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대한심(閑心)국(25)

대한민국 군대(1)

by 조작가Join

대통령이 바뀌다


“오빠 군대 꼭 장교로 가야 해? 사병으로 가면 2년도 안 한다던데, 오빠가 가는 학사 장교는 40개월이던데 너무 길다. 내가 기다릴 수 있을까?”


이미 장교로 군에 가기로 한 지원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군대 문제를 생각했을 때 단 한 번도 사병으로 입대한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말에는 그토록 굳건한 마음이 흔들리다 못해 구멍이 뚫리고, 확고한 사상의 흐름도 끊겨버렸다.


“이미, 지원했는걸. 그리고 사병보다 장교가 자주 나와서 자기를 자주 볼 수도 있을 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원이 생각해도 복무 기간이 짧지 않았다. 40개월이라는 시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병과 비교할 때 학사 장교의 복무 기간은 거의 두 배였다. 대체로 많은 연인이 일병을 달기 전 헤어지는 걸 보면, 지원도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떨어져서 못 살 듯해서 울고불고, 유치한 소리란 소리는 다 가져다 붙이지만, 인간은 어쨌든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몸이 멀어지면, 당연히 마음도 멀어지고 그러다 보면, 가까이 있는 새로운 사람이 더 다정해 보이기 마련이다.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해 왔다. 모든 게 시한부였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있어도 입대 날을 생각하면 시한부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러지 않아도 장교로 입대 준비하면서 계속 들었던 이야기가 “넌 언제 군대 가냐?”라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장교 준비하고 있어서요.” 그러면 꼭 사병으로 전역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토대로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다. “장교로? 그거 길고, 그렇게 도움되지도 않을 텐데.”

그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주절거린다. 그럴 때마다 지원은 “그래서 사병으로 전역한 당신들의 삶은 좋습니까?”라고 쏘아붙이고 싶다.


아우리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지원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사병으로 입대할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장교로 입대해서 길게 있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픔은 꼭꼭 숨어있다고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 뭔가처럼 단단한 마음가짐을 무너뜨리고 만다.


‘휴, 내 청춘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지원은 갑자기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


‘지금 스물다섯, 전역할 때쯤이면 스물아홉. 그리고 2개월이 지나면 서른이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은 서른이라는 나이가 어리석은 수준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2000년대 초반, 이십 대 청년 지원에게 서른은 곧 남자의 상징적인 나이였다. 정말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동물이다.


“진섭아 너 다음 주에 군대 간다며?”

“응, 강원도 101 보충대까지 가야 해!”

“누가 데려다준 대?”

“응, 광원이가 어머니 차를 가져오기로 했고, 너도 갈 거지?”

“당연히 가야지.”

진섭은 고등학교 동창 중에 가장 먼저 군대에 간 친구이다. 지난달에 만났을 때만 해도 실감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단지 통화만 했을 뿐인데도 진섭이의 축 눌어진 어깨가 보이는 듯하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컴퓨터 관련 자격시험을 준비하다가 입대하는 거여서 제대로 사회 맛도 보지 못하고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


숱하게 들은 복학생과 나이 든 사람의 말이었다.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됐을까? 꼰대가 된 것은 확실한 거 같은데, 그들이 말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게 전부인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자기주장이 강한 후배를 보면, 항상 “네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래.”라는 말로 자신의 불합리성은 그대로 둔 채 대드는 후배의 군대 미필 경험을 대검처럼 꺼내 든다. 그러면 그 후배는 조소하듯이 “내가 군대 다녀오면 형처럼은 안 합니다.”라고 소리친다. 알고 보면, 이 선배도 과거에 선배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사람이다. 그저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그가 듣기 싫었던 말을 후배에게 똑같이 읊어대는 것이다.


“자기야, 세상에는 여자, 남자, 군인이 있다는 말 알아?”

“응. 들어봤어.”

“이제 자기도 군인 되는 거네.”


아민은 최근에 입대 준비로 많이 수척해진 지원의 마음을 애써 다독이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입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전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있다. 누가 보면, 마치 부부로 느껴질 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헤어질 때면 항상 지원과 아민은 눈물을 흘렸다. 무슨 공식처럼 웃으면서 만나지만, 헤어질 때는 영영 이별이라도 하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군대에 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잠시 떨어져야 하는 애인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연인은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닌데도 슬퍼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는데도 매일 눈물을 흘릴 만큼 애달픔이 모든 걸음마다 달려있었다.

지원은 아민에게 죄인이었다. 혹, 고무신을 거꾸로 신더라도 그녀를 책망할 수 없었다. 이별의 원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지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병역의 의무를 무조건 수행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문제였다.


1997년은 경제적으로는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를 대통령이 선언해야 했던 충격적인 해였다. 마침, 대선도 있는 해여서 경제적 참혹함 속에서도 정치적 이슈를 머릿속에 넣고 다녀야 했다. 정부 수립 최초로 야당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여당 후보를 앞서고 있었지만, 선거는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면 그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선거는 늘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이런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도 야당 후보는 여당 후보를 압도하지 못했다. 지역이 찢어져 몰표를 주는 상황이었고, 여당은 인구로 볼 때 야당 텃밭의 두 배가 넘는 유권자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론 조사는 박빙이었다. 이런 현상은 여당에서 한 후보가 과거 독재자를 오마주하고 흉내 내면서 뛰쳐나간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야당 후보는 이런 상황 속에서 과거의 정적이었던 세력과 결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선거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최근 알아본 결과에 따르면, 여당 후보의 아들이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그거 이용합시다.”

“사실, 그쪽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아들 군대 보내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어서요.”


좀 사는 집의 자녀들은 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군대에 안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어렵지 않게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한두 명이 편법으로 면제받으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부류의 자녀들이 너나 할 거 없이 군 면제를 받으면 병무청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는 게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니 잘 됐죠. 이참에 그 동네 사람들 적으로 돌리고, 우리 편을 제대로 만들면 될 거 아닙니까? 아마 이 이슈 터지면 60만 현역 병들이 여당을 찍지는 않을 겁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한 번 작업해 보겠습니다.”


과거라면 별거 아닐 일이 순식간에 대형 사건이 됐다. 여당 후보의 자제가 군대 면제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사실상 불법적인 병역 기피였다. 여당은 서둘러 대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유학 가 있는 아들들이 서둘러 귀국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당당할 수 없었다. 체중계를 밀어 넣는 기자들의 시선을 회피하고 체중계에 올라가라는 요구를 도망치듯 피해서 기자 회견장을 떠나 버렸다.

여당 후보의 아내는 방송에 나와서 클린턴 힐러리처럼 남편을 비호하려고 했으나, 진정성 없는 사과와 부잣집 마님 행색은 오히려 유권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줬을 뿐이었다.


치열한 선거 일정이 끝나고 대망의 선거 날, 1997년 대선은 대한민국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러나 그 표 차이는 채 50만 표도 되지 않았다. 제3의 후보가 여당 후보의 표를 잠식하고, 중부권 세력과 결탁했고 더해서 병역 문제를 터뜨려서 얻은 승리였다.


“어허, 이거 참.”


대쪽 같은 이미지로 정평이 나 있는 여당 후보였지만, 대쪽이 안으로 굽는 갈대일 줄은 자녀 문제가 등장할 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표 차이가 얼마 나지 않습니다. 자제분들 때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쪽에서 다른 후보가 독립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당선하셨을 것입니다.”


아직 여당 후보의 가치는 소멸하지 않았다. 막판 변수만 없었다면, 그가 대통령이 됐을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야당 후보조차도 신승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다시 시작합시다. 5년 잘 준비해서 압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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