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4차 산업혁명과 국가(18)

4차 산업혁명 시대, 장밋빛이다?

by 조작가Join

200 - 710 = -510


4차 산업혁명의 빛과 어둠을 살펴보기 전에 ‘200 – 710 = - 510’을 보자. 마이너스 510이 정답인데, 생략된 0(zero)이 다섯 개나 된다. 즉, 마이너스 510만이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와 관련된 뺄셈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미래에는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710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전했다.

앞이 캄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설마 나는 괜찮겠지.’라고 하면서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현 정권의 81만 개 공약에 여전히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측은 긍정적이지 않다. 미국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는 “현재 직업의 47%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고, 국내에서도 2016년에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10년 안에 약 1,575만 명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실에서 안전지대는 없어 보인다.

물론,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잘 교육해서 대비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주장을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터리(William Easterly)는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에서 ‘러다이트 오류’라고 하면서 부정한다.

결론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겨우 살아가는 청춘들한테 찾아오는 미래는 따뜻한 햇볕이 드는 날이 아니다.

* 러다이트 오류 : 기계가 도입되면, 한동안은 직업을 잃는 사람도 있겠지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 고용이 새롭게 창출된다는 것


최근 통계 - 플린 효과(Flynn effect) - 를 보면, 지능지수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즉, 현대인은 우리 선조들과 비교할 때 똑똑해졌다. 그런데도 현재 우리가 알아야 할 4차 산업혁명의 중요 기술 관련한 설명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한글로 쓰여있는 책이나 유인물을 읽어도 쉽게 독해할 수 없다.

책 쪽마다 가득한 약어들을 네이버 지식인이나, 위키피디아로 찾아서 읽다 보면, 답답함을 못 이기고 결국 어느 순간 대충 넘기게 된다. 지식으로 습득하기에는 용어들이 너무 낯설고 양도 너무 많다. 우리의 지능이 다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발전하고, 세분된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도 기계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기술만능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에디슨 이후의 가장 위대한 발명가라고 불리는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 되면 인간과 기술이 완전히 융합되어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커즈와일을 중심으로 해서 싱귤래리티 대학 (Singularity University)이 설립될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커즈와일은 유전자, 나노공학, 로봇을 중심으로 인류는 무한하게 발전할 거라고 그의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끊임없이 주장한다. 이런 낙관적인 전망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호모 데우스』에서도 부연하는데, 하라리는 인간이 신과 유사한 수준까지 도달할 거라고 상상한다.


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은 무한긍정이다. 커즈와일은 본인 스스로가 수백 가지의 테스트를 통해서 노화하지 않는 자신의 몸을 자랑하고 있고, 하라리는 ‘인간 신’을 말한다. 영화로 따져보면, 터미네이터와 같이 기계들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우울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스타게이트와 같이 기계와 공존하면서 편리와 행복을 만끽하는 유토피아이다.

유전적으로 병에 걸릴만한 유전자는 미리 제거하고,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고, 스케줄은 영화 《아이언 맨》에 나오는‘J.A.R.V.I.S.’ 같은 인공지능 비서가 정리한다. 아울러 인공지능 비서가 나를 대신해서 이력서를 내며, 수신하는 쪽에서도 인공지능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 맡긴 인류가 그러한 고민을 떠안고 싶을까?


다른 각도에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 중에는 제러미 리프킨도 있다. 『엔트로피』를 출간할 때만 해도 오염되는 지구를 걱정하면서 태양광을 설교하고, 청지기 자세를 촉구했는데 ‘종말 시리즈’를 출간하면서부터는 객관적인 관찰자로 변신한다.

2001년에 출간한 『소유의 종말』에서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해서 새로운 시대의 주체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하지만 『제3차 산업혁명』,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4차 산업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예측한다. 특히, 모든 상품의 비용이 거의 제로가 되면서, 경제적 평등도 실현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그의 낙관론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출간한 『수소 혁명』에서는 에너지 민주화를 예상했지만, 그의 바람은 아직도 요원하며, 『유러피언 드림』에서는 미국이 지고 유럽 공동체가 뜰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론은 둘 다 지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도 현 정권 수립 과정에 도움을 줬던 유웅환 박사도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선도 기업, 일종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살아남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도 많지만, 그래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라고 전한다.

아침에 인공지능이 나를 깨운다


아침이다. 인공지능 비서가 가장 포근하게 느끼는 음성으로 나를 깨운다. 그리고 수면 중에 체크한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이미, 침대는 내 몸을 엑스레이처럼 훑어보는 센서가 설치돼 있어서 건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병원에 연락한다.


몸에 이상 없다는 보고를 받은 나는 기분 좋게 주방으로 이동한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마시려고 하는데, 냉장고에서 알림이 온다. 각종 음식의 유통기간과 필요한 물품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러나 인간인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물인터넷이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센서들이 유기적으로 결합 돼 내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고려해서 주문하고, 레시피를 제시할 것이다. 최근에는 요리까지 해주는 주방 로봇이 새로 나왔다고 들었는데, 아직 구매하지 않고 있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로봇의 가격이 제법 비싸기 때문이다.


아침 먹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인공지능 비서가 자율주행차를 대기시킨다. 그리고 내가 운행하지 않았던 시간에 운영해서 벌어온 수입을 보고한다. 자율주행차 덕분에 운영비가 전혀 들지 않아서 좋다. 출근하는 동안 업무를 검토하고 간단히 영상을 본다. 영상도 내 취향을 빅데이터로 분석해서 적절히 추천해주고, 관심 가져도 될 만한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자율주행차와 도로, 교통신호, 그 외의 다양한 정보들이 모두 연결돼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코스로 목적지까지 도착한다. 내가 내리면 자율주행차는 다른 운행을 위해 움직인다. 운영비를 스스로 버는 자동차, 참 기특하다.


오랜만에 출근했다. 대부분은 재택근무를 하거나 홀로그램으로 회의를 하는데,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날이다. 오프라인 만남이 필요할 때가 있다. 팀장의 재량에 따라서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기도 한다. 회의는 길지 않다. 이미, 인공지능이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결정만 하면 되는데, 그 결정도 제시한 선택지 가운데서 고르면 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이 하는 일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음악도, 미술도, 스포츠 분야도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기술의 혜택을 받은 인간의 영역과 일반 인간 영역으로 구분해서 경쟁한다. 정말 편리한 세사이다. 다만, 가끔 따분할 때가 있다.


알아서 ‘척척’ 되는 세상이다. 의식주와 관련한 문제는 없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 ‘지옥철’을 떠올리게 하는 출퇴근길도 없다. 인생을 걸어야 할 만큼 크게 책임질 일도 없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으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이 하는 일에 인간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 이미, 현실 세계에서 기술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들도 있고, 앞으로 우리 생활에 적용될 기술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미래는 유토피아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전 세계적인 절대적 빈곤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하루에 1.9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1981년 전체 인구의 44%에서 1990년 35%, 2012년 12.4%, 2013년 10.7%로 감소했으며, 2030년에는 0%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적어도 아사(餓死)하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이다.


장밋빛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와 화사한 그림에도 불구하고 그 곁에는 당연히 가시가 있는 법이다.



작가 : 조연호, 편집 : 안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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