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뇌르(flaneur)의 산책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린다
4차 산업혁명의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발족했고 대전은 4차 산업혁명 특별시를 선포했다. 각 지역에서도 주요 목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언어를 줄줄이 엮어서 제대로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중앙언론과 지방언론들도 줄기차게 4차 산업혁명을 언급했고 수도꼭지의 수돗물처럼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4차 산업혁명 홍수에 시민들은 세뇌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많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을 알리는 큰 확성기는 소음공해를 만들었고, 너무 잦은 메시지는 스팸이 됐다. 그리고 대한민국 도시 중에서 상대적으로 고령화된 지역 사회의 시민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한다.
광고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드 코레스폰던트(De Correspondent)’의 창립 멤버 벨기에 작가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에서 “2030년이 되면 가장 심각한 질병 중 하나가 우울증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2030년이 되면, 대한민국 각 지역은 더 고령화될 것이고, 이런 추세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면, 당연히 부적응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만연한 우울증과 함께 사회적 부적응자가 돼 살아야 하는 시민이 밀물처럼 늘어날지도 모른다.
필자는 ‘1부 국가 편’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인식 실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언어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과 홍보만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가 성장할 거라는 기대는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디지털 격차’가 더 심해지는 추세이고, 세대 차이도 점차 벌어져 그 간격을 좁히기 힘든 수준이다. 이제 세대 차이라는 말도 부족해서 학년 차이까지 언급하는 수준이다. 사회적 통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린다"는 속담과 다를 바 없다.
연결, 융합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달려 나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실은 그와는 엇갈린 방향으로 질주하는 듯하다. 아울러 평등, 효율성, 탈중앙 등을 추구하는 지방분권 시대와도 거리가 있다. 과연 새로운 시대에 지역 사회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플라뇌르는 일반적으로 산책자로 알려져 있는데 독일의 문화 평론가이자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은 플라뇌르를 “도시 속 산보객, 즉 사회 속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자”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회학자 홍석기는 『인상주의 : 모더니티의 정치사회학』에서 “현대 도시를 한가롭게 거닐며 그 속에 얽혀 있는 내막을 탐색하고 관찰하는 자이다.”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서 어슬렁대면서 산책하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그의 걸음에는 방향이 있으며, 그의 눈은 예리한 관찰자의 시선이라는 의미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기 전에 잠시나마 관찰자가 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사회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훈수 두는 삼자의 눈에 좋은 수가 잘 보이듯이 시민 플라뇌르가 돼 지역 사회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플라뇌르의 시각에는 우리가 머물러 있는 시공간이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 속에 제대로 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비판이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지역 편에서는 교육 문제, 부족한 콘텐츠, 외부인들에게 언제나 낯선 지역 사회 환경을 비판적으로 훑어보고, 세계적인 도시 국가로 발전한 싱가포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전체적으로는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과 지방분권 시대에 지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았고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인 ‘포용’, ‘다양성’, ‘개방성’과 관련한 지역 사회의 모습도 살펴보았다.
이 모든 내용은 한 사람의 플라뇌르가 다루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해서 필자가 다룰 수 있었던 부분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함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필요하고 협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의 『놀이하는 인간』에서는
“각자가 잘살기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살면 되지만, 둘 다 잘 살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하다.”
라고 말한다. 플라뇌르의 산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많은 산책자의 행렬이 이어져야만 한다. 각 지역의 다른 공기를 마시면서 특수한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가장 먼저 걸어야할 산책 코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