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내가 자란 섬에는 중학교까지만 있었다. 부모형제와 친구들, 정든 고향을 떠나와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힘든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그 일 년의 시간을 그리움과 방황의 시간으로 보냈다. 지금처럼 주 5일제가 아니라 토요일 오전 수업이 있었다. 청소시간을 면제받고 네 시간 수업이 끝나는 동시에 큰 거리로 나가 통영 가는 버스에 탔다.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 걸어서 30분. 그립고 따뜻했던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먼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2주일에 한 번씩은 다녀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여리고 어린 계집아이였고, 부모의 품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는 게 버겁고 힘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 도착한 집에선 부모님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저녁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그렇게 엄마 품에서 하룻밤을 자고 뒷날 아침이면 여객선을 타고 또 뭍으로 나가야 했다. 선착장에서 나를 배웅하던 엄마가 뒤돌아서서 눈물 닦던 모습. 집 앞에서 내가 탄 여객선이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던 아버지. 그렇게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친구들은 도시에 남아 공부를 한다 했지만 나는 무조건 방학이면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작은집이 우리 집과 나란히 있어 사촌들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사촌 오빠는 둘, 남동생이 셋. 동생이 없는 나는 사촌 동생들이 참 좋았다. 누나라고 부르는 소리도 듣기가 좋았다. 막내 사촌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아기동생을 보러 갔었던 기억이 난다. 사촌들은 나이도 나랑 비슷해서 오히려 나이 많은 우리 언니 오빠들보다 자라면서는 사촌들하고 많이 놀았다. 전쟁놀이를 하면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적들에게 쫓길 때 대장인 사촌 오빠가 높은 바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 뛰어야만 했다. 그렇게 온 산천을 사촌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놀았다. 사촌 큰오빠는 세 살이 많았고, 그 아래 오빠는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한 살 많은 오빠가 유독 살가웠다. 오빠도 그때 도시에서 공부하는 중이었는데 방학이면 만났다. 그 여름방학의 어느 날, 오빠가 내게 라디오가 필요하지 않냐 고 물었다. 오빠는 새 카세트라디오를 사서 지금 사용하는 라디오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빨갛고 기다랗게 생긴 카세트라디오는 내 것이 되었다.
하교 후 자취방에 들어오면 라디오를 켰고, 잠이 들 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살았다. 라디오는 그때부터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이수만이 진행하던 프로그램도 있었고, 그 후엔 배철수의 음악캠프, 별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등. 라디오를 켜고서 친구들에게 우정 어린 편지도 적었고, 시험공부도 했고, 책도 읽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내 취향이면 제목과 가수를 적었다. 10여 곡이 모이면 레코드 가게에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담긴 테이프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똑같은 테이프를 녹음해 선물하기도 했고 선물을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라디오가 있어 낯선 도시생활에 적응하기가 조금 쉬워졌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조금씩 놓여 놨다. 그 라디오를 들고 여기저기 자취방을 많이도 옮겼다. 라디오 이상의 의미가 있어 수리를 해가며 들었다. 낡은 라디오가 제 기능을 못할 때까지 끼고 살았다. 사실 오빠는 내가 학교와 도시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고, 라디오가 친구가 되어 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빠의 살뜰한 마음과 배려, 사랑이 고맙고 감사했다.
나보다 한 살 밖엔 많지 않은 사촌오빠.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 먼 길을 간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한동안 마음으로 오빠를 보내지 못했다. 사실 부모님은 우리보다 한 세대가 위니까 당연히 먼저 가신다는 생각이 있어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동기간의 이별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 온 산천을 뛰어다니던 친구였고, 나의 보호막이 되어 주던 오빠였던 한 사람. "경아. 수박이랑 과일이 먹고 싶네." 했던 마지막 전화. 그건 내가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몇 가지 과일을 담아 그 주말에 오빠를 보러 갔었다. 뼈만 남아 앙상한 얼굴에 반가운 미소로 맞아 주던 그 모습. 그게 오빠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이제 내가 오빠가 있는 곳에 라디오를 보내고 싶다. 같은 시간에 같은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나누고 싶다.
"오빠! 이 노래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오빠도 꼭 들어봐~"
오늘도 라디오를 들으며 오빠를 추억하고 있으니 너무 외로워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