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은 부담감? 아니, 기다렸던 책임감!
결혼하면 자녀계획을 세웁니다. 보통 그렇습니다. 우리 부부도 자녀계획을 세웠습니다. ‘둘’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결혼 전부터 있었습니다.
‘혹시 결혼하게 되면, 자녀계획은 아내의 뜻에 따라야겠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견 충돌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으면, 둘만의 인생을 살면 되고, 아이가 생기면 아빠로 살아가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대부분 결혼한 지인을 보면, 그렇게 살아가기에 저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달리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첫 아이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아내도 저도 빨리 아이가 생기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생명이라는 게 우리 부부가 원하는 대로 찾아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결혼 선배들한테 조언도 구하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종종 결혼 후 둘만의 시간을 갖다가 몇 년 후 아이를 낳겠다고 하는 후배 부부를 보면, 계획은 좋으나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을 때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통계를 보니, 부부 모두 건강한데도 불임 가능성이 일 곱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부부도 첫 아이가 생긴 게 결혼 후 약 5개월 정도였는 데, 다른 지인들과 비교했을 때 빠른 편이었습니다. 최소 1년 이상에서 7년까지 걸린 부부도 있었습니다.
물론, 자녀계획은 전적으로 부부의 결정이니 정답은 없습니다.
신혼 몇 달을 같이 보내다가 아내가 지방으로 두 달 정도 연수를 떠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처가가 있는 지역으로 가게 돼 서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나 아내가 1주일 한 번 정도는 이동해야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주말 부부가 됐습니다.
주말 부부는 몇 대가 공덕(功德)을 쌓아야만 이뤄지는 일이라고 농담도 들었는데, 한참 신혼의 재미를 즐겨야 할 시절에 어쩔 수 없는 생이별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어 있어도 생기지 않았던 아이였기에, 임신을 저보다 더 간절히 바랐던 아내한테는 좋은 상황이 아니었죠.
그러나 부부에게 아기가 찾아오는 일은 뜻밖의 선물인 듯합니다. 아내와 주말 부부로 지내는 기간에 우리 ‘아곤(태명)’이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시민 활동을 하면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학교에 나가고 있었는데, 마침 학부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교정을 빠져나가는 중이었습니다.
톡 메시지
“여보, 나 기간이 며칠 지났는데도 시작을 안 해요. 이번 주에 내려올 때, 테스트기 2개만 사다 줘요.”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습니다. 결혼도 처음이고, 아이가 생긴 것도 처음이니 문자만 보고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 이미 엄마가 된 – 지인한테
“아내가 이런 문자를 보냈네.”
라고 하면서 보여줬습니다.
“야, 축하한다. 아내가 임신했나 봐!”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내한테 전화했습니다.
“여보, 진짜야?”
“응.”
“알았어. 테스트기 사서 갈게.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응. 여보도 조심해서 내려와요.”
그 주 주말 우리는 ‘아곤(태명)’이가 생겼음을 확인하고, 다음 주에 산부인과에 가기로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아내의 임신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축하 메시지를 받기도 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해주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크게 기쁘거나 행복으로 충만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반응이 크지 않아서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아곤’이의 등장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전 우리 딸을 사랑하고 제 딸이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왜 그랬을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항상 아빠가 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아내의 원했던 시기보다는 조금 늦어졌지만, 아빠가 될 줄 알았기 때문에 격한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제 아빠가 된다.’
라는 현실을 느끼며, 기쁨보다 책임감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원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기다렸던 책임감이었죠. 이후에 아내의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저는 아빠가 된다고 해서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냥 아빠로서 책임감을 느꼈을 뿐이죠.”
이런 제 말에 같이 계셨던 친구의 어머니께서 “준비된 아빠였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는 한껏 준비된 아빠였지만, 현실은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 생명을 맞이할 준비는 긍정적인 책임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빠로서 책임감”이라는 말 대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였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