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끝에 남아 여운을 남기는 맛처럼

by 미쉘 송

가을걷이가 어느 정도 끝나갈 즈음이면 아버지는 대나무로 장대를 만드셨다.

장대 끝을 반으로 갈라 거기에 작은 나뭇가지를 꽂았다.

우리 집 뒤 안엔 모두 세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오래된 감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높이가 꽤 높았다.

아버지의 지휘 아래 오빠들이 감나무에 올라 높이 매달린 감들을 장대로 땄다.

장대가 감나무 가지를 감아 돌리면 '따닥'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감들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꺾어져 내려졌다.

하나씩 따지는 감들은 그냥 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 그러면 나는 감이 떨어지는 방향을 쫓아 달리곤 했다.

그렇게 몇 광주리를 채운 감들의 일부는 항아리에 담겨 떫은맛을 삭이고 단맛으로 변해 후일 우리의 요긴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나머지 감들은 곶감이 되었다.

마루 위에 걸린 시렁에 동그랗고 옅은 주황빛 속살을 드러낸 감들이 줄줄이 줄을 따라 매달려 바람에 익어갔다.

하루 이틀 삼일. 여러 날을 지나면 동그랗고 딱딱했던 감은 아래로 처져 길어지고 허물 거리며 바람에 제 몸을 맡긴다.

또 그렇게 여러 날을 지나면 반쯤 마른 곶감이 된다.

이때부터 떫은맛은 사라지고 십리사탕의 단맛보다는 덜해도 적당히 달콤한 맛이 난다.

또 살짝 마른 듯한 겉면의 쫀득한 식감은 달콤한 맛과 어울려 마루를 지나칠 때마다 입맛을 다시게 했다.

그러나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 있는 곶감이 아니었다.

곶감의 용도는 겨울에 제사가 많았던 우리 집 제수품의 하나였다.

조상님의 제사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아버지는 곶감이며, 문어를 제철에 말려 제수용으로 보관했다.

하지만 나는 호시탐탐 곶감을 노려 아버지 몰래 하나둘씩 빼먹곤 했다.

알면서도 꾸지람은 안 하셨고,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그게 막내의 특권임을 알고 있었다.

혀끝에 맴돌던 다디단 그 맛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지금도 겨울이면 곶감을 쟁인다.


혀끝에 남아 여운을 남기는 맛이 있는 것처럼, 책이나 글도 그렇다.

그런 책들은 다시 찾아 책장을 펼치게 한다.

내 경우는 글에서 공감을 느낄 때다.

세심한 표현과 적절한 어휘로 전달력이 좋은 문장은 공감을 불러오고, 공감이 된 글은 오래도록 기억되며 여운을 남긴다.

내게 공감과 여운을 일으킨 책 중 하나인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란 책을 2020년 가을에 읽었다.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해 준 말들이, 오히려 받아 들이는 입장에선 상처였다는 것.

그 사실이 말한 선배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된다는 것 등 직장동료나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내용들이 있었다.

그즈음 나도 직장에서 그런 일이 있어 크게 공감이 되었다.

호의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현실에서 부딪히고,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 후로도 관계에서 상처를 입는 날이면 그 책을 펼치며 위로의 글을 찾는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그 공감이 위로와 위안이 되고, 여운이 되어 다시 책장을 펼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혀끝을 맴도는 잊지 못할 맛처럼, 머리속에 오래 머물러 가슴을 적시는 공감이 공명을 남기는 글을 쓰자.


'공감의 여운이 공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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