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지방분권이 발전하기 위해서(8)
그렇다면,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최선일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같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는 게 좋습니다. 『블리츠스케일링』 에서는 해결책을 마련할 때, ‘ABZ’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A는 최상의 해결책입니다. B는 차선책이 되고요. 마지막으로 Z는 최악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금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많은 청소년의 목표는 본인의 바람이든 부모님의 희망사항이든 간에 여전히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당연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류대학에 가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일류대학에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수, 삼수 도 할 수 있겠지만, 차선책으로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입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악은 어떤 상황일까요? 본인의 성적으로는 도저히 대학에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 경우, 재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해결책은 존재합니다.
디지털화는 대세고, 현실이고, 특히 디지털네이티브2.0 세대도 이미 성인이 됐습니다. 이들에게 디지털화는 기성세대의 아날로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이들에게는 ‘디지털’이라는 언어는 별도로 붙는 말이 아닙니다. 이들은 카메라를 떠올리면 당연히 디지털 카메라를 떠올립니다. 기성세대가 아날로그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구분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이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졌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한 디지털네이티브3.0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할 때 더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로 인해서 거의 학교에 가지 않은 세대이면서, 디지털 플랫폼 – 줌 등 – 을 사용해서 학교 수업을 했습니다. 10년은 지나야 이뤄질 것 같은 디지털 콘텐츠와 시스템이 2년 만에 이뤄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디지털화의 확대와 성장, 발전은 최선일까요?
1) 긍정적인 의미에서 디지털화
먼저, 디지털화의 경제적 장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최고의 장점은 비용이 제로로 수렴하는 것입니다. 크리스 앤더슨의 『프리(Free)』나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제로』 등에서는 디지털 경제의 장점을 언급하면서 모든 생산물의 제작비용이 거의 제로로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내가 구매할 물건의 값이 거의 ‘0원’이라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제를 ‘공유 경제’라고 말하면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세상을 예언합니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돈’이 없으면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흔하디, 흔한 ‘스타벅스’ 커피를 한 잔 먹으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디지털화로 인해서 과거에는 비용이 발생했던 영역에서 무료 혹은 거의 제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스트림 서비스입니다. 음악, 영상, 영화, 도서 등은 디지털화가 되면서 비용을 아주 적게 들여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많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치적 차원입니다. 먼저, 정보의 투명성입니다. 물리적 시공간이 중요했던 시절,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은 1차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한 번 해석된 혹은 왜곡된 정보를 접해야 했죠. 하지만, 현재는 1차 정보를 그대로 접할 수 있습니다. 글로 올린 것은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읽으면 되고, 영상은 라이브 혹은 녹화본을 볼 수 있습니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로 밀실 야합이 줄어들었습니다. 잠시 20대 대선을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같았으면 후보나 후보 아내의 전화 통화 내용을 일반 국민이 방송을 통해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의 방송은 다소 제한된 상태이나, 다른 채널에서는 훨씬 투명하게 여과 없이 전파합니다. 편집자의 시각을 거치지 않고 원초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과거였다면, 일부에게만 허용된 밀실 정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장두노미(藏頭露尾)’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탈중앙화와 더불어 분권화, 민주화가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일부만 누렸던 정보 독점이 사라지면서 대중이 정보를 공유하게 된 것이죠. 적어도 정보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 어느 정도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비용의 제로 수렴이 진행됨으로써 자원 부족으로 인한 불평등, 혹은 주종관계가 종식됩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국제 사회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현상도 희미해질 것입니다.
최근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암호화폐의 출발점도 금융의 중앙 집중화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죠. ‘떡락’, ‘투기’등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심어졌지만 실제로는 금융 분야의 탈중앙화와 민주화를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특히, 암호화폐가 채굴되는 시스템을 ‘블록체인’이라고 하는데, 블록체인은 특성상 개방·투명·민주화를 추구하고 있어서 미래의 각광 받는 기술로 떠오르게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부분은 가상세계 속에서 이뤄지는 직접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의 대다수 국가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민주주의의 제한된 버전입니다. 여러 방법을 제도화해서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고 있지만, 그 한계는 계속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죠. 그런데, 디지털화의 발전으로 전자 민주주의가 가능해지고 가상공간에서는 국민의 정치 참여도 이슈별로 활발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국민 청원코너가 있습니다. 기존 제도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나 억울한 사연 등을 게시해서 일정 수의 동의를 얻으면 국가가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청원은 글로 작성돼 있고, 홍보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억울한 사연을 담아 장문의 글을 써서 올렸다고 하더라도 청원자의 간절한 호소가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메타버스의 요소인 가상세계를 통한 청원은 실제로 청원자가 등장해서 호소할 수도 있고,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서 본인의 사연을 알릴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원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청원 내용을 더 분명하고 실재감 있게 확인할 수 있고요. 아울러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도 새로운 조례 등을 제정하고 큰 사업을 진행할 때, 거의 비공개로 선출직들만 모여서 진행하는 데, 앞으로는 메타버스를 활용해서 공공 논의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시민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는 가능합니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의 장애로 여겨졌던 물리적 시공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문화 측면은 어떨까요? 우리는 이미 디지털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사용해서 디지털 콘텐츠 빅뱅시대를 누리고 있죠. 물론, 디지털기기로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디지털 기기를 생산자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로 사용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발전하고 관련한 기기가 더 개발되고 발전한다면, 디지털 콘텐츠 생산과 활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확대 신장 된다고 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콘텐츠도 다 경험할 수 없는데,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콘텐츠가 등장한다고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희열과 동시에 그림자 같은 고충, 즉 선택의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아울러 메타버스의 활성화는 디지털 콘텐츠 소비자를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하니, 디지털 프로슈머가 더 늘어 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즐기면서 수입도 얻을 수 있다면, 더 즐겁게 활동할 수 있겠죠? 실제로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면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분명 새로운 직업에 ‘메타버서’가 추가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유튜버가 새로운 직업군에 포함된 것과 마찬가지죠.
다음은 사회적인 영역입니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가상 세계에서는 대부분 아바타가 활동하게 될 것이고요. 몇 년 전에 메타버스 세계를 잘 보여준 영화 한 편이 상영됐습니다.《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이라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 속에서 ‘앗싸’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핵인싸’였습니다. 현실과 가상현실 속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가상 세계 속 성공은 곧 현실 속 성공이었고, 역시 가상현실 속 위험이 현실 속 위험이 되어버렸습니다. 단순히 게임이 아닌, 현실과 가상세계가 연결된 것이죠. 현재는 가상과 실재가 대체로 구분돼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 시간 지나면 통합될 것입니다. 현재도 메타버스를 통한 회의, 출근, 업무협조 등이 가능해서 현실의 시공간을 대체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디지털미디어3.0세대는 아바타를 앞세운 가상세계를 더 선호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종, 연령, 학력, 신분 등과 관련한 차별이 줄어드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현재도 블라인드 면접을 한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고 해도 인간은 외모, 성별, 인종, 학력 등과 같은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진정한 브라인드 테스트와 면접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아바타를 보고 상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니, 겉으로 보이는 외모, 환경 등에 영향 받지 않고 진짜로 실력의 우열로만 채용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희망하는 공평하고 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육 분야입니다. 이미 여러 온라인 플랫폼으로 학교 수업을 실행했습니다. 여전히 화상 수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면 수업을 애써 시도하고 있지만, 디지털 교육 시스템이 더 발전한다면, 등교 수업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는 창의적인 교육을 이행하는 데 굉장히 어려운 구조입니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위 노래는 ‘WHITE’가 1996년에 발매한 앨범에 수록된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 중 일부입니다. 거의 30년 전 노래인데, 현재는 어떨까요?
최근에 첫째 딸 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정문에 들어서면 30년 전과 비슷한 – 학교 건물의 색만 새로 칠한 – 네모난 건물이 보입니다. 학교 건물 입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교실을 찾아 들어서면, 여전히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 거의 네모난 책상이 보입니다. 1996년과 2022년의 학교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엄청 변화했고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드웨어가 달라지지 않은 학교, 물론 교육 프로그램은 계속 발전했다고 하지만 공교육의 실효성 인정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벌어졌고, 어쩔 수 없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교육이 각광받기 시작했고요.
실제로 메타버스 교육 시스템을 이용해서 교육성과를 높인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과학 실험과 관련한 분야에서 실재감 있는 활용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발전한 디지털 교육은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 시장도 바꿔 놓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단,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학과 관련한 《칸 아카데미》와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한지 오래됐고, 대학들도 대중을 대상으로 《MOOC》라는 온라인 강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단, 기술적인 한계로 쌍방향 교육이 어렵고, 사용자를 꾸준히 묶을 수 있는 인센티브도 부족해서 성과와 관련해서는 후한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 등을 활용한 가상공간에서 인터랙티브한 교육이 이뤄진다면, 디지털 교육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공적인 디지털 교육은 사교육 비용을 절감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고요. 현재는 공교육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어서 무조건 사교육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얼마나 좋은 학교(학원)이 있는냐에 따라서 학군이 나눠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디지털 교육의 질이 향상된다면, 사교육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교육의 형평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디지털화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