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닐곱 살 먹은 쪼그마한 계집아이였을 때, 그때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겨울을 맞은 빈 논의 응달은 얼음이 제법 얼어 있었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거기서 씽씽 썰매도 타고 팽이도 돌리며 놀았다. 그땐 따뜻한 남쪽 통영에도 몇 해에 한 번씩은 하얗게 눈으로 덮인 세상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 아침, 창호지 문살을 뚫고 들어오는 하얀빛에 이끌려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을 때, 마당에 소복이 내려앉은 하얀 눈 세상!! 그 풍경은 어린 눈에도 경이로움으로 비췄다. 눈이 내려 쌓인 날은 온 동네 아이들이 편을 갈라 눈싸움을 했었다. 비교적 어린 꼬맹이들은 쉼 없이 눈을 뭉쳐 눈덩이를 만들었다. 그러면 언니 오빠들이 잽싸게 집어 상대편을 향해 던지고 피하며 쫓고 쫓기를 하며 뛰었다. 엉덩방아를 찧고 미끄러지기도 하고, 붙잡힌 상대편 뒷목에 눈뭉치를 문대고 도망치기도 하다 보면 나중엔 내편 네 편도 없어졌다. 행복에 겨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온 동네에 퍼져 어른들도 덩달아 신나고 행복해하던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나를 꽁꽁 싸매서 내 보냈다. 정수리엔 방울이 달렸고 목도리를 겸하게 양옆으로 길게 끈이 달린 빨간색 뜨개질 모자, 목에 닿는 까슬거림이 싫어 그 모자를 쓰는 게 싫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셨다. 두툼한 외투에 모자로 목과 머리를, 장갑으로 손을 싸매고 털 부츠를 신은 후에야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완전무장을 하고도 마당을 내려서면 알싸한 냉기가 코끝을 스쳤다. 몇 번의 눈싸움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추위는 달아나고, 목덜미를 감은 목도리엔 어느새 땀이 배였다. 코끝을 스치던 알싸한 겨울 내음과 까슬거리던 목도리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날! 사단이 벌어진 날은 이런 찡한 겨울이 서서히 끝나가는 즈음이었던 모양이다. 털 부츠 대신 메리제인 스타일의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할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상이 도졌다'다. 그 말의 의미는 마음에 변덕이 생겨 금방 이걸 했다 또 저걸 하는 행동에 쓰이는 표현이다. 그랬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그날은 두꺼운 털 부츠 대신 반짝거리는 빨간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빨간 구두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을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하고, 얼음을 밟고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와 팔꿈치가 아팠다. 엉엉 울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할머니 약손의 효과로 울음도 금방 그쳤지만 못내 풀리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 앉아 생각해 보니 미끄러진 것도, 엄마의 꾸중도 다 구두 때문인 것 같았다. 어제도 분명 그 길을 걸었는데 그때는 잘 지나왔지 않은가? 다른 것은 어제는 털 부츠를 신었고 오늘은 구두를 신었다는 것뿐. 그렇다면 이건 구두의 잘못이 아니던가?? 나를 넘어지게 한 구두가 미웠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멀리 두고 싶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장독대 뒤의 키 작은 감나무! 아직 덜 자란 나무라 감도 열리지 않고 높지도 않아 심심할 때면 올라가서 노는 나무였다. 마당 한편에 놓인 노끈을 찾아 빨간 구두를 묶었다. 그리곤 낮은 감나무에 올라 어설프게 구두를 매달았다. "내가 풀어줄 때까지 거기 있어. 한동안 보고 싶지 않아" 이렇게 구두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어릴 때 나는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는 줄 알고 살았다. 나무도 꽃들도 소도 강아지도 심지어 돌멩이도. 봄날이면 냇가에 흐르는 물을 손가락을 만지며 대화하고 몇 시간씩을 놀기도 했었다. 그땐 모든 사물이 나와 같은 마음이 있다고 믿었다. 순수한 건지 바보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빨간 구두는 며칠을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그 광경을 보신 아버지도, 어머니도 허허 웃으시며 이제 그만 용서하라 하셨다. 그리곤 얼음길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고도 당부하셨다.
사실 구두의 잘못은 아니었다. 가족들도 알았지만 막내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으리라.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구두에게 사과를 해 본다. “빨간 구두야, 그 때 많이 무서웠지? 매달아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