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옷이 없어요

보드복을 입고 다녀야 할까 봐요

by 묘선

어제 이 시간엔 보드로 눈을 가르며 언제까지고 그 속에 파묻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반대로 격하게 느긋한 오전을 보내며 간만의 스키장 방문으로 충만해진 마음을 안고 글을 적어본다. 하루 동안의 짧은 보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예상한 아쉬움 보다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기에 왤까!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전엔 그곳을 떠나 있는 시간이 힘들었다.힘든지, 정말 보드가 타고 싶은지 그런 것보다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열심히 연습해 잘 타게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최선도 병이라면 병이다. 고질병. 보드가 좋았지만 그탓에 가끔은 출처 없는 의무감을 느꼈다.


조용히 다녀온 올해의 시즌 시작. 보고 싶던 이들은 대부분 시즌인 전이었고, 1년 만에 올라선 보드는 언제나처럼 예상보다 어색했다. 간만에 눈위를 구르며 넘어지며 첫날이니 무리하지 않고 타겠다는 다짐은 한슬로프만 더... 하는 욕심에 조금씩 연장되었다. (덕분에 현재 전신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다.)


따듯한 계절 속에서 보드타는 법을 다 잊었다. 5번쯤 넘어진 다음이었을까, 리프트 줄 속에서 가족톡방에 스키장 사진과 함께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왜 행복한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보드를 잘 타기는 커녕 넘어지는 법을 리마인드 해야할 판인데... 이유를 찾다가는 이 찝찝한 행복을 놓칠 것 같아 쉬지 않고 보드를 탔다. 그곳을 떠나기가 아쉬워 보딩을 마치고도 괜히 사진을 찍고, 락커에서 한참을 쉬었다. 잊고 있던 배고픔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겨우 발을 떼었다. 저녁을 먹은 건 6시에 먹은 아침으로부터 12시간이 지나서야였다. 평소엔 한 끼만 걸러도 죽을 것 같은데, 스키장에선 흘러가는 시간도 배고픔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된다. 새하얀 슬로프 앞에서 다른 건 다 상관없어 보인다.


그곳이 환상적인건 두터운 눈 때문도, 멋진 실력 때문도 아닐지도 몰라. 퇴근 후 꾸역꾸역 3시간을 달려 보딩하러 오는 사람, 생계를 잠시 접어서라더 겨울시즌을 즐기는 사람, 방학 전에 당일치기로 강원도에 온 나. 환상을 만든 것이 모두의 진심이고 애정이라면, 보드에 대한 마음만으로 충분하겠지.


진심을 잃지 않기를. 그럼 어릴 적 스키장을 찾던 설렘처럼 언제든 환상에 젖어들 수 있을거야. 여전히 보드는 잘 타고 싶지만! 다시 연습에 매진할 수 있는 그날(종강날...)까지, 올해는 어쩐지 그곳을 바라만 봐야 하는 시간을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