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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Join Sep 08. 2020

특집 : 거버넌스 블록체인(5)

“The show must go on” : 거버넌스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거버넌스 이해와 허구성 실천이 어렵다     


거버넌스는 거버먼트와 달리,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이는 주체 – 정부, 기업, 시민 등 - 가 다양하다. 어떤 특정한 주체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참여자들의 공동 노력이 기반이 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조금 더 설명하면, 거버넌스는 함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며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거버넌스가 아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세상일은 말과 실천이 일치하기 힘들다. 공자는 논어에서 실천 없는 배움은 허구이다.”라고 말했다. 거버넌스와 관련한 이론은 무성하고 이상적인 포장은 수두룩했지만, 제대로 조성해서 운용하는 게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그저 거버넌스가 트렌드였기에 국내에서 거버넌스라는 언어는 유행처럼 퍼지게 됐을 뿐이다. 그래도 흉내라도 내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노력은 있었으나, 결과물은 초라했다.     


거버넌스라는 말은 국내에서도(국외에서는 1980년대에 사용됐다) 90년대부터 사용됐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았던 국민이 얼마나 있었을까(그리고 앎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국내에서 조성된 거버넌스 앞에는 접두어처럼 민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같은 말을 중복해서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거버먼트를 대체하는 거버넌스는 당연히 정부와 함께 기업,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게 전제된다(앞선 글에서 거버넌스의 유래를 살펴보고 의미를 따져볼 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앞에 ‘민관’을 붙인 것은 ‘거버넌스’에 대한 주최자의 이해 부족이거나 혹은 긍정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이제 관치가 아닌 국민과 함께 치리(治理)하겠습니다.”라는 선언밖에 되지 않는 말이다.     


‘거버넌스’라는 언어가 등장하고 학계에서 연구한 기간도 20년이 넘는다. 논문을 검색할 수 있는 학술연구정보 서비스(RISS)에다 “거버넌스”를 검색하면 1972년에 나온 『부산의 도시혁신과 거버넌스 : 도시성장전략을 중심으로』 라는 논문이 등장한다(왠지 정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음 논문은 『地方財政 擴充을 위한 中央政府의 政策開發』이 1991년에 등록됐다. 현재까지 9,000여건으로 검색되는데, 단행본 등을 포함하면 연구 결과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거버넌스’ 개념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본인이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거버넌스’라는 걸 모르는 참석자도 많고, 준비하는 관료들도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종의 ‘회의’로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존재할까?     


우선현재 거버넌스의 호스트가 기존 거버먼트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호스트하기도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호스트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서, 기존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거버넌스를 조성하고 주도하기 때문에 형태는 거버넌스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거버먼트 산하 기구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둘째로 참석자의 수동적 태도이다

 거버먼트의 참여 요청이 있을 때(이미 자발적이지 않다) 선택은 두 가지다. 참석하든지, 참석하지 않든지. 그러나 관료가 요청했을 때 대상자가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참가자 명단에 등록은 쉽게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물론, 거버넌스에서 제안하는 목적과 주제가 참석자의 호기심을 충족한다면, 자발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능동적으로 활동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구성원의 직종, 사회적 지위 등이 각기 다르기에 참여자들의 니즈가 상이(相異)할 수밖에 없다. 즉, 참석자의 참석 목적과 의미가 다름을 의미한다.      


상식적으로 서로 다른 구성원이 모여서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충분한 토론과 논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유롭지 못하다.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참석자들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다고 가정했을 때, 참석자 대부분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모이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진지한 토론과 토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대체로 거버넌스라는 타이틀만 고수할 뿐 거버먼트가 생각하는 목적과 수단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요식행사로 진행할 뿐이다.     


세 번째 이유는 거버넌스를 조성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자원이 없는 개인이나 조직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고 해도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협력적인 개인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현재 거버넌스 구성은 최소한 정부, 시민, 기업 등 다자간 주체의 참여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비용을 지원하기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중책을 맡은 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전문 기관 담당자의 참석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리고 굳이 전문가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을 공부방을 만든다고 할 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리서치(research)해서 공부방 참여대상과 필요한 과목 등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일에 굳이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을까? 거버넌스는 주제와 목적이 중요하지, 참석자의 직책이나 전문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호스트가 거버먼트거나 대기업인 경우 내용보다는 겉 보기를 강조하는 현실이다.     


거버넌스는 거버넌트와 다르다. 기존 사업이 법이나 규칙을 따른다면 거버넌스는 공동의 노력이므로 협약, 협의를 따른다. 거버먼트의 주도하에 조직돼 그 산하 기구로 남는 게 목표가 아니다. 정부를 포함한 참여 주체가 함께 의논하고, 발전 방향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다양하고, 더 쉽고, 더 밀접하고, 더 자연스럽게 모이는 협의체가 돼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버넌스는 조성될 수 없으며, 이름만 거버넌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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