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라기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들을 자신과 동일시 하려는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 자신이 어린 시절 이루지 못했던 것을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하려 한다. 아이가 시험을 못 보면, 곧 내가 못 보는 것이고,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못 가면, 내 자존심이 바닥을 친다. 그러면서 아이가 불만을 표현하면, “다 너 잘되고, 행복하게 살라는 거야!”라고 답한다.
필자의 지인의 자녀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당시에 부모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서울권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영어는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나머지 과목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인은 “차라리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하면서 한탄했다. 자녀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지인이었기에 충분히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는 당장의 명예와 칭송의 유혹을 유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부모일수록 학벌에 대한 열망이 더 큰 듯하다. 지역 사회의 부모들 대부분은 지역 대학을 졸업했을 테고, 당시에도 서울권 대학을 선호했지만, 성적이 되지 않아서 서울 유학하지 못한 부모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류 대학교에 원서를 넣고, 시험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 듯하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양질의 교육이 서울에 몰려있는 상황이니, 꼭 학벌에 가치를 두지 않은 부모라도 자녀들을 서울로 보내려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우리가 그토록 추종하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코넬대학교 경영학 교수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의 『승자독식 사회』에서는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의 49%가 상위 5개 대학에서 나왔으며, 과거에는 지역의 대학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근래의 현실은 이러한 부모의 바람을 희망에서 환상으로 바꿔버렸다. 아무리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현실을 부모의 바람이 몰아내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대학교 진학률이 70% 아래로 떨어진 이유가 취업난 때문이라고 분석한 기사도 있다. 대학이 다가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해서일까? 자녀의 좋은 대학 입학과 관련한 욕정이 초등학생들의 영재 교육청 입학으로까지 번졌다.
아이들의 사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라면 ‘영재 교육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설립 취지는 특정 과목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좋은 교육을 제공해줘서 인재로 양성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현실은 영재 교육청에 보내기 위해서 학교는 영재학급을 운영하고(학내 상위 20% 정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영재 교육청은 전체 학생 수의 1~2%만 선별해서 교육을 실행한다.
극소수의 학생만을 선발하다 보니, 영재 교육청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학년보다 몇 년 앞선 선행학습을 해야 하고, 과거 기출문제도 풀어야 한다. 아예 영재 교육청을 준비하는 부모들을 위한 책도 등장했다. 기순신 등이 쓴 『영재교육 매뉴얼』에서는 유아들의 영재교육을 위한 사설학원까지 소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또 다른 사 교육장을 만들어 준 셈이다.
4학년 이후에나 들어갈 영재 교육청 준비는 2학년 때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아래는 지인과 나눈 이야기다.
필 자 : (놀라며) 영재 교육청은 4학년부터인데, 벌써 준비시켜요?
선 배 : (한숨 쉬며) 보통 2학년 때부터 시작하나 봐.
필 자 : (당황하며) 도대체 뭘 어떻게 준비하길래?
선 배 : (답답하게) 초등학교 5학년 수학 정도는 풀 수 있어야 한 대.
필 자 : (답답해하며) 답답하네요. 영재 교육청 만들어 놓고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을 형성하게 한 꼴이니.
선 배 : (심각하게) 그리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학급은 학년 100명 중 20명 정도를 따로 선발해서 운영하는 건데, 20등 안에 못 든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준비를 안 하기도 그래.
일본의 교육학자 기무라 큐이치(Kyuichi Kimura)는 그의 베스트 셀러 『칼 비테 영재 교육법』에서 “영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조기교육의 역효과는 무시되고 점점 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이 실행되고 있다. 그래서 영재 교육청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몇 년 전부터 기출문제를 풀고, 일반적으로는 몇 년 후 에나 보게 될 책장을 넘긴다. 영재를 만드는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영재 교육청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통과의례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뛰어난 영재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사설학원 설립자인 듯하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학원을 만들어서 원생을 모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좋은 학원은 수강료만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영재 교육청 준비 학원도 힘든 시험을 치러서 들어간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테스트 준비해야 하는 자녀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하겠지만, ‘학원도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면서 근심하는 부모의 고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수목적 고등학교 – 외국어 고등학교, 과학 고등학교 등 – 는 설립 목적이 있다. 영재 교육청도 설립 목적은 모두 동의할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평범하게 학교만 보내는 부모는 거의 없다. 반드시 사교육으로 준비시킨다. 수준 높은 학생들과 함께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 좋은 일이다. 그러나 효율성이나 만족도를 고려할 때 얼마나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지역 사회는 서울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말만 들으면 학부모들의 귀가 쉽게 열리고 지갑도 아낌없이 열린다. 그래서 지역 사회의 교육 트렌드는 이류 혹은 삼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구 수성구 학부모들은 서울 강남에서 유행하는 교육 시스템을 흉내 내는 학원을 선호한다.
서울까지 가서 그 시스템을 확인하는 부모는 없을 테니, 구전에 의한 정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수준을 이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수성구에서 유행하는 학원은 대구의 다른 지역 사회에서 감해서 받아들인다. 그러니 당연히 삼류가 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필자는 카페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영재성 검사를 홍보하는 학부모를 본 적 있다. 서울에서는 10년 전에 유행했던 영재성 검사 – 거의 지능 검사 수준 –를 새로운 트렌드인 듯이 떠들어 댄 것이다.
자녀의 수준과 바람, 그리고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대도시에서 유행하는 교육 흐름을 그대로 좇는다. 대한민국 현실이 서울에 집중된 ‘소용돌이’ 형태라고 하지만, 무조건 서울 바라기가 돼 지역 사회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인재는 역시 서울로 보낼 수밖에 없다. 부모의 서울 바라기는 자녀들의 서울 바라기로 대물림한 셈이다.
부모도 학습이 필요하다. 자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신조어를 알아야 하듯이 가르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분위기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런 흐름은 누군가의 말이 아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정보는 걸러야 한다. ‘~ 카더라’라는 무책임한 발언은 연예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교육에도 있다. 연예계의 ‘~ 카더라’는 연예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듯이 교육계의 ‘~ 카더라’는 우리 자녀에게 피해를 준다. 출처 없는 정보가 사실인 듯 퍼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교육 실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역 사회는 서울 바라기에서 시작해서 사실이 여러 차례 증폭되는 과정을 거치기에 거품 수준이 폭발적이다.
새로운 시대의 부모는 학습하는 부모가 돼야 한다. 일류 대학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 사회를 생각하면서 자녀와 함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적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종종 가족 – 미취학 자녀까지 포함한 – 끼리 영상을 찍고 조회 수를 올려 경제적으로 수입을 얻는 유튜버들이 있다. 당장 수입이 늘어나니 영상을 촬영하는 가족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만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콘텐츠를 살펴보면, 긍정적이지 못하다. 심지어 초등학생이 부모를 속이는 과정을 편집해서 보여주는 영상도 있다. 부모가 속으면 속을수록 자녀는 더 큰 쾌감을 느끼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현실은 고무적이나, 오로지 돈을 위해서 가치를 포기하면, 잠재적으로 비도덕적이고 부조리한 미래 사회를 조성하는 독을 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의 경험에 집착해서 자녀들의 미래를 담보 잡아서도 안 되지만, 현실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 자녀들에게 왜곡된 가치관 – 엘리트주의, 물질만능주의 등 –을 형성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당장, 물질적 만족과 좋은 대학의 졸업장은 만능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지 않다.
2009년에 EBS를 방송을 책으로 펴낸 『아이의 사생활』에서는 “도덕적인 아이가 행복하다”라고 한다. 사회의 규칙을 지키고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함양함으로써 얻는 정신적 만족이 행복을 키운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노베이터(Innovator)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추적한 토니 와그너(Tony wagner)의 『이노베이터의 탄생』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심과 사회 공헌 등과 관련한 가치관 형성이 이노베이터들의 공통점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뿐이다. 스스로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화려한 상술에 그대로 놀아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부모 역할은 상생, 공존할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인드를 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엘리트가 된 우리 자녀는 이리떼(ELITE를 그대로 읽으면, 이리떼가 된다)가 돼 약자를 괴롭히고 잡아먹는 잔인한 짐승이 되거나 엘리트가 되지 못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에서 잡아 먹히는 눈망울만 초롱초롱한 아기 사슴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