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w must go on” : 거버넌스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거버넌스의 등장은 거버먼트의 한계 때문이었다.
20세기 후반(1980년 후반에서 1990년대 초) 거버넌스 개념이 등장한다. 이 시기는 우연히도 냉전이 종식될 무렵이었고, ‘정보’라는 말이 온 지천을 덮었던 시기다. 냉전이 끝나갈 무렵에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지배했던 세계 흐름을 중단됐고, 각기 서로 다른 실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주체가 등장했다.
다양한 주체의 생성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니즈가 등장하리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거버먼트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고, 정치적 엘리트를 후원하는 지지자들(국민)의 요구를 거스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거버넌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했다. 권력은 변화를 싫어한다.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다양한 특혜가 권력의 본질이어서 한번 권력을 맛본 계층은 권력을 최대한 길게 활용하려고 한다. 현재 정권(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근저에도 이와 같은 권력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지금 정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거버먼트는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주체지만, 최대한 변화의 순간을 늦추려 한다. 적어도 본인들이 적응하고 새롭게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준비를 마칠 때까지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그러다 보면, 정권이 바뀌기도 하고, 최고 통치자가 탄핵되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를 이끌어 갈 거버먼트의 구성원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버넌스가 30년 전부터 등장했어도 잘 조성돼 지금까지 운영되는 경우가 드문 것이다.
이런 거버넌스 한계의 첫 번째 원인은 호스트 문제이다.
거버넌스가 거버먼트 주도로 시작했기에 거버넌스는 거버먼트의 하위 기관처럼 여겨진다. 다양한 주체가 참여한다고 하지만, 그 참석 대상을 결정하는 주체가 거버먼트여서 거버넌스는 거버먼트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구성원으로 채워진다. 그러니 ‘어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지기 힘들다.
다음은 자원의 문제다.
앞서서도 지적했듯이 자원이 부족한 민간 영역에서 거버넌스를 자체적으로 구성하고 운용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혹 조성했다고 했더라도 거버먼트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사멸 혹은 인멸(거버먼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멸시킨다)하는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거버넌스 자체가 목표와 목적이 있는 조직이다 보니, 실질적인 역량이 부족하면 구성원들의 결속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자진 해산하게 된다.
필자도 과거에 신촌에서 ‘신촌 상생 협의회(신촌 지역의 거버넌스였다)’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지역 단위였기에 ‘로컬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는데, 참석자는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 상인연합회였다.
취지는 거버넌스를 조직해서 각 주체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진행하고, 협력체제를 확고히 해서 각 주체가 상생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하자는 것이었다. 회의는 1년 가까이 진행됐으나, 적극적으로 자원을 운용할 기관이 없다 보니, 회의만 진행되고 실행되는 게 없었다.
결국,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자원은 거버먼트에 집중돼 있어서 거버먼트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면 거버넌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기관이 돼 버린다. 아무리 요청해도 ‘장(長)’의 의견과 다르면, 지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면 처음의 열의와 의지는 꺾이고 수동적인 구성원만 남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참석자들의 니즈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거버넌스를 거버먼트의 호스트로 조성했다 하더라도 참석자들은 같은 목표로 모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자치단체장들이 선거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추진단 형태의 거버넌스를 조성한다. 시각에 따라서는 거버먼트 하위 기관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서 발전적인 지방자치제를 논의하는 모양새니, 거버넌스이다. 그러나 다양한 참석 주체만큼이나 서로의 목적과 목표가 다르다.
사사로이는 인맥을 넓히기 위한 것부터 자치단체장의 의지를 확인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단체를 조성하는 걸 목표로 하기도 한다. 표면적인 목적은 지역의 발전이나, 실제는 개인 혹은 단체의 이익 추구인 셈이다.
이런 경우 회의는 처음 모일 때 요란하고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다가 운영 방식에 회의를 느끼는 구성원,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구성원 등 다양한 불만이 생겨 참석자들이 떠나고 참석률이 저조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거버넌스를 기획하는 공무원이나 참여하는 민간단체의 구성원도 본인들이 참여한 시공간이 거버넌스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거버먼트를 대신할 수 있고, 그만큼의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조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권력을 나눠주는 일은 참 어렵다. 이미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쉽게 내놓는 거버먼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지난 시대의 권력보다 많은 부분을 이양했다고 하지만, 권력을 나눠 먹는 무리가 약간 늘어난 것이지 혁신적인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버넌스에 권력이 없으면,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 그래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등장한 후 그 실험과 시도가 수십 년 동안 이뤄졌음에도 정착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