그 빵집 주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주인은 유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물었다.
“어땠어요?”
유진은 잠깐 생각했다.
그녀는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따뜻했어요.”
주인은 아주 작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좋은 식탁이었네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유진은 아주 조용히 물었다.
“저도…”
그녀는 잠깐 말을 멈췄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주인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유진 씨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요.”
유진은 눈을 깜빡였다.
주인은 덧붙였다.
“다만…”
그녀는 진열대 위의 티라미수를 바라봤다.
“…유진 씨가 유진 씨 자리를 아직 비워 두고 있었을 뿐이에요.”
유진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빵 냄새가 났다.
따뜻한 냄새였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그녀는 자기 이름을 조용히 마음속에서 불러 보았다.
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