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미래, 과거에 머문 교육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는 책들은 한결같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능력을 월등히 넘어서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점차 줄어들 거라 예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조직 컨설턴트 워런 베니스(Warren Bennis)는 “미래의 공장에는 종업원이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단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개에게 먹이를 주려고 거기에 있을 것이고, 개는 그 사람이 기계를 건드리지 못하게 막으려고 거기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좀 과장된 표현인지는 몰라도 현재도 인간보다 기계가 더 많은 공장이 꽤 있다. 3년 전쯤에 ‘L사’의 공장에 방문한 적 있는데, 사람이 전혀 없는 작업장도 볼 수 있었다. 정교한 작업일수록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있었다.
스웨덴 출신의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는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에서는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 조언으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항목을 제시한다.
1. 사람과의 상호작용, 사회적 지능을 요구하는가?
2. 창의성, 영리한 해법 도출과 관련 있는가?
3.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가?
저자는 위의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이 많다면, 기계가 대체할 직업이 아니라고 말한다. 질문을 살펴보면, 현재 인공지능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영역에서만 인간이 계속 일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1번 항목은 『늦어서 고마워』에서 말한 ‘공감형 기술직(STEMpathy job)’ - 미래에 가장 많은 보상이 주어질 일자리-을 예측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미래를 생각해 볼 때, 현재 부모가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교육이나 우수한 성적에 대한 바람은 당장 자녀의 자부심과 부모의 명예에 기여할지는 몰라도, 현재와 다른 직업군이 생기고 현재 잘 나가는 직업들이 사라질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주어진 메뉴얼대로만 성장한 자녀들이 위 3번 항목에서 물어보는, ‘예상치 못한 환경’에 처했을 때 과연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
세상이 변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천한 것으로 여겼는데, 현재는 상업 즉, 비즈니스를 통한 성공을 최고로 여기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 대통령과 페이스북 창립자를 비교할 때 청소년들은 누구를 더 선호할까?
부모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생각하면서 자녀 교육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리하면 읽기, 쓰기, 셈하기, 창의력, 협력, 소통, 코딩 등이 필요하다. 즉, 공학과 인문학이 조화할 수 있게 종합적인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 미래 예측은 이공학 중심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간다움이라 부르는 인본주의적 과정이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김 위찬 소장(인시아드 블루오션 전략 연구소(INSEAD Blue Ocean Strategy Institute)) 은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예측한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말로만 듣던 온라인 교육과 학습이 진행됐다. 급조된 프로그램이어서 기존 교육 방송 수준을 넘지 못했고, 지역 편차의 심각성이 보도되기도 했다. 사실, 이미 다양한 채널들이 많은 상황에서 어설픈 공교육 온라인 플랫폼은 많은 문제점만 보여줬을 뿐이다. 콘텐츠도 다양하지 못했고, 그 질도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인터넷 등을 활용한 학습 플랫폼이 발전했다. 대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도 있고, 학생들의 수준 –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습 속도에 따 공부할 수 있는 - 에 맞는 수학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칸 아카데미(Khan Academy)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이 입학을 포기하고 원격으로 대학교 강의를 진행하는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에 입학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온라인 교육·학습 플랫폼이 즐비하다.
기존에 있는 플랫폼만 제대로 활용해도 온라인 수업의 질은 상당히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연결과 융합의 4차 산업혁명은 교육 분야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텐데, 아직 미래를 살아보지 못한 현대인들에게는 떠 올리기 싫은 공포 영화처럼 여기는 듯하다.
역대 정부는 사교육을 근절하고 공교육의 발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오히려 혼선만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혼선을 틈타 새로운 사교육 시장만 넓어졌다. 차라리 사교육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바에는 공교육처럼 사교육 바우처를 늘려 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공교육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정규과정 12년을 통해 배우는 것이 1990년대나 2010년대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아래는 ‘웃픈’ 가상의 예시다.
100년을 자고 일어나 21세기를 맞이한 ‘윙클’이라는 사람은 스마트폰, 게임기, 공항, 병원 등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데, 교실에 들어서서는 “오 여기는 학교잖아. 1906년에도 이거랑 똑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지. 칠판 색만 녹색으로 바뀌었구먼.”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교육 중』
사실, 위의 내용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필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가 있어서 열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학부모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입후보해서 당선 – 5명을 선출하는 데 5인이 입후보해 투표 없이 선출 – 돼 활동하고 있다.
첫 운영위원회가 있던 날 초등학교 졸업 30년 만에 작은 교실에 앉아서 둘러봤는데 책상과 의자가 깨끗해진 거 외에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칠판이 있었고, 여전히 분필이 있었다. 무려 30년이 지났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하드웨어 부분의 변화는 ‘붉은 여왕의 효과(Red Queen's effect)’로 오히려 퇴보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고 소프트웨어 부분이 크게 발전한 것도 아니다.
현실이 이래도 정부는 공교육의 성공에 대한 망상을 포기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이 살아 온 삶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진보라고 착각하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정부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그들이 과거에 교육의 상궤(常軌)에 있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공교육의 발전은 소멸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 시험으로 입시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입시교육이 크게 달라진 게 아니다. 내신을 강화하고 수시 모집을 늘려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입시의 기회를 주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상류 계층 부모들의 불법적인 ‘품앗이’만 늘렸다는 사실을 온 국민은 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