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2부 4차 산업혁명과 지역사회(1)

들어갈 수 없는 ‘성(城)’

by 조작가Join

타지역 살이


2015년 12월, 대구로 내려왔다. ‘내려왔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필자는 수도권(거주는 일산과 파주에서, 대부분의 활동은 서울에서)에서 주로 생활했다.

대구는 결혼하기 전에 업무차 두 번 정도 다녀간 적이 있을 뿐, 그 어떤 인연도 없었다. 20대부터 정치적 성향도 진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대구에 무관심했다. 그저 사과가 맛있고(요즘에 대구에서는 사과가 나오지 않는다), 섬유의 고장(패션을 선도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이라는 풍문이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살았을 뿐이다.


대구는 경북권의 최대 도시며, 대한민국 3대 도시이다. 인구는 약 250만 명이며,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 짙어서 ‘미래통합당’을 가장 많이 지지하는 지역이다.

벌써 거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인간관계는 처가를 중심으로 한 친척들이 전부이고 다양한 모임에 참여해서 친분을 맺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굳이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와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서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외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몇 년 전에 후배와 나눈 이야기다.


필자 : (허심탄회하게) 대구에 내려간 지 2년이 넘었는데, 새롭게 사귄 사람이나 모임이 없다.

후배 : (놀라면서) 형이오?

필자 : (웃으면서) 내가 어떤 지역에서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지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후배 : (이해한다는 듯이) 하기야, 그쪽 지역이 그렇게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데는 아니에요.


후배는 포항 출신이어서 필자를 이해하는 듯했다. 고맙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뭐가 다른 데?’라고 하는 의문이 생겼다.


혼자 지내기!


최근에 ‘혼’자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다. ‘혼밥(혼자 밥 먹는 것)’, ‘혼술(혼자 술 먹는 것)’ 등이 대표적인 단어다. 필자는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혼술 경험은 없으나, 혼밥은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

수년간 점심을 혼자 먹어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메뉴를 섭렵해야만 했다. 혼자 분식점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중국집에서 홀로 탕수육을 시켜 먹기도 했고, 한정식집에서 정식 1인분을 시켜 먹기도 했다. 그리고 혼밥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기 뷔페에 들어가서 크게 쌈을 싸서 우걱우걱 씹어 먹은 적도 꽤 된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다. 커피 바리스타 과정에 등록해서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과 교류하려고 했고, 난생처음 수영장에 등록해서 수개월 열심히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무도 새롭게 사귄 사람이 없다.

이런 상황이 혼자만의 상황이었다면, 문제는 필자에게 있겠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필자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대구에 내려와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선배도 필자와 비슷했고, 다른 지인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인데도 직장을 벗어나서 교류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말씨가 대구분 같지 않아서 물어보니 42년째 대구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가 어떠세요?”


라고 여쭤보니, 좋은 말씀은 없었다. 대구에 정착 한지, 2년밖에 안 된 필자의 40년 후 모습인 것 같아서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대구만의 문제일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이 있다. 부적응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면 대다수 지역 시민의 마음은 편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부 사람의 지역에 대한 감정은 어떨까? 필자는 커피를 배우고, 수영을 배우면서 함께 어울렸던 분들에게 답답한 심정을 가끔 토로(吐露)했다.


다행히 좋은 분들이어서 필자의 심정을 이해했고 “대구가 좀 그렇지요?”라고 하면서 공감해 주었다. 비판을 인정(認定)하면서 친절하게 웃어주지만, 변화는 없었다. 사실, 인정도 잘못됨을 수긍하는 게 아니라, 굳이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는데, 새로운 사람 신경 쓸 필요가 뭐 있나?’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대구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한민국 전 지역이 외부인에게는 폐쇄적이다. 지역의 폐쇄성(닫힌 마음)은 넘기 힘든 ‘성(城)’과 같다.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대표 소설 『성(城)』이 떠오른다.


‘성’에서 전갈이 와서 인근 마을에 도착해서 임무를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성’에는 들어갈 수 없는 K. 그런 K들이 대한민국 지역에는 즐비하다. 지역의 어떤 특성이 ‘성’을 만들고, 그 성을 굳게 닫게 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힘들다. 타지역 살이 몇 년짜리 주제에 정확히 진단한다는 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다만, 그저 답답한 심정으로 지역의 성문을 두드릴 뿐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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