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거버넌스를 만들자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당선한 자는 주요 요직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울 가능성이 큰데, 이러한 주기적인 변화와 상관없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민·관·학의 주체가 참여하는 ‘로컬 거버넌스’를 조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차원에서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조직해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마다 관련 부서를 조직해서 준비한다고 하지만, 공무원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학계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과정 중에 지역의 인력자원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유입해야 한다.
로컬 거버넌스는 지역 문제를 당사자들과 지역주민이 해결하는 구성체이다. 로컬이라고 해서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고, 참여 대상을 좁혀서 실질적인 논의와 해결 방법까지도 도출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방역대책은 지역마다 달랐다. 즉, 지역 상황에 맞게 거버넌스를 운영할 수 있다. 단, 지역적 폐쇄성을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나 해결책이라도 외지인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퇴행적인 관습은 버려야 한다.
따라서 로컬 거버넌스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지향해야 한다. 『혐오 사회』에서는 “종교, 정치, 성 등의 다양한 양상들이 자유롭게 번영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를 수호할 의무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한다. 다양성은 거버넌스 참여 대상을 지역 차원에 국한하지 말자는 의미다.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시민, 유학생, 근로자 등을 포함해야 한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이 많은 장점을 보여준다고 한다. 오히려 현존하는 문제점은 지역 시민보다 외지인을 통해서 많이 발견될 수 있고, 새로운 각고에서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개방성이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녀노소, 전문가, 아마추어 등을 구별하지 말고, 최대한 다양한 구성원의 의견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특정한 전공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역량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존중이 권위가 되는 순간 모임은 폐쇄적인 골방이 된다(이런 이유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는 전문가들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그들을 숭배하는 것은 잘 못 됐다고 말한다). 다양하고 생생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성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든, 지방분권이든, 아니면 새로운 창조 도시를 지향하든 간에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토론하고 해결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항시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지역 관공서, 지역 대학과 학계, 기업, 내외부 시민 등이 모여서 ‘사진 한 컷' 용을 위한 회의는 그만하고,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행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회의를 수백 번 해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면, 자원 낭비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현재 문제를 판단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로컬 거버넌스가 지역마다 필요하다.
“미래는 90%가 1인 기업일 것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1인은 일반 시민들을 의미하며, 그 핵심은 ‘메이커스’ 즉,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개인을 의미한다. 메이커스들이 생산하는 물건은 생산자의 필요로 만들기도 하고, 구매자를 위한 생산도 가능하다. 즉, 개인이 경제적인 수익을 위해서 상품 제조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당장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메이커가 돼서 생산 활동에 몰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퇴자(현재 은퇴 시점이 50대에서 60대 초로 구성돼 있다. 기대수명이 평균 80세가 넘는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할 때 은퇴 후 많은 시간을 직업 없이 보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주부, 청소년 등은 메이커 센터에서 STEM 교육을 받아서, (‘최고의 교육’에서는 A(art)를 추가해서 STEAM을 말하고, ‘늦어서 고마워’에서는 STEMpathy을 말하는데, Empathy, 즉 공감이 추가한 것이다) 새로운 경제 주체로 활동할 수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은 물론 중국도 메이커 센터(메이커 플레이스라고도 한다)를 조성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는 실제로 기업 수준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지만, 메이커 센터는 미래에 다양한 소규모 기업이 창출할 수 있는 기반 역할을 할 것이다. 거창한 메이커 센터가 아니라 일정 규모 수준의 마을이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혹은 지역 종교기관이나 복지시설이 머리를 맞대고 설립해야 한다. 메이커 센터는 단순히 상품을 제작하는 공간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시작할 때부터 사회적 자본 형성을 염두에 두고 개장한다면, 메이커 센터는 다양한 시민들로 구성한 공동체 역할을 할 수 있다(이 부분은 STEMpathy를 말하는 프리드먼의 생각과 유사하다).
잉여 시간을 잉여 인간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자로 전환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60대 은퇴자들에게 남은 것은 무덤이 아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하다). 노인들에게는 디지털 격차를 줄일 수 있게 해 줘서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주부들에게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로, 청소년들에게는 대안적인 학습 시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청소년들 교육과 관련해서는 STEAM과 유사하다).
메이커 센터는 중앙정부 차원이 아니라 지역 특수성을 고려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설립해야 한다. 일부 자치단체에서 설립해서 운용의 유효성을 입증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치적을 위한 설립은 예산과 자원 낭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립 시에는 지역 특수성을 고려해서 지역 시민들과 충분한 논의와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좋은 구슬이어도 꿰지 않으면 목걸이가 아니고, 혹 목걸이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착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는 10대들이 페이스북 가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생활 노출 등과 관련한 신뢰성에 대한 의문, 같은 또래끼리의 활동 제약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겪었던 일인데, 어떤 선생님이 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학생이 교사한테 사진 삭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페이스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다 보니, 최초 가입자들의 나이는 현재 10대들이 보기에는 ‘꼰대’로 보일 수도 있다. 세대 차이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서 극복하기가 어려움을 보여준 사례이다. 실제로 소셜미디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세대 간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쪽 모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동체 조성은 힘들다. 그리고 성공하는 모든 스타트업과 혁신기업들 대부분이 온라인을 바탕으로 수익 구조를 형성하고 성장하지만, 성장 배경은 오프라인에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을 위한 소통 공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세대 간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래 소통 공간의 유용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을 위해 안정적인 소통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아직은 미숙한 청소년들 스스로가 만든 방법보다는 낫지 않을까? 시비(是非)를 떠나 청소년들이 고민이 생겼을 때 상담을 위해 찾는 대상이 또래 친구라는 자료가 있다. 선생님, 부모, 선배 등을 찾지 않고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찾아, 공유하기를 원한다. 물론, 비슷한 수준의 청소년들끼리 상담한다고 해서 좋은 해결 방법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대상이 친구라는 의미다. 실제로 부모님, 선생님 등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필자의 청소년 시기를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미래의 주인공은 청소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원하는 콘텐츠는 교육과 관련한 것 외에는 별로 없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바람을 반영한 내용은 거의 없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주는 것은 좋은 정책이며, 마땅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성과를 보면,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금수저’, ‘흙수저’ 등 차별적인 의미를 담은 신조어들만 등장했다(필자는 가끔 유튜브를 시청하는데, 아이들이 나눈 카톡을 바탕으로 해서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 일진과 관련한 내용과 더불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따돌리고 무시하는 내용과 관련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함께 공부하는 학교와 학급에서도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프리프리(freefree)(가)’ 플랫폼 구축을 제안한다. ‘프리프리’는 자유로운 소통과 ‘함께 공감’ 혹은 공유함을 말한다. 물론, 플랫폼 구성은 기성세대가 해줘야 한다. 대신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는 기능과 편집은 청소년들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며, 기성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콘텐츠도 청소년들의 요청을 중심으로 선정하면서 교육, 학습, 문화 등을 균형 있게 분배해야 한다.
‘비공개방’이라고 해서 악성 댓글 등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은 지속적으로 삭제하고, 학교와 지역과 관련한 현황에 대해 청소년들의 생각을 들어 볼 수 있는 창(窓)도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소통 공간이지만,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는 멘토를 지원해 주는 창구도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활용하는 현존하는 플랫폼은 대부분 상업적인 성격이다. 페이스북은 이미 청소년들이 거부하는 기성세대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고, 트위터는 140자 수준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적인 소통의 방법은 『최고의 교육』에서 말하듯이 “비즈니스 리더들은 주로 말하기와 쓰기 면에서 더 나은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직원을 찾지만, 이 능력들은 점점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지적을 더 확장시킬 뿐이다.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독자적인 플랫폼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청소년들을 위한 기성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더 나은 지역 사회와 대한민국을 위해서 교실과 학교 안에서도 민주적인 과정에 학생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즉, 더 커다란 커뮤니티의 정치적 역동 속에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투표 자격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투표할 시공간을 제공하지 않아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아이디어를 대부분 반영하고, 그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자원을 제공해 주는 수준으로 역할을 구분한다면 어떨까? 특히, 코로나 기간에는 청소년들의 접촉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학기, 학년을 맞이해서 친구 사귈 기회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아도 극도의 개인주의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현시점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플랫폼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