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4차 산업혁명과 지역 사회(4)

교육 열정인가? 아니면 교육 욕정인가?

by 조작가Join

가성비 떨어지는 작은 교육


대한민국은 영토나 인구 규모를 따졌을 때 대국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여행하다 보면 ‘이런 곳도 있구나!’ 하면서, 넓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한 가지 유행이 전국을 뒤덮는 것을 보면, 다시 ‘역시 한국은 작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겨울 롱패딩이 유행이었을 때 전국 어디를 가도 검은색 롱패딩이 거리를 그늘지게 했다.

이번 편에서는 교육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세계적으로 극찬 받는 교육의 참모습을 훑어보자.


교육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크지 않다. 그러나 교육비용은 높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다. 쉽게 말해서 교육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실제로도 세계 대학 순위 명단 50위 권 내에서 우리나라 대학교는 찾아볼 수 없다. 참고로 아시아권 대학 순위 10위권 내에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범위를 세계 대학으로 넓히면, 2018년 기준으로 서울대가 74위, 카이스트가 95위를 차지할 뿐이다.

그러나 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양적인 차원으로 전환하면 대학 진학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2005년 82%를 넘는 대학 진학률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70% 아래도 떨어지긴 했어도 세계적인 기준으로 대학 진학률은 높은 편에 속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미클스웨이트 (John Micklethwait) 등이 저술한 『제4의 혁명』에서는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즐비하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높은 대학 진학률에 좋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아울러 교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우리의 교육 열정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반면에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질보다는 양,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는 국가로도 유명하다. 학생들의 PISA 성적은 상위권에 속하지만, 이들이 성장해서 국가 경쟁력을 신장시킬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기초 과학 분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인 수학 평가와 과학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비효율적인 교육 상황은 학업 시간에서도 나타난다. OECD 국가 학생들은 주당 33시간 정도 공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경우 주당 70 – 8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한다.

이런 학습 시간으로 말미암아 경쟁이 심해졌고, 삶의 만족도에 있어서 세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당연히 학습 효율도 바닥 수준이다. 종종 숫자를 들이대면서 한국의 교육에 대해 선망하는 책들도 있고, 예찬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립 서비스’이거나 혹은, 저술가가 한국 교육의 실정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너진 공교육


공교육은 전 세계적으로 한계에 직면했다.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교 경제학 교수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거대한 침체』에서 “1970년대 이후 주요 기술(항공 기술 등)과 교육 시스 템은 크게 향상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틴 포드(Martin ford)의『로봇의 부상』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은 더 심각한 불평등과 실업을 양산할 가능성이 큰데,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하면서 공교육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 – 싱가포르, 캐나다, 핀란드 등 - 처럼 적절한 방안도 제안하지 못하고 실정이다. 그래서 공교육이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를 사교육이 채우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사교육비는 당연히 계속 증가했고 지역 학력 편차도 심해졌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수학능력시험’의 한계를 인정하고 교육 제도를 바꾸는 중인데, 우리나라는 일본의 제도 – 수학능력시험 – 는 모방했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건 쉽게 따라 하기 힘들 듯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체계도 함께 바뀌니 현재 시스템의 단점을 개선하려는 지속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선의 『교육의 차이』에서는 이러한 교육의 지속성 문제를 선진국과 비교해서 잘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 제도가 도입되는 시점에 정권이 바뀌는 5년 후의 변화를 생각해야 하니 문제점을 개선하기도 어렵고 좋은 시스템을 이식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계(百年之計)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현실은 5년도 지속하지 못하는 수준이니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교육 선진국을 떠올리면 항상 등장하는 핀란드는 교육과 관련해서 1960년대부터 종합학교 개혁을 통해 ‘공동체’, ‘평등’을 핵심으로 교육 제도를 발전시켰다.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위대한 퇴보』에서 공교육이 살아남은 국가는 핀란드가 유일하다고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발전한 국가의 교육 수준이 높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공교육을 통한 교육 평등은 ‘물 건너갔다’라는 의미다. 국내 교육 상황이 이렇지 않은가? 사교육 시장의 확산으로 교육 평등은 불가능한 수준이된지 오래다.


흔하디흔한, 교육 도시


지방을 다니면 자주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바로 ‘교육 도시’이다. 충북에는 청주가 교육 도시이고, 충남은 공주가 교육 도시이다. 대전은 그 자체로 교육 도시라고 하고, 대구는 “대한민국 교육의 수도”이다. 이 외에도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오산시도 교육 도시라고 선전하고 있으며, 천안, 창원, 제주도도 교육 도시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쯤 되면, 교육 도시 아닌 지역이 이상해 보일정도다.


그렇다면 ‘교육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문자 그대로 설명하자면,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도시면서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잘 갖춰졌다는 의미이다. 조금 의역하면, 교육 대상자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공평하게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도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공교육에 많은 지출을 한다고 하지만, OECD 기준으로 볼 때 평균에 못 미치는 반면, 사교육은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공교육만으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이 만연해졌고, 도시마다 학군이 조성됐다. 서울에만 '강남 8학군'이 있는 게 아니다. 지역마다 소문난 학군이 존재한다.

대구시 전체적으로 볼 때 거주비는 수도권과 비교할 때 분명히 낮다. 하지만 학군이 좋은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이나, 자녀의 교육을 중시하는 가정에서는 좋은(?) 학교로 배정받기 위해서 이사하는 일이 빈번했다.

초등학교부터 선호하는 학교 – 수성구 주변 학교 - 가 있어서 자녀들을 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애쓰는 지인들도 여럿 봤다. 물론, 이런 *교육 욕정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로베르타 골린코프(Roberta M. Golinkoff) 교수의 『최고의 교육』에서는 미국도 유치원 때부터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고가의 사교육에 아이들을 노출 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미국 교육 방식을 선호하는 한국임을 고려할 때 사교육의 극성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교육 욕정 : 자녀들의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한 부모의 노력이 열정이라고 한다면, 자녀를 빙자해서 주변의 시선과 부모의 욕망을 위해서 이사하거나 사교육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만든 단어이다.

작가의 이전글미래세상 읽기 : 4차 산업혁명과 지역 사회(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