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ille Jun 26. 2024

프롤로그: 여행을 싫어했던 여행가의 고백


오래전부터 여행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전에...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군요.


여행을 싫어했습니다.


주도권과 목표 달성이 생명인 엔티제(ENTJ)에게 어린아이처럼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여행은 기피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짝꿍은 여행을 참 사랑하는 인프피(INFP)입니다. A와 B를 보고 C에 도착하는 것이 그날의 일정이라면 나의 최우선 목표는 작전을 세우고 깃발을 꽂으며 전진하는 것입니다. 각 지점에서 보내야 할 시간과 이동 거리, 숙소 도착 시간 등을 정확히 계산해 둡니다. 그런데 인프피님은 B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풀어놓느라 떠날 줄을 모릅니다. 아니면 갑자기 C가 아닌 D로 가보자고 해서 엔티제의 머리를 하얗게 만듭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여행을 다녀와 뭉클하게 기억나는 추억은 '보고 왔다' '갔다 왔다'는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짝꿍이 만들어 준 그 특별한 시공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길들임인지, 가스라이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엔티제와 인프피


여행지는 여전히 나에게 조금은 어색한 "낯선 곳"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걸었던 그곳, 그 시간은 생경하면서도 설레는 경험입니다. 아마도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그 첫 경험은 내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나 봅니다. 허먼 멜빌이 "진정한 장소는 지도에 쓰여있지 않다"라고 말한 것처럼, 여행의 진정한 장소들은 계획이나 일정표가 아니라  내 머릿속 사진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활짝 열려있던 나의 지각과 감성, 기대와 감정들이 그곳의 시공과 사람을 만나 '찰칵' 마음속 엽서로 찍힌 그 마법의 순간, 그리고 뒷면에 기억의 잉크로  사연...


그렇게 낯선 곳에서 찍은 한 컷, 한 컷을 기록합니다. 이 글이 혹시나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에 교차해서 걸었던 동료 여행객의 이야기와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크로아티아의 어느 시골길. 2022.
To travel is to live.
- 안데르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