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면 아픕니다. 다 다르게 아파요!

3류 부모가 만드는 우리 미래(아이)(21)

by 조작가Join

무조건 받아주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길입니다


아이에게 좋지 않은 트라우마를 남게 하는 가장 좋지 않은 훈육 방법이 ‘체벌’이라고 한다면, 아이를 망치는 훈육은 ‘무조건 수용’입니다.

현대 가정에는 자녀가 한 명이나 둘입니다. 아이를 너무 낳지 않다 보니, 국가에서는 다자녀(세 자녀 이상) 가정에 여러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혜택보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 그 과정도 힘들어서 다들 손사래를 칩니다. 아는 지인은 셋째가 생기자마자, 병원에 가서 정관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더 낳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몸소 표명한 것이죠.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다산은 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른들은 흔히들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하면서 육아와 양육의 고통을 운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 여러 형제는 굶주리기 일쑤였고, 어쩌다 좋은 음식, 의복이 생기면, 서로 갖겠다고 다투던 게 아주 오래전이 아닙니다.

저만 하더라도 학용품과 옷 등은 손위 사촌들에게 물려받고, 양말이나 옷은 꿰매 입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날 최고의 음식은 짜장면이었고, 하루 용돈 백 원만 받아도 주머니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체벌은 일상이었기에 집에서도 잘못하면 부모님으로부터 회초리 세례를 감사히 받았고, 학교에서도 한 주에 1회 정도는 체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맞았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부모가 거의 없겠지만, 당시에는 “우리 아이 더 때려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교사의 체벌을 탓하기보다는 맞고 온 자녀의 잘못에 대한 적절한 훈육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간혹 아이들이 억울하게 맞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과거가 옳다는 게 아닙니다. 그 시절에는 ‘무조건 수용’은 ‘악(惡)’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아이의 잘못을 감싸는 부모가 결국 도둑을 키운다는 메시지를 담은 만화영화도 종종 방영됐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당연히 훈육해야 합니다. 아이를 두둔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면, 무지로 인한 실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정 연령의 아이들한테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쳐 줘야 합니다.


완벽하지 못한 부모 그러나 완벽한 아이들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종종 큰 소리로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런 아이들을 만류하는 부모가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아이들이 미용실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길래 “여기는 공공장소야, 그러니 최대한 얌전하게 있도록 노력해.”라고 말했습니다. 지켜보던 헤어 디자이너분이 “아이들 잘 교육하시네요.”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에는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면서 돌아다녀도 제재하지 않는 부모가 더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이야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립니다. 종종 그런 자유를 누리던 아이들끼리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 울고, 어른들이 등장합니다. 가만 들어보면, 아무도 잘못이 없습니다. 혹, 잘못이 있다면 상대방 아이랑 충돌한 게 재수 없었을 뿐입니다. 우리 아이는 잘못하기가 정말 어려운 존재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부모한테 완벽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인데도, 왜 그들의 자녀는 완벽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천사와 같은 유아기를 지나면 당연히 훈육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들은 제대로 훈육하지 않습니다. 사실, 훈육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배우지 않았고,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10대 청소년들의 비행 소식이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집단 폭행도 있고, 집단 성폭행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입에 담지 못할 수준의 살인도 서슴지 않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폭력적 행동에 그치지 않고,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서 SNS 등에 유포합니다. 이들은 이런 악질적인 행위를 행했음에도 반성하지 않고, 억울하다고 주장합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합니다. 맞을 짓 했다고 주장하고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러나 폭행은 범죄입니다. 정당방위가 아닌 이상 잘못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생각에는 잘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라면서 잘못했다고 지적받은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소설『82년생 김지영』을 창작한 조남주 작가 등이 함께한 소설 『현남 오빠에게』중에는 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동급 여학생과 성관계 했습니다. 남학생은 우등생이자, 모범생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남학생의 집에서는 아들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여학생의 행실을 문제 삼습니다. 이런 주제를 다룬 소설, 영화가 종종 등장한다는 걸 볼 때, 작가의 상상 속 이야기만은 아닌 듯합니다.


옳바른 훈육을 위해서, 부모는 공부해야 합니다


훈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라떼는 말야”라는 식의 훈육을 하거나, 자신이 살아 온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합니다. 굳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훈육한다면, 우선, “당신은 완벽합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대부분 부모는 훈육과 관련한 정보 – 책, 특강, 방송 등 – 를 외면합니다. 아이 기르는 게 다 똑같다는 게 부모의 생각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나이 들어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릅니다. 과거에 통했던 방법이 현재는 전혀 듣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체벌 같은 경우, 과거에는 당연한 훈육 방법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하지 말아야 할 금기 사항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을망정 좋은 양육 방법은 연구하지 않습니다. 가끔 말을 지독하게 듣지 않는 아이들을 훈육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니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옆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가 똑같을까요?


첫째는 순종적이지만, 둘째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네 언니는 말 잘 들었는데, 너는 왜 그러니?”라고 하면서 비교하기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언니는 분명 말을 잘 들었습니다. 언니에게 맞춰진 훈육 방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둘째는 다릅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형제라도 똑같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둘째에게 맞는 방식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우리 부모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는 모두 똑같은 자녀니까요.

“열 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잖아?”라는 반문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저는 “열 손가락 중 똑같은 손가락이 있습니까? 그리고 모두 아프다고 하지만, 그 아픈 정도가 똑같습니까?”라고 역으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좋은 아빠 TIP


1.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훈육하십시오. 아이를 훈육하는 일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부모처럼 아이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훈육하는 게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아이로 양육하는 게 훈육의 목적입니다.

3. 옳바른 훈육을 위해서 "라떼"를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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