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철학 에세이』의 초반부에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라는 공식이 나온다. 수학에서도 마이너스(-) 마이너스(-)를 하면 플러스가(+) 되니 맞는 표현이다. 이 공식을 지역 사회에 사는 외부인들의 상황에 적용해 보면, 낯선 지역 사회에서 외부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이 긍정적일 리가 없다. 그런데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 역시 부정적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긍정적인 대안을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공식으로 만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지역 사회에서 부정적인 경험(-) 떠날 수 없는 부정적인 현실(-) = 긍정적인 대안을 생각(+)
먼저, 부정적인 경험부터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 번째로 교통 문화와 관련한 내용이다.
수도권은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러다 보니, 규칙과 표준을 만들고 잘 준수해야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오순도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사회는 수도권과는 다른 그들만의 표준과 기준이 있다. 전자는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기준이라면, 후자는 지역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준이다.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표준(Nomos)을 잘 정의하고 정리했다. 원칙을 잘 따르면 세상은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표준이 제한선이 되고, 강요될 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역사가 증거 한다.
민족, 인종, 계급,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은 아니더라도 지역 특색은 외부인에게 충분히 낯설고 폭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번 편에서는 필자가 몇 년간 거주한 대구를 중심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3대 도시 대구광역시에는 자동차가 많다. 인구 250만 명에 115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등록돼 있다. 단순히 차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비싼 차들이 많다.
예전에 함께 바리스타 과정에 함께 했던 여성 한 분은 “한동안 유행했던 SUV 중에서도 가장 크고 비쌌던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린 도시가 대구래!”라고 말하면서 대구 시민들의 ‘허례허식’에 대해 자아비판 했다.
실제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인구 대비 외제 차가 가장 많은 지역이 대구라고 한다. 그런데 소득 수준은 7대 광역시 기준으로 7위이다. 소득은 꼴찌인데, 소비 수준은 최상위권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큰 차를 타고 다니는 게 좋고, 외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굳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상황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대구에서 만나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구가 소득 꼴찌야!”를 외쳤다. 그런데도 대형 세단과 외제 차가 많다는 것은 분명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는 지인은 “집값이 저렴하니까, 차는 비싼 걸 타는 거 아닐까?”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자동차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운전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역만의 특색있는 교통 문화가 형성된다. 대구시는 2015년 기준으로 교통 사고율 2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교통사고도 줄이고 잠시나마 불명예 타이틀을 내려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문화는 여전히 외부인이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이런 특색 있는 교통 문화는 각 지역 사회마다 조성돼 있다. 필자는 수도권, 호남, 충청, 제주 지역에서 운전한 경험이 있어서 각 지역 사회마다 교통 문화가 다름을 충분히 경험했다. 다음 에피소드들은 지역 사회에 거주하면서 겪었던 사건들이다.
‘깜박깜박’ 잊는 깜박이
대구에서 운전하다 보면, 운전자들이 좌나 우로 방향을 전환할 때, 깜빡이를 잘 켜지 않는다. 오죽하면, 도로에 깜빡이와 관련한 현수막이 붙어 있을까? 이런 현수막은 지역 사회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마주쳐서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깜빡이를 켜는 것은 뒤차를 배려해줌과 동시에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다. 그런데, 본인만 편하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깜빡이를 잘 켜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해야 하는 외부인은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하고, 잠시 후에는 욕하고 나중에는 포기하거나 닮아간다. 아니면, 살기 위해서 새로운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즉, 앞차의 속도를 판단해서 앞차의 운행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몇 년 살다 보면 앞차가 차선을 변경할 때 깜빡이를 ‘깜박’ 잊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깜빡이를 켜주는 운전자가 있을 때 “매너 굿!”이라고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된다.
사람의 몸보다 자동차가 더 중요한 곳
한 번은 주말이 돼서 대형마트에 갔다. 신나게 이것저것 고르고 캐리어에 가득 담아, 자율포장 코너에서 열심히 포장한 다음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 트렁크에 박스를 실었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들어오면서 필자를 보지 못했는지 상대방 자동차 후미와 필자가 부딪힐 뻔했다.
필 자 : (좀 언성을 높이며) 아저씨 사람 있는 거 못 보셨어요?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사과할 줄 알았다)
상대 운전자 : (필자 쪽으로 걸어온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살펴본다) 아무 문제 없네.
필 자 : (황당해서) 차 운전을 잘못해서 사고가 날 뻔했으면, 먼저 사람을 챙겨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자동차만 본 겁니까?
상대 운전자 : (당연하다는 듯이) 뭐? 내 차는 문제 없는데.
필 자 : 이 사람이....
이후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고성이 오갔고 그쪽 아내 되는 여자분이 대신 사과할 테니 이해해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필자가 거부하고 상대방 남자의 사과를 요청하니, 상대방 운전자는 욕설했고 결국, 112에 신고했다. 신고하거나 말거나 그 부부는 자신의 갈 길을 “무쏘의 뿔”처럼 대범하게 가는 듯했으나, 경찰차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멋쩍게 등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상대방 남자 운전자는 필자에게 사과했다.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면 한 번의 특이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네 마음대로 해라!
따뜻한 봄날, 주변에 벚꽃이 서서히 그 아쉬운 아름다움을 뽐낼 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아파트를 나서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아파트 입구에서 대형 SUV 자동차 한 대가 거침없이 등장해서 자전거 뒷바퀴를 만져줬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어렵게 중심을 잡은 후 멈춰서서 상대방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상대방 운전자도 차에서 내렸는데, 60대 여성으로 보였다.
필 자 : (정중하게) 제 자전거 뒷부분을 받으셨네요.
어르신 : (흥분한 목소리로)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필 자 : (황당해서) 네? 지금 자전거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차로 자전거를 받았으면, 먼저 상대방의 상태를 살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르신 :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미안해요. 내가 오늘 아침에 기분이 안 좋아서.
사고를 당할 뻔한 사람이 사고를 낸 사람한테 역으로 역정을 듣는 상황이었으니,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한 셈이다.
목적지 5Km, 다섯 번이 넘는 뿌아앙?!
가끔 시내에 나가는 날이면, 항상 ‘빠앙~~’ 소리를 듣는다. 정확하게는 ‘뿌아앙?!’이다. 여기서 ‘?’의 의미는 ‘너 뭔데?’라는 의미고, ‘!’의 의미는 ‘비켜!’라는 의미다. 이를 연결해서 해석하면 “너 뭔데? 안 비켜!”이다.
짧은 거리를 운전하면서 듣는 ‘뿌아앙?!’ 소리, 참 듣기 싫다. 깜빡이 넣는 것은 ‘깜박깜박’ 잘 잊으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클랙슨 울리는 것은 잊지 않는다. 클랙슨 소리가 듣기 싫은 필자는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 습관을 갖게 됐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에게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실천하는 중이다. 역시 부정의 부정은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