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1부 4차 산업혁명과 국가(12)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과 반작용 하(下)편

by 조작가Join

제3차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과 반작용: ‘1968혁명’, ‘테러’ ‘아랍의 봄’, ‘신자유주의’


제3차 산업혁명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다. 정보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지금까지도 정보는 중요하다), 1990년대부터 대중적으로 보급된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한 변화를 ‘인터넷 혁명’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둘의 결혼을 축하해준 하객들도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한 그룹도 존재했다. 가장 먼저, 서구에서 ‘1968혁명’ 혹은, ‘신좌파운동’이라고 하는 거센 저항이 등장한다. 이 저항 역시 그 자체로만 본다면 실패했다고 할 수 있으나 좌파의 새로운 철학이 자본주의와 맞서게 된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저항의 소리는 베트남 전쟁 종식, 교육 체계와 정부의 변화에 관련한 것이었다.

그 시점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톤((Robert King Merton)이 본인의 저서 『과학사회학』에서 ‘마태 효과(Mattew effect)’를 처음 언급하는데, 그 뜻은 경쟁 초기에 앞선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취약한 다른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점점 더 벌린다는 의미다. 즉,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를 경고하는 이론이었다.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결과를 놓고 볼 때, 마태 효과는 산업혁명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1968혁명’은 새로운 산업혁명에 대한 저항이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간절히 원한 민중이(학생을 중심으로)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정부, 냉전에 대한 환멸, 그리고 부를 독식하려는 자본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항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상징적으로 냉전이 종식됐다. 자유시장 경제의 승리를 외치고, 『역사의 종말』을 섣부르게 내 던졌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이후 상당한 비판을 받았지만, 그가 말하는 인간의 본능과 관련한 분석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와 『노예의 길』을 통해 사회주의의 실패를 예견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핵심적인 사상과도 유사한 맥락인데, 세 사람 모두 공산주의가 인간의 본성 –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마음 - 을 무시한 태생적 한계를 지녔음을 지적한다.

냉전의 종식으로 세상에 무한한 평화가 찾아오리라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나, 냉전의 억압으로 감히 고개를 내밀지 못했던 새로운 불만들이 튀어 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문명의 충돌을 예언한 헌팅턴의 생각을 증명하듯이 2001년에는 9·11 테러가 있었고, 이후 어찌 됐든 테러 억지를 위한 미국과 아랍국가 간의 소모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가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보급된 후에는 ‘아랍의 봄(Arab Spring)’이 있었으며, 포퓰리즘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Occupy Wall street’이 2011년에 발생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제3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정보와 인터넷의 결합은 분명, 인류에게 긍정적인 생산물을 양산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국가 간 격차를 더 심화시켜 사무엘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갈등 –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 등 - 을 예측하게 했으며, 국내(Domestic)적으로도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돼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됐고, 결과로 사회적 자본이 줄어들었다.


새로운 부의 증식과 불평등

고속 인터넷과 만나 결혼한 정보(빅데이터)는 이제 혁명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가상이긴 하지만, 문자 그대로 지구촌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들의 결혼은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자녀들을 출산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현재는 알파벳),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등은 과거에 볼 수 없는 형태의 기업들이다. 이들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큰 영향력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중에서 애플은 제품을 생산하고 아마존도 상품을 판매하며,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우 등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물리적인 상품이 없으며,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숙박업을 하고 우버도 자동차 한 대 없이 운송업을 하고 있다.

이런 3차 산업혁명 시대의 끝자락의 생소한 현상과 관련한 많은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본 사람은 ‘한계비용 제로’를 말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부의 편중을 지적한다.


부의 편중의 역사와 최근 경향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로 자세한 그래프와 함께 부의 편중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좀 더 설명하자면,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는 그 자본을 통해서 본인의 노력과 수고 없이도 부가 더 증가하는데, 이는 정상적으로 열심히 근로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해결 방법으로 전 세계적 차원의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한다.

이보다 더 세밀하게 분석한 책은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인데 국가 간의 불평등, 국내의 불평등을 나눠서 분석하고 있다. 역시 불평등한 세상을 보여준다.

다양한 의견은 있겠으나 전 세계적으로 부가 편중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 20:80은 이미 옛말이 됐고, 1:99도 넘어서서 0.1:99.9가 등장한 상황이다.

현재 출현한 플랫폼 기업들의 부의 창출은 기존방식과 다르고, 그 수익도 엄청나다. 예를 들어 보면, 2005년에 세 사람이 유튜브를 창업했고, 구글이 16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65명의 직원이 있었다. 2012년에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당시 직원은 12명이었다. 2014년에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했고 당시 직원은 55명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의 미래학자 마틴 포드(Martin Ford)는 『로봇의 부상』에서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발생한 소득 증가분의 95%를 최상위 1%가 가져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의 편재(偏在)의 여파는 많은 부정적인 움직임과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고, 결국 신자유주의를 외쳤던 기관 등에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2016년 WEF(세계경제포럼)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시장 경제 체제 자체를 위협한다고 경고하면서 그 해법으로 ‘포용적 세계화’를 제시하였다. 포용적 성장이란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문제 해소, 계층 간 형평성 있는 분배를 촉구하는 개념으로 기존의 ‘낙수효과(trickle-down economics)’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IMF도 『재분배와 불평등, 성장』 보고서를 통해

“불평등 해소와 성장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부유층에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은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안정적인 경제 성장도 가로막는다.”

라고 하였다. IMF조차도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인정하고, ‘포용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경제 문제의 해결은 정치로

산업혁명의 저항을 설명하면서 주로 정치적인 저항을 언급했는데, 실제로 경제적 약자들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활용할 카드는 정치적 행동밖에는 없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거대한 전환』에서 정치와 경제를 의도적으로 분리하는 무리수로 인한 폐해를 지적한다. 그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원인도 정치와 경제를 무리하게 분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경제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 방법은 정치뿐인데, 정치와 경제가 분리됨으로써 경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물론, 정치와 경제의 유착관계가 심해지면 ‘적폐 세력’이 파생될 수도 있지만, 이 둘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고삐 풀린 황소를 앞마당에 풀어 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민주주의 국가 경제는 자유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공산주의는 계획 경제하에 운영된다. 정치체제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경제 운영 방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는 항상 정치적인 저항으로 등장했다. 경제력에서 차이가 나는데, 경제적인 수단으로 도전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다를 바 없다.

시위, 파업, 테러 등으로 저항해야 정치권에서 협상 테이블을 만들거나 물리력을 동원해서 잠재운다. 또한, 정부의 상태 – 청렴도, 민주주의 정도, 지도자의 능력 등 - 에 따라 경제 정책의 효과도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높은 세율 국가인 스웨덴은 괜찮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페루같이 세율이 낮은 국가들은 역으로 성장률의 저조하다. 모두 정치 시스템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항들이다.

경제의 자유만을 외쳐댔던 신자유주의 시대도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거대한 침체』에서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는 함께 커 갔으며, 둘은 동맹체였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준비는 경제적, 기술적, 비즈니스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다양한 주체들이 어우러지는 틀 속에서 깊이 있는 토론을 우선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틀을 마련해 줘야 하는 주체는 ‘정부(지방자치단체)’여야 한다.

현시점에서 중앙정부는 각 지역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도, 현실은 중앙정부에 권력이 집중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보조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정치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시민들도 거주하는 지역에 관심이 덜하다. 지방선거 투표율이 대선과 총선에 비해 낮다는 게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의 실행은 시민들의 지역 정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고 지역 수준에 맞는 ‘틀’을 구성하는데 훨씬 적합할 것이다.

어떤 사상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이전에는 사회주의가 사상적 반동을 이끌었다. 혹은 ‘아랍의 봄’과 같은 혁명은 민주주의가 리드했다. 그렇다면, 다시 세계적인 저항이 발생한다면 어떤 사상이 대중을 움직일까?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sek)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처음 시작했던 공산주의는 비극으로 끝났으나, 다음에 오는 공산주의는 희극으로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다시 새로운 공산주의가 등장할까?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했듯이 진화된 공산주의가 출현할까? 아니면, 『포퓰리즘의 세계화』에서 미국의 정치 분야 저술가 존 주디스(John B. Judis)가 말하듯이 누군가가 대중을 영합해 선동할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다만, 역사를 바탕으로 추측해 볼 때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는 것뿐이다. 작가 : 조연호, 편집 : 안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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