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대한심(閑心)국 10회

코로나 시대(9)

by 조작가Join

기자회견 준비


새봄이 오면서 훈풍이 불어 겨우내 간신히 붙어있던 나뭇잎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날리는 날이다. 총회장은 한가로이 하늘을 이리저리 헤치며 구름이 지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 평온한 모습을 질투했던 것일까? 비서 한 명이 모습을 나타내고 불안한 걸음으로 총회장 앞에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고?”

“네.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준비한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뭐, 이렇게 귀찮게 만들어. 일 처리를 어떻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이번에는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야 하실 거 같습니다.”


측근들 또한 총회장을 앞세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총명이 예전 같지 않고, 기력도 좋지 않은 총회장은 신천지의 상징적인 이미지 외에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일반 노인에 불과했다. 현재는 무슨 말을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글을 보여줘도 문해력이 떨어지니 제대로 논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도 이런 상황이 짜증스러웠는지 주변 사람들이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내면, 눈빛에서부터 거부를 표시하고 빨리 사라져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측근들의 우려와 본인의 결단으로 한적한 별장에 와 있는 것이었다.


“지난번 발표가 좋지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우리가 다 잘못했으니 잡아가십시오.’라고 해야 했습니까?”

“그건 아니라도 우리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소리치다 보니, 더 미움 살만 박혀서 지금 이렇게 옥죄고 있는 거 아닙니까? 서울시도 그렇고, 경기도도 그렇고, 덩달아 울산까지. 이러다가 우리 망하겠어요.”

“이제 방법이 없어요. 총회장님이 나서야 하실 땐 거 같습니다.”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불안해서 말이죠.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들으시는데...”

“그래도 철저히 준비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신천지는 전국적인 지탄(指彈)에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총회장이 중심을 온전하게 잡지 못하니 내부에서도 서서히 분란이 발생하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원래 역사적으로 절대적 권력을 가진 일인자 아래에는 제대로 된 후계자나 이인자가 존재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런 경우 일인자가 갑작스럽게 유고할 경우 조직은 쉽게 무너진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해도 그렇다. 이승만이 무너지자 자유당 정권은 외부의 저항에 대응할 힘과 조직의 응집력을 상실했다. 이후 박정희도 18년 독재가 부하의 탄환에 종지부 찍었을 때도 그를 제대로 계승할 이인자가 존재했었던가? 둘 다 내부적으로만 거짓 충성경쟁이 심해서 외부 상황을 적절히 판별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수년 전부터 총회장의 사리 분별 능력이 떨어지면서, 젊은 시절에는 쉽게 사람들을 홀리고 농락하던 언변도 사라졌다. 최근에는 전하는 메시지마저 현실성이 떨어져서 젊은 세대들한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총회장이 나서는 날에는 청년들의 비판적인 피드백이 올라오는 일이 다분했다. 그럴 때마다 측근들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댓글을 지우느라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그래서 측근들이 세운 전략이 최대한 외부와 접촉하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이 방법만이 조직을 그럭저럭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데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이미, 총회장의 콩고물의 단맛에 익숙해진 몸과 정신은 새로운 타계 책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과 머리, 그리고 육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외부에서는 총회장을 교주, 사탄, 사기꾼 등이라 욕하면서 능구렁이 같은 수완으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말 과거에는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몰라도 현재는 모든 게 귀찮은 그저 만년을 준비하는 살찐 노인에 불과했다. 측근들은 총회장이 그나마 건강하기에 기자회견장에 세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상황이었다.


“총회장님 제가 말씀드린 대로만 하시면, 큰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20분이 지나면, 기자회견을 무조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건 다 이해하겠는데, 내가 사과 절을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구먼.”

“크게 연연하지 마십시오. 총회장님을 뵙는 것도 영광인데, 큰절 올리는 모습까지 사람들이 보면, 우리를 비난하던 무리도 탄복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겸손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상황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그 정도로 힘든 상황인가?”

“네. 적들의 음모와 저항이 너무 강력합니다. 저희 믿음만으로 견뎌내기가 힘듭니다. 총회장님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혹시나 총회장이 기자회견에 응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계획했던 큰절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큰 낭패가 되기 때문에 측근들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서 총회장의 마음을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예수도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세상 구원을 위해서. 내가 세상 앞에 큰 절 못할 이유가 없다. 내가 엎드려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절하리라.’


서울에 한 유명한 대형 교회의 목사는 설교도 잘하고, 교권을 휘어잡는 출중한 능력이 있었다. 수만 명의 교인이 다니는 교회를 운영하면서도 단 한 번도 구설(口舌)에 휘말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목사의 여성 편력이 문제가 될 것임을.

결국, 목사는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여성 교인의 고발에 그동안 이뤄 놓은 업적을 모두 내려놓게 됐다. 이쯤 되면, 기도하면서 자신의 과오(過誤)를 뒤돌아보고 회개할 만도 한데, 그의 마음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내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좋은 만남을 베푸는데? 내가 돈을 바랐나? 아니면, 명예를 원했나? 단지, 그들의 미천한 몸만 어루만진 것뿐인데. 그리고 그들도 그 순간에는 즐기지 않았던가? 나를 연모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이성을 잃기 시작하면, 자기 잘못도 정당화하는 법이다. 특히, 영웅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역사, 종교, 신 등을 동원해서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수천만 명을 죽인 히틀러나 스탈린, 마오쩌둥, 나폴레옹 등이 그들의 잘못을 알았을까? 그들은 모두 정의와 조국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하물며, 우주를 창조한 신의 비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목사가 여성 편력 따위에 죄책감을 가질까?

원래 잘못을 제일 잘 뉘우치는 게 아이들이다. 부모의 돌봄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 그때는 부모의 성난 얼굴만 봐도 울면서 잘못했다고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한다. 그러다가 머리가 커지면, 부당한 꾸중과 지적(指摘)에 고개를 들고, 좀 더 크면 아예 꾸지람을 거부하면서 역으로 부모의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를 비판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해서 권력과 부를 거머쥐게 되면, 스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자처하고 공자가 말한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착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일꾼의 허물을 용서해 주십니다. 저 위대한 왕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밧세바를 간음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가 여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버리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위기에 몰린 목사의 설교가 설득력이 있었나 보다. 그는 퇴임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는데 다른 목사는 너무 어린 여성에 관심 뒀던 게 탈이었다. 둘의 차이는 크지 않다.

퇴임까지 버틴 목사는 그를 고소하려 했던 여성의 입을 막을 수 있었고,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목사의 강제성도 의심이 되는 정황이었다. 하지만, 쫓겨나야 했던 목사는 그 관계의 부적절한 정도를 봤을 때, 여성이 자발적으로 응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나이 차이가 있었고, 여성의 입막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성이 목사와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 강제와 폭력이었다고 증언하니 능력 좋은 목사가 아무리 우겨봐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목사는 그의 자만으로 여성의 고소를 그대로 방치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의 '미투'는 사실상 교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도대체 '성직자의 권력이 얼마나 크길래?'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한 대형 교회 목사는 과거 정치인을 꿈꿨다고 한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면서 대형 교회 목사가 되면 국회의원 6-7명은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목표를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목사는 실제로 국회의원 정도는 부러워할 필요 없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신중하게 준비하셔야 해요.”

“알고 있어요. 실수 없이 할 거예요.”

“참 걱정입니다. 아무리 옆에 붙어서 말씀해드려도 잘 못 알아들으실 수도 있으니.”

“사전에 잘 체크하세요.”

“네. 제발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할 텐데요.”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두 측근의 얼굴에는 과거 마을 우물에서나 볼 수 있는 어두움이 짙게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근심이 현실이 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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