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에서 역진화한 한국 교회
우리나라는 개발독재의 수장이 1979년에 서거한 후에도 군부 통치가 계속됐다. 1987년에 비로소 개헌되면서 민주주의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열망은 민주주의가 익숙하지 않은 국민의 무지함과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한다고 자찬하던 권위주의적인 후보들의 난립으로 군인 출신 대통령을 한 번 더 맞이하게 했다.
철학적으로 포스트모던이라 해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글귀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서도 읽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대학가에서는‘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에 대응한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가 붙어서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그 시절 기독교 청년들은 애써서 기독교 신앙 정신을 지키기 위해 더 단결하려고 했던 그룹과 새로운 시대에 혼란스러워하면서 방황하던 그룹, 대안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전개하려 했던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 교회는 어떠한 길잡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사회 지도층이 많고, 과거 한국 문화를 이끌었던 교회였지만 빛바랜 도자기처럼 더는 리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는 복제 양 ‘돌리(Dolly 1997년)’가 등장해서 많은 이슈를 낳았는데, 기독교는 오로지‘창조 질서’를 운운하면서 신앙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로 일관했다. 이와 같은 ‘창조 질서’의 구호를 외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과거에 백신(vaccine)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교회는 반대했고, 새로운 의학 기술이 등장해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할 때마다 기독교는 ‘창조 질서’를 언급하며 반대해왔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와 관련한 문제도 교회는 사랑보다는 공의를 앞세워 그들을 죄인, 혹은 치료해야 할 환자로 취급했다. 이러한 부분은 21세기의 20년이 다 끝나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동성애와 관련해서 IVP에서 출판된 소책자를 읽은 적이 있는데, 부단한 기도와 노력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돼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극단적인 방법일 뿐이고, 실제로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변화하는 것은 죽기보다 힘들다는 고백을 실제 동성애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영화《완벽한 타인》에서는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편향된 사고를 하고 있는지 잘 보여줬고, 1990년대 초반(1991년) 영국에서는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임을 과학적으로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는 선천적인 유전자가 없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앞으로 또 어떤 발표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최근 발전한 과학은 교회에서 배척된다. 지동설과 관련해서 지금은 모든 교인이 믿지만(사실, 가톨릭은 지동설을 교리로 인정하게 된 것이 1992년이다), 비단 종교개혁 시대로만 돌아가도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운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진리를 지키려 한 사람들은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불꽃으로 사라졌다. 교회는 진리에 무지했고, 그 무지함을 진리로 가장한 폭력으로 역(逆) 진화시켰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CCM으로 대응한 수준이었는데, 그 수준은 비루하기만 했다. 혹, 이조차도 거룩하지 못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은 교회도 많았다. 교회의 ‘문화의 밤’은 철저히 일반 학생들에게 외면당했고, 교회에 다니는 청소년들도 지루해하는 행사였다. 그리고 결국, 사라졌다.
같은 세대들에게 이질적이고, 접근하기 힘든 ‘성역(聖域)’의 위상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신비함, 그리고 고결함이 교회 안에 가득해서 ‘성역’의 위치를 고수했다면 좋았을 텐데, 개신교는 일반인들에게 ‘성(城) 역(域)’이 돼서 접근 불가 지역이 돼 버렸다. 19세기 말부터 세계를 상대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던 교회는 이제 방어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점점 게토화 되고, 새로운 가입자들에게는 쉽게 따르기 힘든 규율을 제시했다. 1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교회에 나와야 하며, 헌금을 주기적으로 내야 하고, 돈을 내고 봉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내는 헌금의 사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혹, 헌금의 사용에 큰 관심을 보이거나 자료를 요구하면, 교회에 다니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교회에 다니면, 먹을 것도 주고, 취업의 통로도 됐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가입 조건은 까다로운데, 혜택은 크지 않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렇다. 단 교회에서 말하는 그대로를 믿는다면 모든 보상은 죽어서 도달하게 되는 천국에서 받게 된다.
교회는 규모와 표준화로 대결할 수 있었던 근대화 시대에는 분명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규모보다 민첩함이 필요하고, 표준화보다는 개성이 중요한 시대에 교회는 오히려 반동적이어서 역진화 했다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바라보는 현재 교회는 여전히 규모에 집착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규모는 더 커지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한계를 느꼈을까? 세계로 눈을 돌렸다. 물론, 선교는 중요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기독교를 모르는 국가에 전파해도 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 선행, 황금률 등 좋은 점을 꼽으라 한다면 수백 가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선교(단기 선교)의 모습이 ‘선교’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를 빙자한 해외여행으로 볼 수도 있다. 다녀와서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도 한다. 선교사들한테는 일종의 부수입이 생기고, 자신들의 활동을 지지해주는 교인을 양산하는 것이어서 좋은 일이지만, 선교의 기원이 되는 바울의 선교와 비교했을 때 한국 선교사들의 방법은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IMF 당시 많은 선교사가 선교비를 지원받지 못해서 환국했다.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교회가 없으면 현지에서 선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바울의 선교는 철저히 자비량 선교였는데, 왜 한국의 선교는 그렇지 못할까? 이미 영국에서는 100년 전쯤에 영국의 선교를 비판하면서 한국 선교와 같은 방식을 거부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행될 때쯤 단기 선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교회가 선교지로 떠났다. 세계 곳곳에 한국 선교사가 없는 지역이 없을 만큼 한국 교회는 선교지에 많은 인력을 파송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 못한 국가여서 선교사들이 교회를 짓거나, 문화 활동을 개시하면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당연히 교회는 그 지역의 첨단 기지가 된다. 그러니 교회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과거 한국도 그랬으니 말이다. 여전히 적도를 중심으로 남쪽은 북쪽에 비해 가난하고 기독교가 번성하는 지역으로 구분된다. 선진문물은 기도와 말씀 이상으로 선교에 영향력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선진(先進)’은 기독교 선교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고, 실용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한국 교회는 다양성, 개방성, 개인화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2000년대 이르러서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은 종교를 더욱 우습게 만들었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공개는 그 자체를 우습게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곧 세상을 지배했다. 2년 후에는 한국에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다.
3G의 답답함도 있었지만, 와이파이 존에서 누릴 수 있는 동영상 시청과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무료 메신저는 수천만 코리언을 온라인으로 이끌었다. 교회는 스마트폰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고, 2G 스타일을 고수했다.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있고, 활용 방법을 고민했다면, 괜찮은 앱도 제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전히 성경과 찬송과 관련한 앱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이 앱의 사용조차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나이 든 교인도 많으며,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교인도 많다. 대형교회에서 자체 제작한 앱도 있는데, 대체로 교회 요람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스마트 요람이라고 해서 보급하는 교회도 있지만, PDF 수준을 조금 넘어선 정도이다.
예배 시간에 스마트폰 사용을 막기 위해서 애쓰지만, 교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조용히 오가는 메시지를 막을 방법은 없다. ‘경건한 예배’를 강조하지만, 일상이 교회식 경건과 거리가 있는 교인들은 경건한 예배에 대한 기대가 없다. 그리고 경건한 예배의 기준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두꺼운 성경을 지참해서 밑줄을 그으면서 설교 듣는 것이 경건한 예배의 기준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성경, 찬송을 보더라도 전심으로 예배드리는 게 경건한 예배인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의 확산은 세상을 연결했다. 낯선 사람도 언어만 통하면, 한순간에 친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진심 어린 친구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실제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진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은 150명 정도라고 하는데, 던바의 수라고 한다). 교회는 3차 산업혁명 시대 말기에 철저히 외면당했고, 후진 기관이 돼버렸다.
교회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그러나 쉽게 활성화되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스턴트식 메시지에 대한 교회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인스턴트를 유기농으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을 교회는 얼마나 했는지를 겸허히 반성해 봐야 한다.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지 못하고, 과거 냉전체제의 대립과 갈등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간직하고 있다(최근에도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남한의 공산주의화를 걱정했다). 그리고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여전히 이데올로기 전략으로 활용한다. 코로나 시국에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나 전염병의 번창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종교적 관용이 아니라 이기심으로 가득한 집단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철저히 뒤처진 교회는 다음 산업혁명 시대에 어떻게 될 것인가? 기사회생해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 잡을 것인가? 아니면, 더욱 뒤처져서 결국 소멸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은 ‘Industrial 4.0’으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교회는 과연 version 몇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19세기 말에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개신교는 1900년대 초반에 큰 부흥을 경험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당시의 구호였다고 한다. 현재도 가장 ‘핫(Hot)’ 하다는 서울 명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호이다.
교회의 현재 version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체적으로‘1.0’이다. 규모가 커지고,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 생겼지만, 이후 변화는 없었다. 복음으로 세계를 덮고자 하는 교회의 꿈은 적당히 먹고살 만한 국가에서는 이루기 힘든 ‘망상’이 됐고, 잘 살지 못하는 국가에서나 통하는 수준이다.
IS에 가입하는 청년들이 SNS 광고를 통해 가입한다고 한다. 그들의 폭력성은 어떤 잣대로 판단해도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테러조직은 청년들에게 가정 보편적이고 익숙하며, 활성화된 시스템을 민첩하게 사용해서 그들을 잘 못 된 길로 끌어들이고 있다. 익숙함은 설사 그것이 나쁜 일이라도 관성이 생기면 시비(是非)를 가리기 힘들다.
좋은 일을 한다고 자찬하는 교회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처음에는 경건치 못하다고 거절하다가 뒤늦게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미 좋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된 현대의 도구들은 쉽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그리고 여전히 내부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령 계층이 대다수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해 교회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활용하고,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마찰이 생긴다. 가장 선도적인 개신교가 어찌하다가 가장 고루 하다못해 눈치 보는 종교가 된 것일까?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해야 하는 교회가 어찌하다가 큰 건물에 경비를 세워 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