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작가Join Sep 09. 2020

특집 : 거버넌스 블록체인(6)

회의는 있으나 나아가지 않는다

거버넌스가 있으나 거버넌스는 아니다     


거버넌스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협의체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모습은 거버넌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발전과 혁신을 위한 논의의 시공간에 모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 체제나 시스템 유지를 위한 결론을 내린다면, 그 회의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한국의 거버넌스는 현재 이름은 있으나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기대에서 실망으로     


민관 거버넌스의 출현과 유행으로 거버먼트에서 민간으로 권한이 이양될 거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거버먼트에서 권력을 거버넌스로 이행하려고 했을까? 90년대 후반부터 시민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2009년에 나온 『한국 비영리기관의 현황과 특징』(황덕순)을 보면, 1990년대 후반에 설립된 기관이 전 기간을 통틀어서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자세한 수치는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국가의 강력한 힘에 억눌렸던 시민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켰던 시대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수가 많다는 걸 긍정적으로 이해하면, 시민 사회의 수준이 높고 역량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기본적인 선거조차도 제대로 치른 경험이 부족했던 사회는 자유분방하게 시민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인재와 자원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     


시민단체 수가 많아진 것과 관련해서는 시민 의식의 성장, 사회의 다양성, 개방성 등이 향상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단체가 많이 설립됐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바로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거버넌스가 등장한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으로 조성된 거버넌스는 참석 단체 수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와야 하고 수많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이견이 나올 때 이를 조율하고 적절하게 조정할 방법이 없었다. 

 아울러 이익(이권, 예산 등)이 걸린 상황에서의 시민단체들의 다툼은 치열했고, 관에 대한 로비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니 ‘어용(御用)’단체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돼 긍정적으로 성숙해 가는 시민 사회의 발전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버먼트는 거버넌스를 이용해서 정권, 정책 등의 당위성을 확보하면서 지지 세력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거버넌스와 국가 산하 위원회의 차이점은 ‘타이틀’ 차이였지, 내용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참여와 비판을 통해서 발전했다. 어쨌든 인간은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 아닌가? 학습을 통해 긍정과 부정 양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거버먼트의 파트너로 시민이 등장했다는 자체가 괄목상대한 발전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국민, 시민, 주민이 가진 힘은 제한적이었다. 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의 권력 이동은 요식적인 수준이었고, 행정 능력이나 실행 능력이 문제가 될 때마다 관료집단으로부터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회의는 있으나 나아가지 않는다.     


“회의는 춤을 출 뿐, 나아가지 않는다.”라는 말은 나폴레옹 체제를 종식하기 위해 모인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의 한 장군이 한 말이다. 세계적인 문제 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국가의 대표들이 모였으나, 회의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주지하다시피, 빈 회의의 결말은 구체제로의 회귀였다. 그리고 이러한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으로의 회귀는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혁명의 원인이었고 혁명 시기에 무너진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볼 때 변화의 바람은 잠시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히 멈추게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거버넌스는 거버먼트를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책임지는 협의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구성 절차만 살펴봐도 거버먼트 단독으로 관료 회의에서 결정했던 사항을 정부, 기업, 시민 등 다자간 주체가 모여서 심의한다. 그러다 보니,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경험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현실은, 회의는 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회의 이후 결정된 사항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나 책임이 없었다. 그러한 책임과 권한은 거버넌스에 있지 않고, 여전히 거버먼트에 있었다. 혹, 거버넌스에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백지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도 비슷하다. 아무리 여론이 좋지 않고, 야당이 반대해도 대통령은 장관을 마음대로 결정한다. 그럴 거면, 왜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고, 청문회를 하는가? 결론이 주최자(VIP)의 생각과 다르면 결정은 번복되거나 실행할 수 없다.


거버넌스가 거버먼트를 대신한다고 하지만,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니 회의만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없다. 그저 회의장에서 현란하게 턴 하는 춤솜씨 대신 말솜씨가 허공에서 공기를 멋쩍게 가를 뿐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거버넌스에 참여했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저 앉아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수당을 받아 돌아가는 아르바이트 역할만 말없이 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