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 경계가 아닌, 통합
아날로그의 반격인가? 향수인가?
아날로그 방식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경험하지 못한 매력을 줄 수 있고 이전 세대들에게는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시계만 해도 숫자만 있는 디지털시계보다 ‘짹깍짹깍’ 소리 내면서 움직이는 아날로그시계를 선호하기도 하고, 이모티콘 가득한 전자편지보다도 알아보기도 힘든 글씨가 빼곡히 적힌 손편지에 감동한다.
오프라인 카페가 계속 늘어나고 서점이 더 생기고, 새로운 여행지가 계속 개발되고, 온라인 몰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마존 같은 기업도 오프라인 매장을 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서점으로 유명한 ‘yes 24’가 강남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고, 교보문고와 같은 기업형 서점들은 백화점과 같은 쇼핑몰에 개장하여 공격적으로 오프라인 마케팅을 펼친다.
이러한 현상을 아날로그의 반격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까? 아니면 온라인의 시장의 한계라고 생각해야 할까? 둘 다 아니다. 과도기 상황에서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게 적당하다.
디지털의 등장 이후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분야는 있었을지 몰라도 어느 한쪽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현재 아날로그와 관련해서도 착각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과거 순수한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바탕에다 아날로그를 더한 형태이다.
부모님 세대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세대이다. 디지털 기기에 대체로 어리숙하다. 반면에 우리 세대 – 현재 30대 후반에서 40대 - 는 아날로그를 먼저 접한 후에 디지털 폭격을 당한 세대로 양자를 모두 경험했다. 다음 세대는 디지털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서 부모님 세대가 아날로그를 당연시하듯이 디지털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디지털 네이티브이다.
어떤 세대든 어느 한쪽만 사용할 수는 없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호보완해서 사용한다.
쇼핑과 관련한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세대는 물건을 구매할 때 인터넷 화면을 훑어보며 고르기보다는 직접 오프라인 매장에 나가 입어보고, 신어보고 그러고 나서 직접 선택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 다른 세대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충분히 상품을 보고 가격도 알아본 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가장 저렴한 상품을 구매한다. 이런 방법을 ‘쇼루밍(showrooming)’이라고 한다. ‘쇼루밍’과는 다른 ‘웹루밍(webrooming)’도 있는데, 온라인 배너광고를 통해 알게 된 제품의 정보를 충분히 검색한 후, 제품이 좋다고 판단되면 실물을 비치해놓은 가까운 매장으로 가서 제품을 구매한다.
검색창에 상품번호를 넣으면, 같은 상품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가격만 따지면 쇼루밍 방법으로 가장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가격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전자기기 신상품이 출시되면 전날부터 매장 앞은 문전성시(門前成市)다. 전날부터 줄을 서고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린다고 해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비싼 가격에 구매한 상품을 SNS에 자랑스레 올린다. 이런 소비자는 상품의 가격이나 구매의 편리보다는 경험을 추구한다.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주장하듯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쇼루밍이든 웹루밍이든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이 결합된 방법을 사용한다. 합리적인 가격을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고, 매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더 가치 있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의 무게는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디지털 쪽으로 기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감초 역할을 할지는 몰라도 디지털의 보편화를 거스르기는 힘들다. 사물인터넷을 보편화하고,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는 세상에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대신할 거라는 생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물론, 아날로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파티 준비를 해줘도 그 기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운행된다고 해도 운전을 미치도록 하고 싶어 하는 운전광들은 존재할 것이어서 그들을 위한 제한된 공간과 법 제도가 마련될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도 여행자는 이동을 위해서 걷고, 뛰고, 교통수단을 타야 한다. AR과 VR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찾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단,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고, 우버로 이동할 것이다.
디지로그(digilog)
디지로그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로,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첨단 기술을 의미한다. 독자들의 생각에 따라서는 디지로그를 과거의 언어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이 시대의 합성어로 디지로그만큼 좋은 표현은 없는 듯하다.
클라우수 슈밥(Klaus Schwab)의 『4차 산업혁명의 충격』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물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으로 인간의 모든 행위와 생각이 온라인 클라우드 컴퓨터에 빅데이터의 형태로 저장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 해설을 붙이면 사실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융합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어서 그는 “어떤 이는 디지로그(digilog), 어떤 이는 Cyber Physical System(CPS), O2O(Online to Offline)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정리했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은 3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인 기업이며 이들의 성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뉴욕 대학교 경영 대학원 교수 스콧 갤러웨이(Scott Galloway)의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도 위 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예측한다. 그러나 단순히 네트워크 플랫폼 기업으로 남지는 않을 듯하다.
예를 들어 구글만 하더라도 ‘알파벳’으로 개명하고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사 등도 단순히 디지털 기기나 소프트웨어 회사로 남아있지 않았다. 아울러 과거 제조업의 강자 – GM, 벤츠 등 - 도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기업 – 애플, 구글 등 – 과의 제휴와 협력으로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고 있다. 즉, 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자율주행차를 예를 들어보자. 외관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다양한 프로그램은 특히, 자율주행과 관련한 기능은 기존 자동차와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측면이 더 강조된 느낌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동차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컴퓨터로 불러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구분이 아니라 계속 융합될 것이다. 경계가 소멸해서 양자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개인이나 사회, 국가가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조연호, 편집: 안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