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負袋)에”상(上)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면, 항상 왜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안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에 이유를 알게 됐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헌 부대와 새 술의 화학 작용으로 인해서 헌 부대가 터진다는 것이다. 복잡한 화학식은 모르겠으나, 같은 성분의 헌 술과 새 술이라고 하더라도 발효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해서 그동안 역사(헌 술)의 주체였던 거버먼트(헌 부대)가 새로운 시대(새 술)에는 새로운 주체 거버넌스(새 부대)로 변화해야만 했다.
복지 국가의 위용으로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 거버먼트에 대한 신뢰는 ‘베스트팔렌 체제(1648년)’ 이후에 공고해져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까지도 국가의 존재는 국민을 보호하는 데 여타 기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있다. 예일 대학교의 역사 교수인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D. Snyder)의 『블랙 어스(Black Earth)』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서슬 시퍼런 유대인 말살 정책에서도 많은 유럽 유대인이 보호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보호망은 국가였다고 말한다.
주권을 잃은 국가의 유대인은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목숨을 잃었지만(실제로 이런 국가의 유대인은 목숨을 잃은 유대인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주권을 유지했던 국가의 국민으로 살면서 보호받았던 유대인은 큰 위협에 놓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히틀러라 하더라도 주권 국가의 국민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냉전으로 이어진 이원화된 세계의 파고 속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평화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조직은 국가뿐 이었다. 당시, 세계는 두 가지 변수 – 안보와 경제 – 를 중심으로 현재와 비교하면 단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냉전이 극적으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이제 새 술이 주조돼 밀려와 콸콸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평화 공존론) 초강대국(미국, 소련) 간의 전쟁 발발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자, 1952년에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알프레드 소비(Alfred Sauvy)에 의해 고안된 ‘제3세력’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양쪽에 속하지 않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발전하면서 세계는 다원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에 “정보(information)”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언급된다.
거버넌스 등장의 첫 번째 이유가 정보화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접근할 방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고급정보는 모두 중앙 어디선가 비밀리에 논의되고 굳게 잠긴 차디찬 금고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런 정보 존재의 유무조차도 알 수 없었다.
앨빈 토플러가 열심히 정보화를 말하면서, 한국 광고에까지 등장했지만(1995년 현대전자의 PR 광고 모델로 등장했었다. 그가 쓴 『제3의 물결』이 1980년에 출간된 걸 볼 때, 정보에 대한 그의 예측은 꽤 정확했다), 정보의 현현(顯現)은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다들 “정보”를 말하지만, 그 흔한 정보를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했는데, 바로 인터넷의 등장이다.
정보가 원료라면, 인터넷은 운송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이를 관심 자에게 연결할 수 없다면, 활용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한 가지 공식이 만들어진다. 즉, ≪콘텐츠 + 기술 = 변화≫이다. 이 공식에 적용하면, 콘텐츠는 정보이고, 기술은 인터넷이다.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변화는 ‘정보화 시대’ 그리고 조금 더 악센트를 줘서 말한다면 ‘정보화 혁명’이다. 콘텐츠와 기술은 동시에 결합했을 때 파급력의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다. 둘 중의 하나라도 없거나, 미약하다면 그 결과는 미비하다.
정보화 시대에는 국가와 시민 사회가 쌍방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정보를 여러 채널을 통해, 그리고 간단한 방법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확산하고 있었다. 이런 장점은 이전 사회의 절대적 기준이었던, 시·공간을 상징적으로나마 무너뜨렸다(시·공간을 철학적으로 절대화했던 칸트가 정보화 시대를 겪었다면, 어떻게 그의 철학을 재정립했을지 궁금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언제, 어디서라도 접속만 할 수 있으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관심 있는 분야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접속의 시대에 제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사실, 이 명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은혜로 살아간다.”에 이어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뒤이어 나온 것이다. 이 명제들만 훑어봐도 역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God)’에서 시작해서 ‘인간(Human)’을 거쳐 ‘기술(Technology)’로 변화하고 있다)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접속이 존재 이유임을 체득했는지 수많은 시민이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 방법에 정부도 전자정부를 출현시킨다. 정보화가 거버먼트를 거버넌스로 이행하게 하는 듯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