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11)
“코로나 19로 인해서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이 붕괴하고, 대기업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 전망도 좋지 않아서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전문가의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얼마 전부터 경제는 ‘코로나 19’와 절대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모든 경제는 코로나를 염두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전염병과 함께 한 경제는 환자를 계속 양산하는 것과 비례해서 일반인들과 기업들의 도산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었다. 잘 나가던 식당도 문을 닫고, 손님이 행여 맛집으로 기억하고 블로그를 찾아 헤매 도착하면 다른 영업장이 돼 있거나 공간만 덩그러니 있는 채 먼지가 방문객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중에서도 세계적인 코로나 여파로 여행업과 관련한 업종은 IMF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을 겪고 있었다.
“IMF 때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여행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김 주임이 25년 경력 김 이사에게 묻는다.
“그때가 더 심했지. 그때는 아예 아무것도 뜨질 않았으니까.”
그러면서도 힘들긴 매 한 가지라는 듯 한숨을 내쉰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구 대표도 답답했는지, '헛'하고 자리를 떴다.
작은 기업이지만, 30년 넘게 유지했고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 스스로 자랑처럼 떠벌렸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 위기를 맞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과거에는 넓은 인맥을 활용해 사업을 낙찰받고, 이후에는 좋은 관계를 맺어 수년 동안은 아무 걱정 없이 같은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 오래 해 먹으면 다른 업체의 눈총도 따갑고 수요기관도 슬쩍 용역사를 바꾸고 싶은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을 원치 않게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역에서 터를 닦았기에 일거리는 찾으면 계속 있었고, 잃었던 용역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공정한 업체 선정을 위한다는 취지로 나라장터가 개설되고 많은 업체가 경쟁하게 돼 잠시나마, 소강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개 입찰도 눈 가리고 아웅일뿐, 결국 했던 업체가 또 이어서 하고, 잠시 다른 업체가 맡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태반이었다. 도대체 공개와 공정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입찰 시스템이었다. 다들 변명거리는 있다.
“기존에 했던 업체가 풍부한 경험을 살려서 피티도 잘했고, 다른 업체를 낙찰하면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게 뻔합니다. 그러니 사업의 효율성을 고려했을 때, 기존 업체를 낙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 총점도 가장 높았고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변명이다. 그러나 사전에 작업 들어간 사업이 적지 않음을 고려할 때, 공정은 1등을 제외한 다른 업체들의 시간과 비용 낭비와 관련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 부르는 심사위원들은 피티 1시간 전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담당자의 심사기준을 들으면서 입찰한 여러 업체의 제안서를 훑어본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피티를 잘하면 기회라도 공정하게 주어진 것이데, 대개 담당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힌트라도 주면 심사위원들은 들을 필요도 없는 내용을 반복해서 듣고, 붕어 입처럼 눈만 끔벅거리다가 정해진대로 채점할 뿐이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 시간당 수당을 받아 기분 좋게 대접받고 돌아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열심히 피티 준비한 업체들은 시작하자마자, 심 사위원들의 눈빛과 태도를 보고 '내정됐구나!'라는 직감하고 이런 더러운 기분은 늘 틀리지 않았다.
거의 폐업에 이른 수준에 이르다 보니, 앞으로 도대체 뭘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하다가도 입에 걸쳐져 있는 마스크 안에 잡다한 냄새가 섞인 숨소리를 느끼면, 아직 호흡이 붙어있다는 안도감에 ‘곧 끝나겠지.’라고 이유 없이 낙관적인 마음으로 되 잡아본다.
그러나 이러한 간절한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가뭄에 바짝 말라 가는 풀처럼 쓰러지기 마련이다. 일제 35년이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길다면 길고, 일본 입장에서는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을 텐데, 독립운동을 하다가 지쳐서 변절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방되지 않을 줄 알았다.”
라고 변명한다. 사실, 해방되지 않았다면, 현재 친일의 잔재를 대대에 걸쳐 지우려 하는 사람들이 더 득세한 세상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떳떳하게. 구 대표도 이 참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직원을 해고하기로 결심한다. 핑계가 생겼으니.
'그래, 이 참에 최 팀장을 비롯해서 몇 놈 잘라야겠어.'
“현재 국내 경제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은 ‘기본소득’ 밖에 없습니다.”
불법 선거를 했다고 하여 소송당해 정치 생명 줄이 경각에 달린 도지사가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원래 새롭고 신선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걸 좋아하는 지사였지만, 현재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불리한 정치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묘책이었다. 사실, 지사 혼자만의 발언으로 그쳤다면 새벽 산 정상에서 외치는 “야호~”소리처럼 돌아오는 건 메아리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다른 지역 단체장이 받고, 계속 다른 정치인들이 이어받다 보니 기본소득은 반드시 실행해야 할 정책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결국 진보를 자처하는 단체장이나 세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기본소득’을 외쳤다.
“재난기본소득이야 말로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기본소득의 효용성은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 단, 정서적으로 ‘무임승차’, ‘도덕적 해이’ 등과 같은 비판이 있기에 쉽게 실현하기 힘들었을 뿐입니다.”
며칠 ‘기본소득’이 언급되더니 어느 순간 ‘재난’이라는 말이 덧붙었다. 무조건 주자고 떠들더니, 한 발 뒤로 물러나서 특수한 상황이니 지급하겠다는 ‘재난기본소득’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원래 처음에 변경하기가 어려운 법이지 다음에 또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만 ‘기본소득’이지 여러 조건이 더 붙어서 애초에 ‘기본’과는 거리가 먼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생계소득’으로 명칭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100만 원을 지급하자고 했던 지사도 결국, 본인이 단체장으로 있는 지역에만 평등하게 10만 원씩 주기로 했는데, 그것도 현금은 아니고 지방 화폐로 준다고 했다.
“그래도 국가에서 돈을 준다니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세금이나 받아 갈 줄 알았지. 돈을 준다고 하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그만큼 힘들다는 말이겠지.”
국민도 국가에서 돈을 준다고 하니, 마다할 생각은 없다. 절박한 상황이니 양잿물이라도 준다면 마셔야 할 판국이다. 이렇게 국가에서 주는 돈이라는 쉬운 소리가 떠 돌다 보니, 원래도 알지 못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 기본소득이라는 말은 찾을 수 없고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생계소득’으로 선전했고, 일부 국민은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기억했다.
거리에는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인 처방 ‘생계소득’을 선전하는 현수막이 주렁주렁 달리고, 신청하는 방법과 시기를 안내하는 메시지가 스마트폰을 울리고 방송에서도 보도가 끝없이 이어진다.
“여보세요. 어머니, 제가 지금 경기도 도민으로 돼 있어요. 그러니 제 몫까지 꼭 받으세요. 곧 배부할 모양입니다.”
“그러게 그런데, 언제 준 다냐?”
“안내가 있겠죠.”
3월 말에는 일괄적으로 줄 것처럼 보였지만, 4월을 넘겼고 심지어 5월이나 돼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떠돌았다.
“줄 거면, 빨리나 줄 것이지.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래저래 따져서 주니. 원...”
다들 PC 앞에 앉으면, 직장인들조차도 생계소득 검색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라도 틈이 나면, 모니터 앞에서 자신의 주민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박 대리 얼마나 받아?”
“그러게요. 검색하려 해도 접속이 안 되네요.”
“에구 공돈 생긴다고 하니, 다들 모니터 앞에서 재난소득만 쳐다보고 있는 거구먼.”
“그런가 봐요.”
“어머니, 알아보셨어요?”
“주긴 준다는 거 같은데, 지금 가봐야 사람도 많고, 그렇다고 내가 인터넷을 알아서 신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사람 많을 때 동에 가봐야 더 위험하니까 잠잠해지면 움직이세요.”
국가에서 처음으로 돈을 준다는 말에 한껏 기대 부풀어 있지만, 부푼 기대를 채우는 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처음으로 시행하는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겠지만, 신속하게 처리해서 최대한 신속하고 편리하게 국민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놈의 ‘처음’은 ‘코로나 19’ 때부터 시작해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곧 학생들 개학도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하니, 역시 처음이고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예측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