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Devil's Advocate: 악마의 대변자로 악역을 맡다. 토론을 위해 반론을 제기하는 역할을 하다.
Devil's advocate은 흔히 악덕 변호사나 희대의 악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를 칭하지만 그 기원은 보다 심오하다. 이 용어는 16세기 말엽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처음 등장한다. 새로운 성인을 선포하기 전에 '악마의 대변자'로 공식 임명된 사람들은 시성(諡聖)을 청원한 '신의 대변자(God's advocate)'들의 반대 입장에서 성인 후보의 성품과 관련된 기적 등에 대해 교차 검증하고 비판적으로 논쟁한다. 청원자들이나 해당 후보를 존경하는 입장에서는 악마의 편에 선 것 같은 이 반대자가 눈에 가시 같았겠지만, 혹독한 검증 절차를 거쳐 시성 된 성인들은 포퓰리즘이나 정치적 구설수에서 벗어나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악마의 대변자의 별칭이 믿음의 옹호자(promotor fidei)인 이유는 이들의 불편한 반대가 결국 공동체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는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식 토론은 악마의 대변자가 되거나 그를 상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형제도나 안락사 등의 첨예한 이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모두 준비해야 한다. 토론은 결국 대중에 대한 설득으로 승패가 갈리지만 참가자와 관람자는 양쪽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며 이슈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갖게 된다.
역사와 게임을 떠나 현실계로 돌아오자면...
개인 대 집단의 구도 속에서 악마의 대변자는 말 그대로 악마로 몰려 욕을 먹기 일쑤다. 정치판에서건 회사에서건 학교에서건, 나 홀로 다른 생각과 반대 입장을 밝혔다가는 온갖 협박과 조롱과 따돌림을 각오해야 한다: 그는 반대만 해서 불편하다. 불평분자다. 공동체의 암적인 존재다...
He always plays the devil's advocate. What a nuisance!(걘 언제나 반대만 해. 성가신 녀석!)
교회의 익명 채팅방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떤 교인이 은혜받은 일화를 캡처해서 올렸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 교인을 심방한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형제자매들의 믿음과 기도에 의지해 다시 교회에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아멘과 쌩큐를 올리고 있는데, 아이디가 요나인 사람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 교인이 교회에 가지 않는 이유가 목사님 때문이라면 어떻게 하죠?"
"........"
그는 며칠 후 그 방에서 사라졌다.
전체 교수회의에서 거수로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젊은 교수 한 사람만 반대에 손을 들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 시니어 교수가 그 젊은 교수에게 다가오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탈무드에 보면 말야, 유대 법정에서 만장일치로 유죄판정이 나오면 그 범죄자는 무죄가 되거든. 그러니까 회의 결정은 잘 된 거야. 좋았어!"
어깨를 탁 치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젊은 교수는 헷갈렸다. 저 선임교수는 방금 칭찬을 한 것인가 아님 멕인 건가?
물론 악마는 있다. 토론을 가장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에 희열을 느끼고, 자신의 열등감과 아집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장하여 발악하는 위험한 임프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악마의 역할'을 용인하지 않거나, 아무도 그 역할을 하지 않는 조직은 그보다 더 위험하다. 브뤼겔은 한 장의 그림으로 그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The Blind Leading the Blind, Blind by Pieter Bruegel the Elder (1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