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5)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다고. 나는 오히려 잘했지.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코로나’에 경각심을 갖게 된 거잖아. 내가 걸리고 싶어서 걸렸나? 나도 피해자라고.”
현대는 개인의 신상 터는 데 상당히 신속하다. 이미 도시 전역에 31번 확진자라고 추정되는 곱게 나이 든 여성의 전신사진이 퍼졌다. 꽤 화려한 쇼핑몰에서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그래서 더 욕을 먹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진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31번 확진자가 궁금한 시민이라면 누구든 손쉽게 사진을 입수해서 볼 수 있었다. 인간의 호기심과 궁금증도 전염병처럼 빨리 확산하는 성향이 있어서 옆 사람이 알고 있으면, 나도 알아야만 한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도 알고 있는 게 중요할 뿐이다. 내가 알기 위해서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사생활 정도는 기꺼이 무시될 수 있었다. 터미네이터에서는 볼 수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시끄럽게 질주하는 라이더들처럼.
31번 확진자로 추정되는 여성의 사진에는 화장을 얼굴에 짙고 두툼하게 입히고 조금 천박해 보이는 립스틱을 발랐다. 물론,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꽤 좋아 보이고 익숙한 색깔로 보일 수도 있다. 입술에 만족스럽게 살짝 도는 옅은 미소는 도저히 개념 없는 60대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미인인데?”
“그러게요. 정신없어 보이는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원래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그러게요. 그냥 병원에나 가만히나 있지, 왜 그리 싸 돌아다니는지.”
은퇴 후에 할 일이 없어서 아침 일찍부터 오전 내내 머무는 피트니스에서 만난 김 영감과 박 영감은 사진 속 여인을 보고서 한 마디씩 한다. 주변에 운동하는 여성들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번 해볼 만한 상대라고 여겼는지 목소리에 성난 수컷의 욕정이 한껏 담겨있다.
외모는 선입견을 조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깬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게 된다. 순박하게 생긴 사람 입에서 거친 욕설이 나오거나 정말 순진하게 생긴 여자 연예인이 외모와 다른 행동을 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스캔들이 날 때 외모에 대한 편견이 산산 조각난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말,
“그럴 줄 알았어!”
뭘 알았단 말일까? 연예인이니까 그렇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관상이라도 볼 줄 알면서 내뱉는 말일까? 남성은 이제 만만하게 쳐다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여성은 더 부러워할 필요 없다는 의미에서.
얼굴이 도시에 뿌려지고 난 후 그녀가 다닌 동선이 확보돼 같이 알려졌다. 그리고 개신교로 보도됐던 내용도 수정됐다. 31번이 참석한 예배는 일반 개신교 예배가 아니라 ‘신천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확진 초에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신천지를 선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신도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신천지를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진자가 증가하자,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신천지 신도로 있던 사람들도 지레 겁먹고 신분을 숨기기 시작했다. 교회 입구에 선전용으로 신천지라고 크게 써 붙은 현수막 아래는 역설적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폐쇄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어쨌든 신천지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던 많은 시민이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으니 노이즈 마케팅으로 선전 효과는 톡톡히 누린 셈이었다.
“그 성도로 인해서 우리 신천지가 더 알려질 수 있게 됐어요. 특히,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예배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귀감이 될 수 있겠어요. 좀 아쉬운 건 ‘우한 폐렴’에 걸렸다는 게.....”
“하지만, 다른 성도들이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 교세가 확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앙과 신념은 언제나 진실을 이겼다. 자기 확신과 ‘확증 편향’은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수치를 조작이라고 여기게 만들고 자신의 파리 끈끈이 같은 믿음에 증거를 끝없이 가져다 붙인다.
기적과 같은 초현실적인 일이 있기에 21세기를 한참 지난 지금에도 종교인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남반구를 중심으로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과거처럼 우리가 알만한 종교로 세상이 덮여있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종교의 홍수 속에 세계인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종교도 하나의 영업이고 네트워크 마케팅인지라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신성시되고, 영웅처럼 여겨진다. 신천지 교주의 재산이 5,000억이 넘는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종교 사업도 할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중세만큼 믿음이 강조된 시기가 있었을까? 그 시대는 믿지 않으면 마녀가 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도 전염병은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신의 처벌이라고 생각하면서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도대체 누구의 죄였을까?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미천한 신분으로 다른 사람의 노예로 살다가 죽은 사람들의 죄였을까? 아니면, 그들을 마음대로 유린하면서 통치한 윗사람들의 죄였을까?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신앙으로 합리화해줬던 종교인들의 죄는 성직자의 특권으로 면죄될 수 있었을까?
거짓 믿음의 속성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마주 앉게 되면 이해하려는 지성과 이성은 진작에 버리고 아빠의 힘에 울면서 질질 끌려가는 어린 소녀처럼 버티기도 포기하고 자포자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31번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한 결과 함께 예배드린 신도 수가 천 명이 넘습니다.”
31번 확진자 동선이 나오고 접촉 인원수가 보도되자 교세 확장까지 바랐던 어리석은 기대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들의 신앙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절대 성역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앉아서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픈 몸을 끌고 나와 예배를 드렸는데, 병에 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전염시켰을까?”
“그러게요.”
“그 사람 가짜 아닐까요?”
“아마, 그럴 수도 있어요. 제대로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깟 폐렴에 걸릴 리가 없어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공포의 도시가 현실이 됐다. 그런데도 믿음의 아우라로 덮어 씌운 당사자들은 여전히 잘못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제 31번 확진자에게 모든 죄를 전가해야만 그들이 살 수 있다는 걸 육감적으로 알았다.
1986년 구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그들은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사회주의 신념을 따랐고 거짓말하는 고르바초프의 설명을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누군가가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가인과 아벨 같다고 했는데, 신앙과 신념이 같은 부모에서 나온 게 맞나 보다. 천국을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현세를 천한 것으로 여기는 종교나, 지금과는 다른 이상 세계를 이 땅에 건설하겠다는 공산주의의 현실 부정 사상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신천지나 개신교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르지 않은 것처럼.
며칠이 되지 않아서 100명을 넘어서고, 전국 다른 지역 확진자를 모두 합한 수보다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작은 숫자에 대다수 시민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250만 명 중 100명은 별거 아니잖아!”
“그래도 조심해야지. 계속 늘어날 텐데.”
“난 황사 때도 마스크 안 끼고 다녔는데, 뭐 문제 있겠어.”
마스크 착용은 자신을 위한 일이면서 타인을 위한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좀처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씩 전염이 확산하다 보니, 걱정스럽게 추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개학과 등원에 대한 걱정의 불씨가 조금씩 그 꽃을 키워가니 자연스럽게 걸음을 약국으로 옮기고, 인터넷 창을 복수로 띄워놓고 가격을 비교하기도 했다.
확진자 수가 연일 불어 가는 가운데, 대부분 감염자가 31번 접촉자에서 신천지 관계자로 변화됐다. 그리고 함께 예배드린 신도들 대다수가 감염됐다.
“이거 완전히 우스워졌습니다. 31번 확진자 정도로 마무리됐으면 좋았을 텐데, 벌써 우리 대구 신천지교회에서만 수백 명이 넘게 나왔습니다.”
“이럴수록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숫자에 현혹돼 믿음을 져버려서는 안 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총회장님께서도 이번 일은 마귀의 계교라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우리 성장을 방해하려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종교인들은 편리한 사고 구조를 가졌다. 신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이 유리하도록 신을 사용한다. 분명, “당신의 뜻대로 이루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그렇게 구하라고 설교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신앙의 현미경은 인간의 성향에 맞는 신을 발견해서 마음에 앉혀 놓는다.
“신천지는 신도 명단을 제출하고, 신도들은 하루라도 빨리 가까운 진료소에 가셔서 검진받기를 권합니다.”
신천지는 숨으려 하고, 보건 당국은 찾으려 하는 거대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개신교에서는 그동안 적으로 여겼던 신천지의 몰락을 보는 거 같아서 몰래 웃음을 흘렸지만,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은 기독교라면 치를 떨게 됐다.
“이참에 저놈의 이단 싹 다 사라져야 해요!”
“그러고 말고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죠.”
“기독교가 문제야! 완전히 개독교라니까. 뭐 그 수장 재산은 수 천억 이라면서?”
“그러게, 종교인들이 뭔 돈이 그렇게 필요한 건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