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말하며 '오늘'에 멈춰있는 부모

3류 부모가 만드는 우리 미래(아이)(34)

by 조작가Join

‘내일’을 말하며 ‘오늘’에 멈춰있는 부모


우리는 미래 시민을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미래 시민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거창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녀는 모두 미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가 살아갈 세상을 더 예쁘고 아름답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시대적으로 볼 때, 우리 자녀들은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게 됩니다. 아마 5차 산업혁명 이상의 변혁 시기를 겪을지도 모릅니다. 생활은 편리해지고, 의식주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행복’, ‘사랑’, ‘가족’,‘신뢰’,‘공동체’ 등과 같은 추상적인 언어가 갖는 의미와 소중함이 쇠퇴하고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에 나오는 책들은 이와 같은 추상적인 언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집단(조직)에 눌려서 움츠렸던 개인의 자유를 주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다시 공동체를 주장합니다. 물론, 과거의 공동체와 지금 말하는 공동체는 다릅니다.

과거의 공동체는 획일성과 단합을 강조하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면, 현재 공동체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래서 당연히 존재한 갈등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다양한 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 같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에스컬레이터처럼 보장됐던 표준화된 삶은 이제 없습니다. 좋은 대학이 삶에 영향을 주는 정도도 굉장히 미약해지고 있습니다. 학력 철폐를 주장하면서 탄생했던 시민단체도 더 이상 학벌이 주는 메리트가 –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세상 – 없는 세상을 인정하며 자진 해체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교육은 성장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발전을 위해 협력을 배우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과열된 경쟁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무한 경쟁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소년과 소녀들이 아이돌을 꿈꿉니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경쟁하듯이 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경연 프로그램을 런칭(launching) 했습니다. 수십만 명, 혹은 수백만 명 중 소수만 선발하는 경쟁 프로그램입니다. 경쟁률만 따지면, 당연 최고 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선발됐다고 해서 아이들의 인생이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스케(슈퍼스타k)’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기는 ‘서인국 씨’ 2기는 ‘허각 씨’가 최종 생존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후 여러 연예인의 등장 무대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흔히 말하는 ‘대박’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가수나 연예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부정적인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폐지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후 슈스케 주역들 일부는 범죄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률을 뚫고 최후까지 남았지만, 이후 대다수는 발전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연예인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으로 여깁니다(이렇게 말하는 게 저의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녀 세대들이 선망하는 연예인이 되려는 미래의 꿈은 현실이 아니라 허상입니다. 우리 세대가 세종대왕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도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만에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시스템을 선망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할까요?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그나마 공정한 경쟁 시스템이라면 좀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공평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여러 통계를 봐도 많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영역에는 ‘공정’, ‘공평’이라는 언어가 계속 공기처럼 떠돌지만, 우리의 일상복이 돼 피부에 밀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아울러 힘에 의한 지배는 계속될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조차도 ‘공평’과 ‘공정’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의 기득권층은 학력을 조작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습니다. 과거부터 자녀들의 병역 기피도 어렵지 않게 해결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런 사람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공평’, ‘공정’을 외치지만, 그 정도 위치에 있는 부모라면, 자녀를 위해서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제로 힘을 발휘하지 않는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요?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청년의 수는 줄지 않습니다. 대학 서열을 비판하지만, SKY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열망은 식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미래 시민 교육이 필요합니다


미래 시민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학원에서는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등장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행복은 여전히 성적순입니다. 돈이 다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제 돈이 최고인 세상임을 당연히 인정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TV에 나옵니다. 이제 성공의 기준이 ‘사(士)’자 돌림이 아닙니다. 오직 ‘돈’이 됐습니다. 좋은 일, 세상을 위한 일, 남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오직 ‘돈’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니, 과거에는 이런 나이브(naive)한 욕망을 감추려고 시도라도 했다면, 이제는 당당히 드러내는 게 미덕인 세상이 됐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해서 비판보다는 순응을 자녀에게 강조하는 게 현재 우리 부모의 모습입니다.


이런 미래는 긍정론자들이 말하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습니다. ‘포용(Inclusive)’을 선전하지만, ‘포용’을 바라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이뤄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고 싶은 바람이 있는 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둡고, 캄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19’로 기존 교육 시스템에서 사귈 수 있는 친구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신입생 경우 이런 상황은 분명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학교에도 잘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하면서 교육은 공동체를 강조하기보다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개인을 강조합니다. 일단, 안전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가득합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잘 케어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방치 수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자녀들이 방치되는 가정과 아이들이 케어되는 가정으로 나눠질 것입니다.

현재 국가나 사회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은 인성보다는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로 오프라인 교육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그러면서 교육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확대됐습니다. 더 전문화되고 세분화 됐습니다.

반면에 학생들의 스킨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말도 사전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좋은 아빠 TIP


1. 부모는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 미래를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미래의 키워드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우리)’이고, 나의 성공이 아니라 서로 발전이어야 합니다.

2. 미래의 키워드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우리)’이고, 나의 성공이 아니라 서로 발전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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