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오직 '우리 목사님'
토론은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2명만 있어도 두 가지 생각이 있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니 토론은 늘 있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협력해서 선’을 이루라는 말씀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갈등이 있었기에 등장한 구절이다.
초대 교회 사도들도 다른 생각이 있었고(이방인에 대한 선교를 생각해 보라,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의 생각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봐도 서로 다른 생각이 있었기에 토론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공의회가 열렸다.
그런데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토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토론문화가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성경을 주로 다루는 목사에게 교회 대소사(大小事)(크게 세 가지인데, 재정권, 인사권, 행정권 등)의 결정권을 모두 위임하니, 토론을 거론하는 건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주님의 종’에 대한 도전, 그런데 목사만 주님의 종이고 나머지 성도들은 주님의 종이 아닌가? 이미 신약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고,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는 목사도 하나의 직분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면서 각 직분이 있는 이유를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 봉사하는 것,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언명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과거에 필자가 다녔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자신을 교회의 유능한 CEO이자 절대적인 선으로 선전했다. 설교 중에는 그다지 두텁지 못한 경영지식을 다룬 책들을 소개하고, 자신이 부임하기 전에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있던 교회가 부임 이후에 수억 원의 흑자 재정으로 전환했음을 종종 공공연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토론은 사탄이 조장하는 것이라 하면서, 토론은 발전과 해결의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분열로 이끄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일개 교회만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토론은 존재했고, 그 역할 또한 중요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는 토론을 부정하고 회피하며, 상명하달식으로 교회를 운영한다. 특히, 대형교회일수록 담임 목사의 권력은 정상적이지 않을 정도로 비대하고,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지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교회 내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담임 목사들이 비자금을 축적하고, 부자세습을 자행하고, 교회 재정을 마음대로 횡령할 수 있는 권한에 감히 도전할 수 있는 개인이나 조직이 없다는 말이다.
영국의 액턴 경(John Dalberg-Acton)은 “권력은 부패한다. 그리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현재 한국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에 임지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에서 이러한 교회를 파쇼적인 구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개화기에는 ‘만민평등사상’을 한국에 전해 주고, 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했던 한국 교회는 성장과 함께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현재는 가장 비민주적인 집단이 돼버렸다.
한국 교회에서의 정답은 하나님이 아니다. 정답은 담임 목사이다. 비판받는 교회들은 대부분 절대화된 담임 목사를 섬기고 있는 곳이다. 토론은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 있는 교회에서 양자가 된 성도들은 ‘종’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아들 된 자가 ‘종’의 노예로 전락한 모습이 바로 현재 한국 교회이다. 그렇다면, 왜 교회보다 목사가 더 커 보일까?
대형교회에서 목사의 절대 권력이 등장할 수 있는 원인은 우선, 담임 목사와 일반 성도들 간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일반 성도들은 그저 1주일에 한 번 설교를 통해, 그것도 예배 시간에 늦으면 영상으로 예배를 드린다. 매주 적정 헌금을 내면서, 그리고 어디선가 봉사를 하면서(돈 내고 일하러 가는 곳이 교회다), 성도들은 오히려 감사해한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담임 목사를 알현하기만을 간절히 소망한다.
다음은 앞서서 지적했듯이 성도들의 무지(無知)다.
100명이 모이는 교회라면, 무지한 성도는 최대 100명이다. 당연히, 성도 수가 만 명이 넘는 교회라면, 무지한 성도가 만 명이 넘을 수 있다. 목사에게 교회 사역을 일임하는 수준에 따라서 권력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 교회의 성도는 성경을 잘 모르고, 자신이 속한 교단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교회 역사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리고 목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알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불경하다고 여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동시에 휘장이 찢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이 현상의 해석 중 하나는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했던 구약 시대의 전통이 사라지고 성도가 직접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목사라는 휘장을 그 어느 때보다 두껍게 설치해서 스스로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고 있다.
종교개혁은 당시 가톨릭에 대한 일부 종교 지도자들만의 저항이 아니었다. 성직자들을 지지해준 민중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실패했을 것이다.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이 이끈 종교개혁이 성공하고, 그들이 개신교의 아버지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그들의 탁월한 개인적인 능력과 더불어 그들을 역사에 남게 지지해준 당시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로 따지면 당시 성도들이 더 무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에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다. 즉, 1인에게 위임해서 자발적 무지를 선택했기 때문에 부패의 악취를 맡기 힘든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목사가 우월한 지적(성경적) 기득권으로 무지한 성도들을 더 우매화시키고 있다.
권력을 잉태해서 낳아서 쌓기만 하면,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심하게 부패했음에도 냄새를 못 맡고, 거대한 교회의 위엄과 멀리 보이는 목사 앞에 고개를 숙인다. 떨궈진 고개는 복종의 상징이며, 저항하지 않겠다는 침묵의 서약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저항할 조짐이 보이면, 그 싹을 잘라 버린다. 하나의 사례를 소개한다.
필자가 교계에서 통일과 관련한 사역(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현 (사)평통연대)을 할 때였다.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이영훈 목사님의 한국기독교협의회 회장 취임식이 예정돼 있었다.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들이 있어서 인사하기 위해서 이동 중이었는데, 국내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 한 대가 기념관 앞에 섰고, 양복을 입은 10여 명의 중장년층 남성들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차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곧 꾸부정한 노인이 내렸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길래 저리도 사람들이 나와서 도열 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서 100주년 기념관에 들어갔는데, 역시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는 목사님께 여쭤보았다.
필 자 :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목사님, 이 줄은 도대체 뭔가요?
목사님 : (웃으시면서) 뭐긴, 조용기 목사님께 인사드리려고 서 있는 줄이지.
필 자 : (놀라며) 대단하네요. 그러면 대부분 목사님이겠네요.
목사님 :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지.
멀리서 보였던 꾸부정한 노인은 조용기 목사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은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조용기 목사와 악수하는 것을 더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교계에서의 위상은 대통령보다 높으면 높지 낮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가 조찬 기도회 시 대통령을 무릎 꿇게 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판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한다면, 비약일 수 있지만, 한국 교회의 위상을 알려주는 사건 아닐까? 조용기 목사와 관련한 사건을 찾으면 그 아들 문제부터, 금전적인 횡령 등 거의 부정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복음 교회 내에서 조용기 목사의 권한은 거의 신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 교회가 청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파워 크리스천』, 『파워 로마서』, 『낙타 무릎으로』등 많은 신앙 서적으로 수많은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휘발유를 뿌려준 목사가 있었다. 필자가 아는 한 목사님은 “책 한 권을 더 출간할 때마다 성도가 천 명씩 늘어나는 것 같아.”라고 할 정도로 다작을 했고, 다독(多讀)하는 목사로 유명했다.
그러나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됐다. 이유는 성추행이었다. 삼일교회 내부에서는 최대한 목사의 만행을 덮기 위해 노력했지만, 저지른 건수가 적지 않아서 목사의 절대적인 권력과 교회에 대한 공적(功績)으로도 교회에서 축출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수많은 청년에게 열정을 품게 했던 목사는 교계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목사를 평생 직분으로 여겼던 것일까?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에 새롭게 교회를 개척했고, 개척한 교회에 모인 숫자가 수백 명을 넘었다(한국 대부분 교회가 100명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매주 백 명씩 늘어난다는 소식도 들렸다.
참 성도들의 의리는 세상 어떤 것보다 각별한 것 같다. 교회 헌금으로 비자금을 만들어도, 성추행해도, 건축하다가 실패해도, 도박해도, 다 용서한다. 오히려 변호한다. ‘하나님의 종’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럴 때마다 필자는 목사로 사역하지 않고, 평신도로 사역한 20년이라는 세월이 참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차라리 목사가 돼 사역했다면 대접이라도 받았을 텐데.’라고 푸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