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즌을 앞두며
'벌써 그걸 꺼냈어?' 본가에서 걸려 온 아빠의 전화에 따듯하면 잠이 잘 오잖아.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10월 말, 찜질팩과 함께 한자리 수까지 훅 내려간 아침을 맞으며 겨울이 옴을 느낀다.
추운 건 싫다. 만나는 사람마다 5겹의 레이어드(인 척하는 내복)를 자랑하는 건 가끔 재밌지만,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한기는 도무지 애정할 수가 없다.
겨울에 기대할 만한 곳은 데워진 이불 속과 스키장 뿐이다. 춥다고 하며 영하 20도에 치닫는 설산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의 온기 때문이다. 추위 덕분에 존재하는 세상에 춥다는 말은 겉치례도 되지 않기도 하다.
날씨에 대답하듯 스키장에선 11월 셋째 주 개장을 예고했다! (물론 이 날짜는 아쉬운 거짓말이 되기 십상이지만) 개장 소식에 잊고 있던 스키장의 겅기가 떠올랐다. 눈 사이를 보딩 하며 느껴지는 열감, 김이 홀홀 나는 노천온천, 입김과 함께 주고받는 인사 따위의 것들. 이들은 겨울임을 포기하지 않고 따스하다. 추운 건 싫지만, 거기에 깃든 따스함을 위해서라면 조금 견뎌볼 만 하다.
대학생이 되고 맞은 겨울마다 방학마다 스노우보드를 탔다. 언제까지 놀러만 다닐 거냐고, 또 스키장이냐고 묻는 한탄 섞인 놀림들에는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시간의 쓸모를 만드는 것에 집착하던 나는 그 말들이 무서웠다. 날 걱정하는 말들이 무서웠던 건, 언젠가 동의할까봐서 였다. 그럼 모든 게 그저 기포처럼 승화될 것 같았다.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고, 건강을 챙기려고 운동하고, 00 하려고 스노우보드를 ... 거기에 들어갈 말은 영 나오질 않았다. 틀이 없어서 불안정하고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순간들을 잡아두기 위해 몇차례의 시즌을 보내며 공백에 들어갈 말을 열심히 찾아댔다. 시간이 지나면 아직은 모르는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흐릿했던 공백은 어이없게도 점점 깨끗이 지워져갔다. 스노우보드가 가르쳐 준 건, 공백에 들어갈 말이 아니라 공백을 애정하는 법이었다. 틀이 없는 시간은 어떤 세상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 그런 시간을 선물받는 것은 정말이지 큰 행운이야. 라고 말이다. 겨울 내내 수도 없이 가르고 내려온 눈이 봄의 온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설산에서 보내고 온 시간도 내 속 어딘가에 녹았겠지. 스며든 기억들을 겨우 꺼내 끄적여본다.
눈을 가르며 스노우보드를 타야지.
겨울이 왔으니 이만, 스키장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