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1부 4차 산업혁명과 국가(11)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과 반작용 상(上)편

by 조작가Join


“기술발전에는 대체로 침체기가 없어서 전체적인 부는 늘었으나, 중간 계층의 소득은 줄어들었는데, 부의 분배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와의 전쟁』 중

“노동 시장에서 저기술 저임금과 고기술 고임금의 벽이 점점 높아진다.”

『4차 산업혁명의 충격』 중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 기업이 승자독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플랫폼 레볼루션』 중에서


그리고 가장 강력한 한방은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Average is over).” 『4차 산업혁명 강력한 인간의 시대』 중


모두 불평등과 관련한 내용이다. 지난 산업혁명 시대의 불평등에 대한 저항은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산업혁명의 진통에는 여러 가지 – 불평등, 부적응, 세대 갈등, 국가 발전의 차이 등 – 가 있었는데, 불평등과 관련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산업혁명에 대한 저항

대부분 출간물은 산업혁명을 기술적인 발전과 성장의 경로 수준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이후 반작용이나 사회적 진통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보다는 추상적인 언어, 예를 들어 ‘어둠이 있었다’라는 수준으로 설명한다. 혹,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1차 산업혁명 당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이나, 불평등의 확산 정도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왜 반작용은 언급하지 않았을까?

우선, 근거 없는 낙관주의다. 인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잘 살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다. 『팩트풀니스』와 같은 책은 실제로 과거와 비교했을 때 수치로 볼 때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근거들만을 찾아서 제시한다. 통계적으로 조작하지는 않았을 테니, 읽다 보면 세상이 좋아졌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거 어느 왕이나 귀족도 스마트폰은 없었다.”라는 시대를 거스르는 비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은 과학 기술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정적인 부분을 무시하거나, 그 대책은 항상 있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제리 카플란 인공지능의 미래』에서도

“자동화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결과에 이른다는 자연법칙 같은 건 없다. 이는 사고방식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야 할 사안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최대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부를 관리하고 분배할 통제력과 융통성이 충분히 있다.”

라고 말한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는 더 발전했기 때문에 새롭게 발생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끝판왕은 당연히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을 비롯한 ‘특이점 주의자(Singularitarians)’들이다. 이들은 ‘과학 기술을 통해 미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확고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다음으로 산업혁명의 반작용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저자가 역사와 무관한 전공자들이어서 역사적 반작용을 다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출간물은 미래학, 비즈니스 분야로 분류된다. 당연히 저자들도 이공계 출신이나, 경영학 전공자들이다.


반작용과 진통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긍정적인 미래의 양지와 더불어 항상 부정적인 그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떤 미래를 예측하는 데 그 긍정과 부정을 모두 다루는 것은 기본이며, 합리적인 방법이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은 다른 산업혁명과는 다르게 예측되는 혁명으로 역사적 사실로 기점을 구분했던 과거의 혁명과는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산업혁명은 결과를 보고 나서 원인을 분석해서 이해했지만, 4차 산업혁명은 앞으로 발생할 문제점을 예측해서 대비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져 있다.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그 진통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제1차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과 반작용: 러다이트 운동, 공산주의 발생

18세기 후반에(1776년에 애덤 스미스는 명작 『국부론』을 출판했고 산업혁명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1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공장에 기계들이 설치되고 자동화의 걸음마를 시작한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밀린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쫓겨났다. 인간은 가진 것이 있을 때는 몸을 사리지만,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두려울 게 없는 법이다.

1811년부터 1817년까지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진행됐다. 러다이트 운동만을 따져보면, 실패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정부는 1813년 3월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한 노동자 중 14명을 교수형에 처하면서 맹렬한 여파가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은 도화선이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다.


러다이트 운동 이후 공산주의가 태동하고 성장했으며, 1848년 혁명이 발생했을 때도 러다이트들이 기계와 공장을 파괴했다.

1867년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전쟁을 선포한 공산주의가 등장했고, 그 대결은 1990년대 냉전이 해체될 때까지 계속된다. 지금도 사상적인 대결은 종식됐다고 선언하기 힘들다.


세계 질서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에서는 1차 산업혁명 시기 불평등의 영향이 1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1차 산업혁명은 분명히 많은 사람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안겨 줬지만,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분기(Great Divergence)’ 즉, 서구 사회와 나머지 사회 간의 엄청난 격차를 만든 기점이었다.



제2차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과 반작용 : 양차 세계대전, 냉전의 시작과 고착

제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아무런 저항이 없었을까? 시기적으로 보면 19세기 후반에서 1960년대에 걸친 산업혁명이다. 양차 세계대전이 이 시기의 한복판에서 치러졌고, 1920년대 후반에는 대공황(1929년)이 있었다. 그리고 끝 무렵에는 냉전이라는 이념적 대립이 시작되고 고조됐다.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은 이후 많은 것들을 생산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비중 있는 것을 꼽는다면, 핵무기를 비롯한 인류를 파멸로 이르게 할 수 있는 ‘무기(weapon)’가 아닐까?


2차 산업혁명 시기는 전 시대보다 더 대량 생산할 수 있어서 공급이 과잉됐던 시대다. 생산물이 풍부해지니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사람이 부(富)를 평등하게 나눠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일부 – 일부 계급, 일부 국가, 일부 개인 등 - 에게 부가 편중됐고, 부의 확보를 위한 전쟁도 불사하는 실정이었다.

물론, 전쟁 기간과 전후 회복 기간에는 부의 격차가 다소 완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거의 차이를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산업혁명이 인류의 발전과 복리에 기여했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세뇌당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산업혁명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라고 질문하면 확실히 답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모든 인류를 위한 산업혁명은 아니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은 인류의 특별한 계층을 위한 발전 경로일 수는 있지만, 보편적 인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제1·2차 산업혁명 기간에 큰 정부, 작은 정부를 운운하면서 자유 방임주의를 선포하기도 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복지국가를 지향했고, 공산주의 진영에서도 수정주의가 등장해서 사상적 보완이 이뤄졌다. 순수 자본주의와 순수 공산주의는 환상이었음을 양측 모두 인정한 셈이다.


세계사적으로는 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는 사실상 둘로 나뉘어 참 평화가 존재할 수 없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이 기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굴욕과 함께 민족상잔의(6·25전쟁) 비극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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