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대한심(閑心)국 20회

코로나 시대, 목사의 근심

by 조작가Join

코로나 시대(19)


코로나 시대 목사의 근심


1주일 내 세 번의 단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대면 예배를 강행한다고 모든 신도에게 전했다. 잊을만하면 오는 문자에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된 교인들은 짜증부터 났다. 간혹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도 ‘이렇게 자주 보낼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수준이었으니, 초신자는 어떠했을까?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문자는 스팸과 다를 바 없었다.


“예배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과거로부터 예배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어려움이 커도 우리가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전염병과 외부의 압력을 이겨냅시다.”

“교회에서는 나오라고 하니, 이거 어쩌지?”

“그러게요.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예배는 우리 믿음 행위의 본질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굳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제대로 드리는 예배일까?”

“이 양반 큰일 날 소리 하네. 그러면, 왜 교회를 지어요. 그냥 가정 예배로 드리지.”

“예전에야 인터넷도 없고, 기독교 방송도 없었으니 교회에 가지 않으면 예배드리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잖아?”

“그거 몰라요. 이런저런 교회 옮겨 다니고 여러 목사님 설교 듣는 건 신앙적 간음이라고요. 교회에 대한 의리가 있어야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애들이야 집에 있으면 되죠”

“뭐야? 애들은 신앙이 없나?”

“그거야, 뭐….”


부부가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별문제 없었겠지만 서로 다른 신앙관이 있는 가정이라면,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수백 년 전에도 서로 다른 신앙관 때문에 종교가 나뉘고 서로 죽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으니, 그 후손들이 가정에서 다투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예배 시작 전에 부목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맸다. 단상도 정리하고, 교인 맞을 준비로 한창이다. 머리는 잘 쓸어 넘겼고 아침에는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도 했다. 특히 담임 목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마이크 음량 테스트도 여러 번 챙겼다. 혹,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후에 부목사들은 사무실에 불려 가 깨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담임 목사도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는 데, 교인이 얼마나 출석할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헌금이 걷힐지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며칠 전 사무직원이 “목사님 곧 은행 이자 내야 합니다.”라는 말이 며칠 동안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적어도 70% 이상은 나와야 할 텐데. 목회를 30년 동안 하면서 이렇게 돈 걱정해보긴 처음이구먼. 예전에는 알아서들 헌금도 하고, 목사 말도 잘 들었는데, 요즘은 도통 그렇지 않으니. 세상 말세야.’


한참 걱정하면서 교회 정문을 내려다보니 교인들이 하나, 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나타난다. 당국의 방역 지침을 지키려면 200명 남짓한 교인 중 100명 정도만 예배드릴 수 있는데, 조금 더 와도 막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코로나’에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조사하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좋은 인상으로 커피 한 잔씩 주면, 구두로 지적하고 말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게 모든 사람의 마음이었다. 전염병은 전염병이고, 살아야 할 사람은 살아야 하니 말이다.


‘어차피 교인들만 감염되지 않으면 된다. 최근에는 이쪽에는 환자도 크게 늘지 않고 있으니, 문제없다.’


목사들의 생각은 현실적인 교회 운영에 집중한다면, 교인들은 샤머니즘에 가까운 신앙적인 자세로 교회에 나온다.


‘예배드리러 왔는데, 설마 감염되겠어? 목사님이 강요한 예배인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지.’


현실과 신앙이 공존하는 게 교회의 참모습이다. 헌금이 없으면, 운영할 수 없고 교인이 줄어도 운영하기 힘들다. 그리고 교회가 사라지면, 교인들은 교회에 더 나가지 않거나, 다닐 만한 교회를 찾아 전전긍긍한다. ‘우리 교회’, ‘우리 교회만’이라고 외쳤던 교인들도 교회가 문을 닫으면, 아쉽지만 다른 교회를 찾아 떠난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집을 팔았다는 전설과 같은 간증은 믿어지지도 않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더라도 자기와는 관계없는 남의 일일 뿐이다.


“여보, 우리 2주 정도 교회에 안 갔잖아?”

“그렇지. 왜?”

“그러다 보니, 진짜 헌금을 안 내게 되는 거 있지.”

“헌금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왠지 찝찝한 거 있지.”

“그러게, 신앙도 신앙이지만 습관이 참 무서워.”


알렌 선교사의 첫걸음이 이 땅에 내디딘 지 150년 정도 됐다. 그 시절에 지어진 교회는 역사의 잔해를 보여 주는 관상용이 됐고, 산업화 시대에 콘크리트나 빨간 벽돌로 지어진 교회들은 노후화돼 허물고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새로 건축하면 좋겠지만, 이미 오를 만큼 오른 땅값과 건축비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교회들은 새 교회 짓는 유행을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리모델링을 하는 교회가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비용이 적게 드는 건 아니다. 이래저래 카페도 넣고, 도서관도 넣고, 어느 교회의 뭐가 좋더라는 말을 듣고 꾸미다 보면, 비용은 새로 짓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과거처럼 헌금이 걷히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건축하다 보면, 당연히 탈이 나게 마련인데 목사들은 어떻게든 메꿔질 거로 생각한다. 그런 맹신에 죽어나는 건 장로들을 비롯한 교인들이었다.

그렇다고 교회 상태를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었다. 새로운 세대, 어린 세대는 교회 외양만 보고도 교회를 거부하니 말이다.


“아빠, 애들이 우리 교회를 보고 깡통 교회래요.”

“응?”

“교회 탑 있잖아요!”


과거 새벽을 알렸던 교회 종탑은 이제 소음 공해로 지적돼 함부로 울리지도 못하다 보니, 아이들이 봤을 때는 그냥 깡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무리해서라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앞으로 교인 수는 더 줄 게 뻔했고, 아이들 중심으로 이동하는 부모들의 성향을 고려해서라도 깨끗하게 정비하지 않으면 기존 교인들도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교회의 안내 문자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정해진 좌석이 거의 다 찼다. 목사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예배 순서에 따라 찬송을 부르고, 대표 기도가 끝났다. 오랜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니, 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역시 예배는 교회에서 드려야 해!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느낌이야!’


원래 성가대의 찬양이 있어야 했지만, 이것만큼은 실행하기 부담스러웠는지 생략했다. 대신 성악을 전공한 교인의 특송이 있었다.


“‘코로나’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예배를 위해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는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일 성수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한 예배는 어떤 외압에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두 주나 예배를 걸렀음에도 목사는 주일 성수를 강조한다. 그러나 대부분 교인은 이런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미 정부의 권고사항을 어기고 교회에 나온 것이어서 그런 모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 느끼는 감동이 중요할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어여쁘게 여기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우리의 신앙을 보여 주는 길입니다. 전염병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을 막을 수 없으며, 정부의 탄압도 예배를 사모하는 우리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정말 예배드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마치 북한 지하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동포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요즘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교회를 탄압하고, 우리의 기본이 되는 예배드릴 권리를 빼앗으려 합니다. 괜히 좌파 정권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좌파는 기독교를 본질적으로 싫어합니다. 괜히 북한 교회들이 남으로 내려왔겠습니까? 교회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고, 신앙의 자유를 압살 해서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강단에 선 목사는 스스로 감격해서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걸 알지 못했고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을 내면서 설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교인들도 오늘따라 목사가 열정적으로 설교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말로는 방역이지만, 집회의 자유를 막고 있으며, 움직일 수 있는 자유조차 막아섰습니다. 마치 교회가 ‘코로나’의 진원지인 양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 성도들이 단합된 모습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아멘”


교인들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한다. 몇 주 만에 외치는 ‘아멘’은 평소에는 잘하지 않았던 교인들까지도 입을 벌리게 했다. 마치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처럼. 그리고 간혹 연세가 있는 교인은 예배를 드린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역시 예배를 드려야 해! 정말 탄압의 시대에 온전히 신앙을 지키는 게 어려워. 오늘 목사님 말씀도 정말 좋구나!’


“우리 교회는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때문에 ‘코로나’도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어떤 외압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 사랑을 포기하도록 하지 못할 것입니다.”


30분에 가까운 설교가 끝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헌금 시간이다.


“이제 다 같이 찬양하시면서 준비하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3분 남짓한 찬송을 부르면서 헌금 바구니가 채워졌다. 몇 주만이어서 그런지, 눈치 보는 사람도 없었다. 헌금 방식은 교회마다 달라서 개인 장을 만들어서 매주 헌금 봉투에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교회도 있다. 이런 경우 매년 헌금 액을 작정하게 하는 데 헌금 액수는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이 적도록 강요한다. “작년에 삼천 원짜리 믿음이었다면, 올해는 최소한 오천 원짜리 믿음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듯하다.

그리고 봉투에 돈을 넣어 바구니가 돌 때, 헌금을 넣는 교회도 있는데, 이런 경우 헌금을 준비하지 않으면 당연히 민망함이 얼굴을 따끈따끈하게 감싸준다. 그래서 헌금이 준비되지 않은 교인은 손만 넣었다가 빼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 때나 헌금을 넣을 수 있게 외부에 헌금함을 비치한 교회도 있다.


그날 오후, 담임 목사가 행정직원을 부른다.


“오늘 어떤가?”

“네. 출석 112명입니다.”

“그리고?”

“아, 200만 원 조금 넘게 나왔습니다.”

“음.”

“그래도 지난주와 비교하면 두 배는 더 나왔습니다.”

“알았어요. 고생했어요.”


행정직원이 나가고 난 후 목사는 깊은 한숨을 쉰다. 목사는 앞으로 교회 운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인들의 신앙에 아무리 호소해도 헌금은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 반짝하는 효과는 있지만, 잠시뿐이었다. 헌금은 곧 제자리를 찾았다. 혹, 헌금과 관련한 설교를 자주 하면, 바로 교인들로부터 부담스럽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래서 잘 사는 장로들과 자리를 만들어 교회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들을 때는 수긍하더라도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다들 건축에 동의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 목사님의 생각 아니었습니까?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를 해서…….’


라는 듯이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이자나 낼 수 있을지. 주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도 이번 달은 또 무사히 넘어갈 것 같습니다. 이 역병을 하루속히 몰아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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