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부모가 만드는 우리 미래(아이)(22)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닙니다. 다름은 다양성이고, 차별(Discrimination)이 아니라 차이(difference)입니다. 이론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지식은 살아 있는 지식이 아니라 국어 교과서를 읽는 듯한 어색한 지식으로 변신합니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중국계 미국인)는 『타이거 마더』라는 책에서 두 자녀의 다름을 보여주었습니다. 비교적 순종적이고 성실한 첫째와 비교할 때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둘째를 같은 방식으로 다뤘다가 낭패 본 경험담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같은 부모의 자녀지만, 자녀들은 각자 다릅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다르다는 게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첫째를 키웠던 감성과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 대단한 경험이 없음에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저처럼 무지한 상태에서 양육하는 부모가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첫째에 맞는 자료를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둘째, 셋째가 태어난다면 그에 맞는 학습을 꾸준히 해야만 합니다. 모르면, 경험이 앞섭니다. 그런데 그 경험이라는 게 너무 일천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수년 동안 만들어진 관성입니다.
물리학 법칙이기도 한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라는 법칙입니다.
즉, 첫째를 키우던 방식으로 둘째를 키우려 하는 것이죠. 다자녀를 둔 부모들은 알겠지만, 태아 때부터 아이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남아와 여아가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태어나는 시기도 다르고, 키, 몸무게, 생김새 등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 경험을 떠올려 보면, 안아는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고, 주아는 상대적으로 무난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아는 낮잠을 자더라도 주위 소리에 쉽게 반응했지만, 주아는 잠이 들면 웬만한 소리에는 깨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패턴도 각자 다릅니다. 먹는 거, 우는 거, 배설 등 의식주가 필요하다는 게 같을 뿐,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모두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다름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당연히 아이들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훈육과 교육이 필요한 시점부터는 더 달라집니다.
셋째, 공동 육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육아는 유아 시절 이후 양육, 훈육, 교육 등에 있어서도 ‘부부 공동’이 기본입니다.
남녀는 다릅니다. 그래서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도 남녀의 차이를 밝혀냈습니다. 과거의 통념으로 인한 관습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으로 성 역할이 불합리하게 결정된 듯한 상황을 부인하기도 어렵습니다.
남자는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필두로 육아도 공동으로 하되 여성이 ‘주’고 남성은 ‘보조’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잠재의식 속에 내재 돼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일반적인 현재도 그렇습니다. 미국에서조차도 엄마가 더 많은 가사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우리 집만 하더라도 아이들과 관련한 부분은 아빠인 제가 더 잘 알고 잘 처리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내가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요. 일반적인 가정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 육아를 하지 않으면, 한 사람한테 육아가 몰리게 돼 있습니다. 한 아이 케어하기도 어려웠는데, 자녀가 둘이 되면, 거의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첫째는 정말 세심하게 키우더라도 둘째는 그렇게 키우지 않고 자유롭게 키우지.”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둘째를 첫째만큼 키울 수 있는 심신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첫째만큼 양육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공동’으로 육아한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조금 더 공평한(아이들을 위해서도) 육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부모의 행복 VS 아이의 행복입니다.
아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성장해서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할 때까지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줘야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대신해서 모진 비바람을 맞아주는 게 당연한 일일입니다.
과거에는 젊은 시절 자녀를 위해서 살고 노후에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보다 개인이 중요해지면서 결혼도 선호하지 않고, 결혼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딩크족)도 많이 생겼습니다. 혹, 자녀를 낳았다 하더라도 실제로 육아의 고됨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가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졌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선배 부부는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는데, 형수님이 당황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임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빨리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또 다른 예는 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큰아이가 안아와 같은 유치원에 다녔기에 가깝지는 않아도 한두 번 인사를 나눴던 엄마입니다.
유치원 졸업 시즌을 앞두고 수기 공모가 있었는데, 제 수기를 그 엄마가 읽었나 봅니다. 당시 그 아이는 1년 전에 조금 더 타이트한 영어 유치원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제 수기를 어떻게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타이트한 유치원에 대한 저의 비판적인 의견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마음에 찔렸는지, 따지기 위해서 거의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전화해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면,
“혹시 아들 있어요?”
“없습니다.”
“아들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 줄 아시고 그렇게 쓰신 거예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엄마들이 카페에서 정보를 교류하는 데 제대로 된 게 아니라고 쓰셨죠? 참, 어이가 없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 그걸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아들 키우기가 힘들어서 아이를 타이트한 학원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의 발전도 고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들을 안 키워봐서 수기처럼 내용을 적었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입니다. 딸만 둘 있는 제가 아들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면, 큰 싸움이 됐겠지만,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난 후,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면 애꿎은 나한테 호소할까?’라는 생각마저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즉, 가정에서 공동 육아가 거의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빡센’ 학원에 보낸 비슷한 처지의 부모끼리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카페에 앉아서 서로 위로하는 게 당시 그 주변의 분위기였습니다.
아이 돌보기가 힘들어서 아이를 더 타이트한 학원으로 보내는 게 정말 좋은 방법일까요? 그 답은 ‘아니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답을 택하는 이유는 엄마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부모가 희생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단, 부모의 행복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라도 아이의 행복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신의 편리와 행복을 위해서 아이의 행복을 저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변명할 수 있습니다. “다 우리 아이 잘되라고 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걸 어떻게 아냐고? 타이트한 학원에 다니면 아이들한테 좋다는 법칙이 어디 있냐고?”
부모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 사이의 갈등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가족)가 함께하는‘공동 육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좋은 아빠 TIP
1. 아빠도 적극적으로 육아(교육, 훈육 등)에 관여해야 합니다.
2.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과 있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 방법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를 위한 방법을 부모가 찾아야 합니다. 역시 공부해야 합니다.
3. 온 가족의 행복 총합을 높이는 방법은 ‘공동 육아’가 최선입니다. 한 명의 희생으로 다른 사람이 편해질 거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결정적인 순간에 큰 갈등이 발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