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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Join Sep 02. 2020

특집 : 거버넌스 블록체인(2)

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

거버넌스(Governance)의 등장’ : 서구 복지 국가의 한계     


필자가 ‘거버넌스’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된 시점은 90년대 말이었다. 세계사적으로는 냉전체제 종식 이후였고, 국내도 군부독재 혹은 그 잔류당의 집권이 끝나고 문민정부(전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서 국민의 정부(전 김대중 대통령)가 수립된 시점이었다. 대학가에서도 뜨겁게 날아다녔던 “꽃병”이 그 열정적인 날갯짓을 서서히 접고, 대신에 취업학교로 변신해 갈 무렵이었다(IMF 이후 학생 운동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달린다). 그리고 『제3의 물결』 등 ‘정보화’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덮었다.

 1990년대는 말만 정보화가 아니라 인터넷도 급속도로 보급돼 정보 획득 방법이 신속해졌던 시기이다. 일상생활만 해도 나날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시기에 ‘거버먼트’를 대신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니다. 시대적인 상황이 새로운 치리(治理)기구를 간절히 소원한 것이다. 


거버넌스는 ‘(키를)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an’에서 온 것으로 거버먼트와 유사하게 사용되었으나(혹은 거버먼트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한다) 독일의 정치학자 칼 도이치(Karl w. Deutshcht)가 ‘키잡이 수로 안내인’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Kubernetics’에서 나온 사이버네틱스를 정치에 적용해 거버넌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즉, 정부가 혼자서만 키를 잡다가 시민 사회와 키를 나눠 잡고 역할 분담해서 나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양자의 관계가 그동안은 수직적이었다면, 수평적인 관계로, 그 형태도 위계적인 형태에서 네트워크 형태로 변화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 거버넌스로 변화해야 했는가?     


그렇다면, 왜 세계사의 주인공 역할을 감당하던 거버먼트는 거버넌스로 변해야 했을까?      

서구의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복지 국가의 위기,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정보화·세계화·지방화 등의 사회 변화 과정에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거버넌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정부와 시민 사회가 함께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혹은 공동체의 발전적 해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숨어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국가가 다양한 구성원의 니즈를 해결해 주기 힘들다는 한계를 인정한 것이며, 따라서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는 걸 선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을 간단히 따져보자.  

   

첫째서구를 기준으로 할 때 복지 국가 재정의 위기이다. 

 알다시피, 서유럽의 복지 국가는 모든 국가의 종착점으로 여겨졌다. 주택 문제, 교육 문제, 노후 문제(의료를 포함)가 모두 해결된 국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추구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단, 이러한 복지 국가는 충분조건으로 넉넉한 재정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자본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후세대가 전(前) 세대를 부양해야 할 부담이 과중해지기 시작하자, 점차 복지 정책 유지 재원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존 거버먼트의 변화를 촉구했고 효율적인 방법을 마련하려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국가가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특정한 혜택을 제공하다 보면, 불필요한 예산이 소모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에 거버넌스에서 논의 후 집행한다면, 필요에 의한 공급이 더 구체적(지역 단위) - 예를 들어 A 지역에는 의료비보다 주거비가, B 지역에는 주거비보다 의료비를 더 지원하는 방법 등 - 으로 반영할 수 있다.     

둘째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체제는(정당 정치)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었으나,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말처럼 부패하기 시작했고 이런 부패는 정치 발전에 장애가 됐고, 결국 국민의 무관심을 가져왔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정치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만족할만한 전략도 부재했다. 이러한 현상은 곧 투표율로 이어졌는데, 최근 한국 투표율만 보더라도 투표율이 87년 이후 계속 떨어졌다가 최근에 소폭 상승했다(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89.2%에서 17대에는 63%까지 떨어졌었다).      


셋째로 국가 간섭이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았다

 복지 국가를 비판적으로 본다면 유모 국가(Nanny state)”처럼 보일 수 있다. 복지를 이유로 국민의 일상까지 침투하고 간섭·통제해서 자발성과 자율성을 해쳤다는 비판이다. 물론, 복지 국가의 장점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이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도래하면서부터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부상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자유를 제한받는 상황은 족쇄를 채운 상황으로 인식하기 마련이었다. 아울러 과거처럼 국가가 모든 걸 감당할 수 없었으니 개인이 과거처럼 국가의 권위에 고개 숙일 이유가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시대는 거버먼트를 대신할 다른 통치 시스템을 찾아야 했다. 이때 등장한 방식이 거버넌스이고, 그 차이는 전문 관료집단에 모든 걸 위임한 ‘베이비(baby)’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 자결(自決)할 수 있는 ‘어덜트(adult)’ 국민으로의 성숙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는 힘든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처럼 거버넌스는 서구 복지 국가의 한계를 바탕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흐름의 당연한 요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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