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지(synergy) : 인문학과 이공학의 만남
인문학이 대안인가?
현재 인문학은 이공학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약세이다. 완웨이강(萬維鋼)의 『이공계의 뇌로 산다』와 같이 이공학적인 방식이 인문학적인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문과를 나와서 인문학을 전공한 후, 학자가 되는 것을 제외하고 전공의 연장 선상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1년 기준으로 인문계 취업률은 79.7%, 공학계 87.8%였고, 전공과 상관없는 일자리를 구한 인문계 출신은 44.9%, 공학계 출신은 23.4%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레드어소시에이츠(ReDAssociates)의 공동창립자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Christian Madsbjerg)는 그의 책 『센스메이킹』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학, 기술, 과학 등 이공학적인 사고가 유리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폭넓은 인문학 과정을 수료하면 잘 훈련된 두뇌의 핵심 요소인 개념적, 창의적, 비판적 사고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 많이 출간됐지만, 시대는 인문학 전공자를 외면한다. 알파벳 같은 글로벌기업이 인문학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면 인문학의 중요성이 잠시 수면으로 떠 오를 뿐이다.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말은 인문학 단독적인 형태를 가리키지 않는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하듯 인문학과 이공학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두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칸트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가 구글에 채용됐다고 하자. 그가 다른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철학 지식만 가지고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의든 타의든 퇴사하고 말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가 친구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가 코딩을 못 한다는 이유로 창업 멤버에서 제외하려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고, 스티브 잡스가 잠시 밀려나고 마케팅 전문가인 CEO 존 스컬리(John Sculley)가 고용됐을 때, 애플은 창의적인 회사가 아니었다.
마크 저커버그(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나 스티브 잡스(리드 대학교 철학과)는 인문학 전공자였지만 모두 컴퓨터에 관련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다. 반대로 구글의 주요 인물들은 컴퓨터 전공자들이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고 채용할 때 인문학 전공자를 선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공학을 전혀 모르는 인재를 채용하지는 않는다. 분명 이공학적인 부분을 다룰 수 있는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할 것이다.
구글의 창립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한 인터뷰에서 “엔지니어들은 주로 매우 한정된 영역에 대해 교육을 받습니다. 하지만 여러 분야를 통합할 수 있어야 남과 달리 생각할 수 있고 훨씬 미친 계획을 꿈꿀 수 있고, 그래야 혁신적 방법을 떠올릴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여기서 다양한 분야라고 한다면, 이공계 출신에게는 인문계 영역일 것이고, 인문계 출신자들에게는 이공계 영역의 지식이 될 것이다. 즉, 이공계적인 사고와 분석 능력과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 이 둘의 조합을 석연치 않게 생각하는 듯하다. 아래는 한 대학의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한 조카와의 대화이다.
필자 : 대학에 합격한 것, 축하한다. 그런데, 영어 교육과라고 해서 전공 공부만 하지 말고, 이공계와 관련한, 특히 컴퓨터와 관련한 학과를 이중 전공하면 좋을 거야. 한국 인구구조를 볼 때 인구는 점점 줄 테고, 따라서 교사 수도 줄일 가능성이 큰데, 코딩을 할 줄 알면, 교사임용에 있어서 유리할 것 같구나.
조카 : 저는 이공계 계통으로는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요.
필자 : 소질이 없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면, 해야겠지. 미래는 영어와 더불어 코딩 능력을 기본으로 갖춰야 하거든.
대학교 합격 이후 며칠이 채 안 됐을 때 해준 조언이었다. 『2018 세계 미래 보고서』에서도 언급하듯이 교사 수는 줄어들 것이다. 학생 수가 줄고, 학교 간 통폐합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교사를 기존처럼 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채용할 때 전공과 관련한 능력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부가적인 능력을 볼 텐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코딩 능력이다. 그러나 조카는 기존 학교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을 받았을 테니, 이공학을 학습해야 한다는 조언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미래는 통섭형 인재를 원한다. 전공 외에 기본적인 코딩 능력이 필수가 될 테니, 싫어도 배워야만 한다. 국가 차원에서 이를 권장하고, 대학에서도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하는데,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고 있으며, 관련 과목을 개설한 대학교도 있다. 그러나 간판은 있지만, 상점의 내부는 아직 오픈 준비가 덜 돼 있다.
인문학과 이공학이 연결된다
인문학은 이공학과의 연계가 매우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이공계는 도구적이고 기계적인 활용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인간과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이 되면 조(兆) 단위의 사물들이 연결된다고 한다. 사물 간 네트워크의 목적은 당연히 인간을 위함이다.
이렇게 과학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지만, 인문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체돼 보이기까지 한다. 철학이나 신학과 같은 순수 인문학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이유는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을 잘 모르고, 심지어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삶은 왜 짐이 되는가?』에서 현대는 정보 관련 언어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비판하면서, 하이데거의 시적 언어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하이데거의 철학이 나치에 동조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대체로 인문주의자들의 주장은 종합적인 판단력과 직관력이 인문학을 통해 형성되기에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현실은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수학이나 통계학 전공자들이며 앞으로도 관련 직종이 계속 인기 있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인문학과 이공학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역사가이면서 미래 저술가인 유발 하라리가 인기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저술한 『호모 데우스』는 상상력이 풍부한 낙천적인 미래 역사가의 작품이라는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인문학 전공자가 이공학을 충분히 학습한 후에 썼다는 느낌이 충분히 전달된다.
과거 복제인간의 출현이 대두됐을 때 세계적인 토론이 있었다. 특히, 종교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문학 분야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Ishiguro Kazuo)가 『나를 보내지 마』라는 소설로 복제인간의 영혼 문제를 다뤘고, 이후 수많은 영화가 복제인간을 주제로 삼아 제작했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분야의 토론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토론의 장이 인문학과 이공학을 연결해 주는 출발선이다.
작가: 조연호, 편집: 안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