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제언(19)

by 조작가Join

한국 교회 편 : 교회 공유경제(1)


교회 공유경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유경제는 트렌드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개인의 소유는 줄어들고, 공유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후 크리스 앤더슨의 『프리』, 리프킨의 『한계비용제로』등은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내용을 설명했다. ‘집카(Zipcar)’를 창립한 로빈 체이스도 『공유경제』에서 공유경제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개인 정보가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발생하는 부에 대한 ‘승자독식’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토머스 프리드먼과 같은 작가는『늦어서 고마워』에서 부의 독점을 우려하지만, 현재 국가 시스템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업이 탄생해서 운영되기 시작하면, 이를 규제할 법 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공백과 이후 법 적용 등의 시행착오가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시대에 우후죽순으로 탄생하는 신생기업들을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공유경제는 영어로 ‘Sharing Economy’라고 한다. 물리적 시공간 등은 공유 돼지만, 그 수익은 일부에게만 쌓이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은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이런 공유경제를 현재“공유경제 1.0”이라고도 하는데, 사이비 공유경제라고 일컫기도 한다. 최단기간에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이 출현하고 디지털 공유경제를 통해 등장한 CEO들이 우상처럼(혹은 구루(Guru)) 여겨진다. 그 예로 미국 주가 총액 1 - 5위에 해당하는 기업과 관련한 책들이 수두룩하게 나왔고, 디지털 공유경제를 활용해서 대박 난 기업들에 대한 책도 끊임없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버락 오바마가 되는 것은 – 정치적 1인 자로 성공하는 것은 - 어렵지만, 디지털 공유경제를 활용한 성공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청년이 스타트업에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타트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의 문제는 좋은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수입되면, 발전하기보다는 원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이 그러했고, 스타트업도 비슷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지만,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네거티브 규제가 아니라 포지티브 규제가 보편적인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스타트업들은 쉽게 성장하기 힘들다.


국내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교회는 다른 사회 조직과 비교할 때 공유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먼저, 공유경제의 핵심은 사람이다. 빌려주는 자와 사용자가 있어야 공유경제가 파생될 수 있다. 그런 다음은 플랫폼이다. 매칭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 없으면, 사업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후에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즉, 상품이 될만한 것들을 말한다. 공간, 물품, 노동력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걸 교회가 가지고 있다.


사람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인간은 마지막 날에 창조됐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했다고 창세기에 적혀있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 생각할 때 세상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다. 우주는 여전히 인간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고 이전에는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 즉 “우리가 중심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지금까지도 수용하지 못한 선언이다. 당연히 기독교인이 믿고 이해하는 하나님도 결국 인간 관점에서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복음적인 메시지를 제외하고 하나님의 뜻, 혹은 성경의 뜻을 각각 해석하면서 다양한 교리가 만들어졌다. 그 해석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서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보수적인 개신교에서는 여전하다.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러한 교회의 성향은 유지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는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가 자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경적 관점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창세기에 나오는 ‘번성하고 다스려라’라는 지상명령은 인간의 번성만을 위한 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력적이었다. ‘치리(治理)’라는 표현이 있다. 이치에 맞게 다스리는 것이다. 이치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절대적인 진리의 개념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한 개념이다. 『새로운 교회가 온다』에서는 현재 상황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직시하면 원시적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시대는 원시가 현재였다. 치리는 당시 환경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경을 현재 시각으로 현미경처럼 분석해서 해석하면 안 된다. 성경의 메타포와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태초 인간인 아담은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붙였다는 건 사물을 인정하고 공존하겠다는 선포다. 다른 말로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다른 사물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붙였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아니면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름 없는 만물은 정복의 대상이 됐고,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소비 거리가 됐다. 환경은 파괴되고 모든 사물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했다. 아담의 후손들은 그렇게 해도 문제없을 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절대 굶주림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인간은 이제 그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절대 빈곤층도 놀랍게 감소하고 있으며, 역설적으로 선진국의 비만 치료와 다이어트 비용만으로도 세계 식량 부족 국가의 국민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인간은 환경만 파괴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도 파괴했다.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다른 국가, 다른 인종을 폭력적으로 지배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혁명 시대의 인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공존의 인간이며, 공유의 인간이어야 한다. 공존은 환경을 포함한 사물을 인정해야 한다. 『어린 왕자』에서는 ‘길들이기’가 나온다. 다른 말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 혹은 만물인터넷은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 사물의 연결 중 나한테 오류가 발생하면 나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오류가 발생한다(물론, 대처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이런 연결은 경계선을 지우고 융합을 강조한다. 서로 섞이기 위해서는 어울려야 하며,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 가운데 발생하는 긴장은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다.


교회는 경쟁력이 있다. 최소 1주일에 한 번 같은 공간에서 연결된다. 어떤 교인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또 다른 교인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일단 기본적으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듣는다.

교회와 관련한 새로운 해석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교회는 ‘정복’ 하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설교하고 있다. 『마음을 파고드는 브랜드』는 ‘유능함’과 ‘따뜻함’을 키워드로 삼아서 성공한 많은 기업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기업이 유능하고 따뜻하다.’라는 표현이 어색할 수 있지만,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기업도 인간미를 갖춰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기업과 같이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체도 관계와 신뢰를 중시하는데, 하물며 진짜 인간이 관계와 인간미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경쟁보다는 협력이 우선되고 경계보다는 통합이 우선되는 시대의 인간은 관계 중심의 인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표준은 그리스도인이다.


플랫폼 : 사용자, 신뢰, 매칭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어느 때보다 많이 사용되는 시대이다. 플랫폼을 제목으로 출간하는 책들도 많다.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사용자와 피 사용자를 연결시켜주는 신뢰할 수 있는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유경제는 쉽게 생각해서 나눠 사용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재산을 공유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눠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눠 쓸 수 있는 물품이 있어야 하고, 그런 물품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공간의 기본적인 조건은 사용자와 피 사용자의 신뢰이다. 내가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허위였다고 한다면 그 플랫폼은 사용가치가 떨어지고, 소멸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사용자 숫자가 기업의 평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미래』에서는 콘텐츠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 분야의 1위 주자를 그 하위 그룹이 추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별한 콘텐츠가 추가되고 비용적으로 큰 이득이 없는 한 기존에 가입한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SNS 중 ‘카카오톡’과 ‘라인’을 비교하면,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라인’이 더 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지만,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을 따라갈 수 없다. 무료 메신저 역할을 카카오톡이 라인보다 빨리 국내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콘텐츠가 비슷하다면, 선점 기업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점을 통해 많은 회원을 거느리게 되면, 기업 평가와 가치가 향상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다. 페이스북 회원이 중국 인구보다 많다고 한다. 시가 총액 4 - 5위를 유지하는 기업인데, 페이스북은 상품을 판매하지도 않고, 특별한 콘텐츠를 제작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들을 소개할 수 있는 네트워크 플랫폼의 역할만으로 수많은 회원을 거느렸고, 그것으로 부와 명성을 얻게 됐다. 마크 주커버그의 정치 입문설이 나오는 이유도 수많은 회원을 거느린 페이스북의 영향에 기댄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회원을 거느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플랫폼에 대한 신뢰다. 콘텐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시공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플랫폼 기업에는 상품도 없고, 따라서 수만 명이 넘는 직원을 통솔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높은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음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를 높여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플랫폼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위에서 플랫폼은 사용자와 피 사용자를 매칭 하는 신뢰할 수 있는 시공간이라고 했다. 교회는 실제로 많은 교인이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용하는 시공간이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교회는 다른 사회 조직이나 기관과 비교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곳이다(물론,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사기도 있고, 절도도 있다).

신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정기적으로 내는 헌금을 들 수 있다. 헌금 액수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갈 때마다 헌금을 낸다. 사회 어떤 조직을 살펴봐도 공간, 상품, 노동력 등의 대가 없이 돈을 내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기부를 통해 운영되는 NGO가 있을 수 있다). 그만큼 교회는 교인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즉,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신뢰는 확보됐다. 다음은 피 사용자와 사용자, 구성원의 문제다. 현재 교회는 사용자는 교인이며, 피 사용자는 교회를 운영자 역할의 교역자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서 피 사용자는 주중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교역자만으로는 부족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직분 자들이 주중에 활동해서 교회가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수준에서 교회는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은 불가능하다. 공유경제를 위한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 사용자와 피 사용자를 등록시키고, 이들을 원활하게 매칭 할 수 있는 시공간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구축해야 한다.

대부분 교회가 연중행사로 바자 회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 수익금은 불우이웃 등을 돕는 데 사용한다. 취지는 좋지만, 모이는 물품은 대체로 좋지 못하다. 그리고 1년에 많아야 한두 번 진행하기에 교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바자 회에 가면 헌 옷, 헌 물품 등이 나오고, 간단한 분식류를 판매한다. 물건들을 보면, 제한적이어서 개인들이 원하는 상품을 찾기 힘들다.

바자 회가 명목만 가져가고 실제적인 수익 활동이 되지 않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해보면, 일단 무료로 물품을 기증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선뜻 기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 보니 바자 회에 나오는 물품은 돈을 주고 구매하기에는 부족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다음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행사가 아니라 한 해에 한두 번 진행되기에 관심도가 떨어져서 기증할 물품이 있어도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교회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증품을 매주, 혹은 상시 적으로 받고, 상시 적으로 판매하면 된다. 기증품은 무조건 무료 기부가 아니라 물품의 상태와 가치에 따라 기부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유료와 무료를 구분해서 운영해야 한다. 물론, 유료 물품은 판매액의 10% 정도를 수수료로 떼야하며, 무료는 100% 플랫폼의 수익이 되도록 한다.

또 하나의 선택지로 대여가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 교회는 승합차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성도들의 모임 등에 무료로 지원한다(기름값은 사용자들이 부담한다). 그러나 상시 적으로 대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주차장에 방치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와 관련한 다양한 플랫폼 기업이 있는데 그중에서 ‘집카’는 대부분 차량이 90% 이상 주차돼 있다는 정보를 활용해서 차량 공유 플랫폼을 탄생시켰다.


다음은 매칭의 문제다. 현재는 사용자와 피 사용자 수가 적어서 매칭 문제가 발생할 수도 없는 수준인데, 그 수가 많아졌을 때 교회는 매칭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교회는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교인들이 출석하는 시공간이다. 따라서 홍보가 잘 되고, 온라인 플랫폼과 앱이 잘 구축돼 있다면, 매칭은 어렵지 않다.

교회에 별도의 운영팀을 두고 인터넷 등으로 물품을 기증받고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교인들은 수시로 물품을 기증하고 필요한 사람들은 교회의 온라인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 기부자나 구매자나 수익 일부를 선한 일에 활용한다는 걸 알기에 사용자의 마음에도 기쁨이 될 수 있는 매칭이 될 수 있다.

아울러 1세대 공유경제의 승자독식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교회에서 실현할 수 있다. 사용자, 신뢰, 매칭 시공간 등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건 경제적으로 볼 때는 자원 방비이며, 성경적으로 볼 때는 재능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열 달란트나 가졌으나, 이를 활용하지 못해서 주인이 돌아왔을 때 열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는다고 한다면, 이를 용서할 주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오히려 사회에서 스타트 기업으로 성공한 자들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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