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박사과정의 첫 해: 시작
아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사과정 정말 해보고 싶었다. 2021년 여름 베를린에서 석사과정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의 나는 2018년 가을 대학원에 입학할 때보다 훨씬 의젓했고, 남들에게 드러내 말하진 못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스톡홀름 대학교 박사과정에 지원해 떨어졌고, 함부르크 소재 연구기관에서 심층토론면접을 (적어도 내 생각엔) 좋은 분위기에서 잘 마무리했지만 결과는 잘 안됬다. 두번의 낙방을 겪고 아무래도 공부할 재량이 못되서 그런가보다 생각이 들어 베를린 소재 대학 두군데 국제교류처에 지원해 두 곳에서 모두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 중 한 학교에서 2022년 1월 일을 시작했다. 일은 재미있었다. 에라스무스 학생들 어드바이싱을 해주면서는 이태리에서 보낸 내 에라스무스학기가 생각났고, 난민학생들 장학사업 업무를 할때는 내가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쑥스럽지만 보람을 느꼈다. 여름특별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도 즐거웠다. 베를린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직장, 월급도 만족스러웠고, 무기계약직이었고, 개인 사무실에서 일하며 매주 금요일은 홈오피스가 원칙이었던, 꾀나 완벽한 자리였다.
하지만 일터는 완벽할리가 없다, 당연히. 국제교류처 처장. 그녀가 그 자리를 지킨 15년간 무수히 많은 부하직원들이 질려 도망갔다는 것은 입사 후에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 잿빛이 되어가는 나에게 다른 부서 직원들이 몰래 걱정과 위로를 건내는 지경이었다. 한밤에 스트레스성 위경련을 두 차례 겪은 후 그 일터를 떠나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버티려면 버틸 수 있는 자리지만 버틸 가치가 있는 일인가는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입사 한달 후 나는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오래! 마음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 독일에서 외국인의 구직은 이것저것 가려내고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는걸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눈을 높이기로 마음먹었다. 직업은 내 건강과 행복에 직결되니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직업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물론 구직중에도 회사는 열심히 나갔다. 일도 열심히 했다. 다음 직업을 가는 트레이닝 과정이라 생각하고 야근도 외근도 마다않고 했다.
구직을 마음먹고 처음 발견한 자리는 브레맨 대학교 박사연구생 자리였다. 연구팀에 합류해 바로 팀 리서치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박사논문도 쓰는 그런 자리였다. 지원하고 두 주 후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근데 인터뷰를 당장 내일 아침 9시에 하자네. 오케이 메일을 보내고 부랴부랴 그 연구팀에 있는 교수님 두분이 쓴 가장 최근의 페이퍼 2개와 각 교수님들의 인용수가 제일 높은 페이퍼를 읽고 팀 연구주제를 분석하고 관련 페이퍼들을 찾아 읽었다. 인터뷰는 긴장하고 시작했지만 20분쯤 이야기하고 나서는 서로 웃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편한 분위기에서 했고, 인터뷰를 마쳤을 때 나는 그 면접을 한시간의 즐거운 대화로 기억했다.
인터뷰를 금요일 아침 9시에 봤는데 저녁 5시에 합격통보를 받았고, 그 다음 월요일까지 확답을 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 월요일 베를린은 공휴일이라서 (여성의 날) 나는 남편과 토, 일, 월 2박3일간 베를린 근교 Bad Saarow 바트 자로 라는 호숫가 마을에 가서 사우나도 하고 산책도 하는 그런 휴식을 계획했던 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근교지에서 박사과정 오퍼를 승낙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고민의 본질은 박사과정을 도전해 보고 싶은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내가 선택을 잘못하면 어떡하지, 지금 내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고민의 아주 핵심은 위험부담. 박사연구생의 월급은 그당시 일하던 국제교류처 월급보다 적었고 4년 계약직이며 무엇보다 남편과 함께 자리잡은 베를린 집을 떠나 브레멘으로 이사해야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떨어져 지내는 것은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문제가 아니었으나 내가 덜컥 이사까지 했는데 만약 그 자리에 만족할수 없다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위험부담.
가족, 친구들, 석사 대학원 다닐때 조교로 일했던 독일인 교수님, 커리어코칭을 전문으로 하는 남편 동료에게도 연락해 의견을 구했다. 대부분은 박사를 추천했다. 대학원시절 교수님은 주말에 장문의 메일을 보내오셨는데, 내게 박사연구생으로서 필요한 자질은 모두 갖추었으니 정말로 "선택"의 문제라고 하셨다. 그 말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내게 자리를 오퍼해준 박사 연구팀 팀장 교수님한테도 메일을 드렸다. 짧은 시간 내에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꿀 결정을 해야하는게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고 솔직하게 글을 적었고, 내가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아 그러면 우리 전화통화를 하자~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전화연결이 되었고 교수님이 한시간에 걸쳐 나를 설득하셨다 (다시 생각해도 감동이다). 그때 나는 호텔 로비 쇼파에 앉아 수화기 건너편의 교수님 말씀을 메모하며 마음에 확신을 얻었다. 특히 1. 우리는 니가 필요해. 면접을 통해 니가 누구보다 준비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2. 니가 이 팀에서 할 일은 (티칭 등 다른 일이 아닌) 연구야. 라는 말이 확신을 줬다. 다른 누구라도 상관 없는게 아니라 나를 원하는 팀이었고 독일 내에서도 일이 연구 그 자체인 자리는 아주 흔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시간이나 시간을 내어 나를 안심시켜주신 그 교수님을 생각하니 이런 팀이라면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은 용기도 났다.
전화를 끊고 바트 자로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내 머리에 든 생각은 그 전과 조금 결이 달랐다.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이걸 하지 않고도 괜찮을까?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니 나는 100% 미련을 품고 후회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의 여정에 접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