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3월 11일(금) '끝날 거야!'라는 희망
막내 주아에서 시작한 우리 가족 코로나가 벌써 5일째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주아는 활동량이 줄어서 그런지, 먹는 량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중도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반면, 안아는 열심히 먹어서 체격이 더 좋아지고 있었고요. 아이들은 참 다릅니다. 언니와 동생이 다르고, 남매가 다르고 심지어 일란성쌍둥이도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죠? “애들은 다 똑같아!” 나이를 먹고 성장한다는 점은 똑같지만, 그 외에는 전부 다릅니다. 오죽하면 『평균의 함정』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니까요. 두 아이의 다름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코로나 병세의 점정을 찍는 날이었는지, 굉장히 힘겨워하셨습니다.
모든 환자의 아침을 챙겨주고 저는 작은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서 어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9시가 넘으면 검사 결과가 왔는데, 이 날은 10시가 넘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설마?’하는 불안감이 더 심해졌습니다. 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어쩌다 나오는 기침에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처럼 코로나와 연결시켰습니다.
검사 결과는 11시가 다 돼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음성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확진 전에 계속 같이 앉아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불안했었는데, 양성은 아니었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제 코로나에 걸린 가족들을 잘 챙기면 됐습니다. 아내에게 코로나 음성 결과를 알렸더니,
“여보는 슈퍼 면역인자가 있는 사람인가 봐!”
라고 하면서 다행이라고 합니다. 제가 코로나에 걸리면, 우리 가족을 돌봐 줄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저의 음성 결과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던 것이죠. 이런 기쁜 마음도 잠시, 다시 식사시간이 왔고 저는 점심을 챙겨주고, 열심히 설거지를 했습니다. 이쯤 되면, 격리는 환자가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양치질할 때와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오른쪽 귀에 생채기가 났습니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밤에 잘 때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귀에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었죠.
어쨌든 저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기존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산책도 다녔고, 운동도 꾸준히 했습니다. 조금씩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큰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어서 기존 패턴을 유지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생활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기도 힘들었고, 마무리해야 할 글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코로나에 걸린 가족들을 잘 챙기면서 제 건강을 유지하는 정도였죠. 불금이라는 표현이 알아서 자취를 감춘 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말에 쉴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번 주 금요일은 달랐습니다. 뻔한 금요일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금요일이었습니다. 다시 저녁을 챙겨주고 간식을 주고, 약을 다 주고 나서 모두 잠자리에 드는 걸 확인하고 저도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불금이 아니라 썰렁한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거주한 지도 일주일이 다 돼 갑니다. 원래 체력이 약한 편인데, 잘 견디고 있는지 걱정이 됐습니다. 하루에 몇 번 전화도 하고 문자로 안부도 묻지만, 실제로 볼 수 없으니 …
작년 아내 생일을 좀 지나서 벚꽃을 보러 갔습니다. 절정기를 조금 지났고, 일부러 방문객이 적은 곳을 찾아갔는데, 날씨마저 비가 내려서 우리 가족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머니와 장모님 그리고 우리 부부 여섯 명이 여유롭게, 그야말로 벚꽃 비(비와 벚꽃이 반반이었습니다)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내에게
“나는 다른 생애가 있다면,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결혼을 다시 하게 된다면, 여보와 같은 사람이 최적의 상대라는 생각이 들어!”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네?”
“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
다음 생애에도 최고의 반려자일 수밖에 없는 아내가 일주일 동안 집에 없다는 게, 왠지 허전하면서도 그래도 아내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면, 허전함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밤 10시쯤이 돼 잠을 자면서 ‘이제 내일이 지나면 주아는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아이들 모두 정상적으로 등원 등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가족 코로나로부터 벗어날 날이 도래하는 것이죠.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만약,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없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군대에 입대하자마자, 제대를 생각했습니다. 훈련받을 때는 초 단위로 적어 보기까지 했습니다. 절대 안 올 것 같은, 하지만 시간은 지났습니다. 그리고 제대를 했죠. 제대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어려운 훈련, 지루한 군 시절을 잘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의 상자에 오직 하나 남은 ‘희망’은 다른 모든 질병, 증오, 짜증, 탐욕 등 몹쓸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