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거버넌스 블록체인(4)
“새 술은 새 부대(負袋)에”하(下)
두 번째는 세계화다.
우리나라처럼 ‘세계화’에 목숨 건 국가도 없을 것이다. 모든 지자체는 모든 행사의 접두어로 “국제”라는 표현을 무분별하게 쓰고 있고, 실제로 “국제”가 포함되지 않은 행사는 제대로 지원받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울러 외국인 참여가 부족한 경우에는 외국인 유학생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세계화를 시도하면 세계화에 성공할 거로 믿었을까?
실질적인 세계화는 우선 정치적으로 볼 때 일개 국가 단독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 예를 들어 세계적인 생태계 파괴나 기후 변화, 이주 노동과 같은 문제 등 - 을 다루고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존과 비교해서 많은 국가가 참여한 협의 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울러 국제적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유엔 차원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필요했다.
경제적으로도 초국적 기업의 막강한 힘의 존재와 영향력은 국가의 경계를 허물었고, 이러한 경계의 소멸은 국가 주권 개념을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경제적인 분야에서의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짝을 이뤄서 전파됐는데, 덕분에 세계화에 대한 의미가 진보주의자들한테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세계화는 국가 중심의 거버먼트를 벗어나 세계적인 수준에서 다자간 협의가 가능한 거버넌스를 추진하는 게 본 목적이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해하면 강대국 중심의 세계 구조를 더 민주적인 체계로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아울러 국가관에도 변화가 있었다. 국가의 발전이 곧 개인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이제는 국가의 발전이 반드시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게 아님을 국민이 알게 됐다. 적어도 과거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것이 새로운 시대에는 고개를 젓게 했다.
국경을 넘어선 정치·경제·사회 활동이 늘어나면서 국외 문제나 사건이 개인이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점 커지게 됐고, 변방이라 여겼던 우리나라도 한류를 통해 수많은 국가에 문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세계화는 스스로 떠돌면서 그 영향력을 확장한 게 아니다. 역시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했는데, 바로 인터넷이다. 그리고 정보는 세계화와 더불어서 더 많이, 더 넓게, 더 빠르게 확산했다. 그 시기에는 그동안 소중하게 여겼던 국민개념이 갑자기 등장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에게 ‘곧 자리를 양보할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개인은 설 자리를 잃고 세계화라는 거대한 태풍 속에서 세계시민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이 시기에 국가 역시 거버먼트의 한계를 느끼면서 거버넌스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지방화다.
지방화는 세계화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자칫 잘 못 생각하면, 세계화와 지방화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영역은 다르지만, 파생한 이유는 유사하다.
세계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를 몇몇 국가들이 모여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서 등장했다면, 지방화는 국가라는 큰 덩어리가 미처 다루기 어려운 미시적인 문제들 - 예를 들어 한 지방에 필요한 다리 건설이나, 공원 건설 등과 같은 문제, 혹은 출산율에 따른 육아 지원과 같은 부분 등 – 이 등장해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세부적인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여러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했다(우리나라는 지방정부 수준은 아니며, 지방자치단체이다). 동시에 자치 역량 강화라는 과제를 줘서 모든 지역의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이름도 바꾸게 된다. 주민자치 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됐고 예산과 관련해서도 주민들이 예결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가 잘 정착됐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지역 토호 세력의 나눠 먹기는 여전하고 규모가 큰 행사들은 기득권이 있는 단체나 개인이 큰 경쟁 없이 이권을 유지한다. 그런데도 지방자치제는 지역의 문제를 국가 수준이 아니라 지역 거버넌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고 좀 더 먼 미래에는 결실이 있으리라 기대된다.
세계화와 지방화로 국가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작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큰 존재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버넌스는 거버먼트의 한계를 극복, 혹은 보완할 수 있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과거에는 거대한 물리력을 가진 국가가 일일이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진행했다면, 이제는 국내외적으로 초국가·지역적 합의나 연대 등이 새로운 협의의 개념으로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즉, 새 술 - 정보화, 세계화, 지방화 등 - 을 새 부대 – 거버넌스 - 에 담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