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대한심(閑心)국(27)

대한민국 군대(3)

by 조작가Join

대한민국 군대(3)


박빙이었다. 지난번 선거에서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승부를 펼쳤다면, 이번에는 머리카락 한 가닥 차이로 당선이 결정될 터였다.


“저쪽 지지율이 생각보다 많이 올랐어. 어떻게 된 거야?”


야당 후보는 지난번 선거 패배의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압도적으로 앞섰고 추격을 허용하긴 했어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어쨌든 당선은 뺏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미 각계각층에서 머리를 숙이고 잘 봐 달라는 굽신거림이 시작됨도 몇 개월째였다. 인간은 원래 현실을 그대로 보기보다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세상, 굳이 본인한테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필요 있겠는가? 야당 후보는 당선의 단꿈을 매일 꾸면서 나날을 보냈다.


‘설마 내가 저런 수준한테 지겠어?’


여당 후보가 선출됐을 때, 오히려 반색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주변 참모나 여론 기관, 검찰 등 모두 미리 축하 인사를 할 정도로 이변 따위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탈당해서 표를 먹어 치우는 두꺼비 같은 인간도 없을 테니.


“잠시, 두 후보의 연합으로 지지율이 반등한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 둘이 끝까지 함께 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후보님도 아시겠지만, 정 총재는 우리 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렇긴 한데, 지지율이 바로 코밑까지 따라왔으니 말이지.”

“그래, 김 비서 우리의 요구 사항을 저쪽에 전했지?”

“네.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뭐? 우리가 좀 과했나?”

“아닙니다. 협상의 여지를 두고 전한 것이니 당연히 앓는 소리는 당연합니다. 다만, 대화를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뭐라? 그럼 뭐 하자는 거야?”


정 총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일 후보 결정전에서도 떨어진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자신이 승복하자마자, 지지율 상승이 보이는 데도 자신의 의견을 묵살한 여당 후보의 의도가 어쨌든 괘씸했다.


“내가 직접 후보를 만날 테니, 시간을 잡아!”

“예. 총재님”

“그리고 오늘부터 합동 유세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고!”


원래 사업은 치고 빠지는 걸 잘해야 한다. 오른다고 계속 오르는 게 아니고, 떨어진다고 계속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발을 빼야 할 때도 있고, 이익이 적더라도 그만 손 떼야할 때도 있었다. 정 총재는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면 선거에 좋을 게 없다는 속내를 행동으로 보여주면 여당 후보의 반응이 고분 할 거로 생각했다.


“후보님, 정 총재가 내일부터는 합동 유세에 동행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 이유가 뭐지?”

“아마도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인 듯합니다.”

“끝까지 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가야지. 왜 그렇게 하나는 보고 둘은 못 보는지.”


여당 후보도 답답했다. 요구 사항이 부담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항이었다. 다만, 선거 이후에 나누고 싶었다. 물론, 선거 후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알 수 없었지만, 단일 후보 승복이라는 명분을 살려서 정 총재의 지분을 인정해 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중을 듣기도 전에 서둘러 요구 사항을 전해왔다. 그러다 보니, 선거 본부가 하나로 똘똘 뭉쳐도 이길까 말까 한 선거 기간에 찬반으로 나뉘어 시끄러운 잡음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대선 후보지만, 여전히 당내에서의 힘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정 총재의 행동은 여러모로 선거 본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일 유세 이후에 정 총재가 후보님을 뵙기를 요청해왔습니다.”

“그렇게 하지.”


선거 본부 안팎은 어수선했다. 단일 후보가 된 후 지지율이 상승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당연히 정 총재의 요구 사항이 그들을 옥좨 올 거로 생각했다. 결국, 밥그릇을 얼마나 양보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일단 거세게 나가서 양보할 밥을 최대한으로 줄이겠다는 심산이었다.


“정 총재 입장이야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당한 수준을 요구해야 들어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아무리 후보 자리를 내려놓고 우리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절반을 요구하는 건 거의 날강도죠.”

“그러나 저러나 이러다가 지지를 철회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 후보가 경선을 통해서 선출될 거로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어차피 당선도 어렵고, 된다 한들 힘이나 제대로 발휘하겠습니까?”

“하기야, 그렇죠. 될만한 사람이 후보가 돼야 했었는데, 참…….”

“후보님 저쪽에서 정 총재와 후보가 만난다고 합니다.”

“그래? 어떻게 보나?”

“후보님께 좋은 상황이 될 거 같습니다. 정 총재가 오늘부터 합동 유세에 빠진 걸 보면, 둘의 만남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 거 같습니다. 정 총재야 없는 거 없이 자란 사람이고, 저쪽 후보는 비주류에 속한 사람이니 함께 하기는 어렵습니다.”

“음.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잘 지켜봐.”


야당 후보는 오래간만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진정 내 차례인가 보군.’


지난 5년이 삽시간에 흩어진다. 낙선한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그를 낙선을 흡족하게 쳐다보는 무리의 표정을 웃는 얼굴로 억지로 삼키며 다시 힘을 길러야만 했다. 다행히 압도적으로 패배한 게 아니어서 다시 힘을 추스르는 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참 힘든 시간이었지.’


여당 후보는 먼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측근은 여당의 후보인 만큼 여유를 갖고 차분히 대처하자고 했지만, 후보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통하지 않으면, 갈라서는 게 맞습니다.”

옳은 말이지만, 현실 정치는 이상과 다르다는 걸 후보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후보는 진실을 강조했다.

‘참 좋은 기회인데, 쉽게 갈 수가 없구나. 지지율도 상승하고 어쩌면 당선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오늘 서로 접합점을 잘 찾아야만 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 총재님 오셨습니다.”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린다. 그리고 검은 양복에 타이를 하지 않은 정 총재가 들어온다. 그의 눈에는 후보를 업신여기는 표정이 가득하다. 반면에 후보는 환하게 웃으면서 열린 표정으로 맞이한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좀 일찍 왔습니다.”


정중한 후보의 말씨와 태도에 정 총재는 ‘내가 이겼다.’라고 생각한다. 월드컵 개최도 이런 줄다리기에서 승리한 결과물 아니었던가.


“제가 보낸 제안은 잘 받아 보셨지요?”


이미, 부정적인 답을 들었음에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내가 없으면 당선은 어렵다’라는 상황을 강요해서 자신의 요구 조건을 수락하게 만들려 했다.


“네. 잘 받아봤습니다.”
“그런데, 좋은 답장을 제가 받질 못했습니다.”

“참 송구하게도 그렇게 됐습니다.”

“네. 그럼 오늘은 그 답을 주시렵니까?”

“저는 그저 진심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총재님이 단일 후보 결정 방식에 동의하셨고, 승복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합동 유세를 다니면서 저를 지지해 주신 것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네. 별말씀을요. 오늘 일 잘 끝나면 며칠 함께 하지 못한 부분까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허.”


정 총재는 승리가 목전에 있음을 예감했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주신 요구 조건은 저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네?”

“차기 후보 결정을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각에 요구하신 숫자를 맞춰 드리는 것도 저만의 결단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정 총재는 애써 일그러지는 인상을 부여잡고 태연한 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불만 가득한 표정이야 얼굴 근육에 잔뜩 힘줘서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가릴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아랫사람처럼 후보를 내려 봤는데, 지금은 아예 하도급 업체 담당자 쳐다보고 있었다. 앞에 앉은 사람은 말만 후보일 뿐이지, 본인 앞에서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항상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허. 그러면 도대체 오늘 왜 만나자고 한 건지?”

“저는 총재님이 원래 약속하신 대로 저와의 단합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시길 간절히 요청합니다.”

“뭐요? 내가 원하는 조건은 하나도 수용하지 않으면서 주장만 하시겠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정 총재는 더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힌다. 여유 있는 승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려움 없이 귀공자로 자라서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철부지의 당황한 모습을 회담장에 그대로 가져 놓았다.

“저는 원칙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총재님이 차기 대선에 후보가 될 수 있도록 공정하게 돕고, 내각에도 좋은 인재를 추천해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후보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었다. 어리석고 나약해 보이기만 했던 후보가 왠지 한없이 커 보였다. 하지만, 정 총재의 자존심은 그런 깨달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면, 저는 지지를 철회하겠습니다. 그리고, 출마도 하지 않겠습니다.”


후보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진심이 통하지 않으면, 같이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정치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지금 끌려다니면, 당선 후에는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겠습니다.”


가볍게 들어온 발걸음이 나갈 때는 성급하다. 올 때는 승리를 예견했지만, 갈 때는 패배감과 수치심을 한가득 안고 돌아서게 됐다.


“웃긴 놈이야.”


그러나 이미 우스운 꼴은 본인이 돼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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