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에서 스노우보드로
어릴 때부터 스키장이 좋았다. 짧은 어린이용 스키를 포대자루 삼아 신나는 눈썰매를 타러 가는 곳! 그곳이 스키장이었다. 하루 간 함께할 스키의 색깔을 고르는 것도, 비싸고 평범한 푸드코트에서 먹는 밥도 좋았다. 양손에는 폴대, 양 발에는 스키, 그것이 그 세상으로의 입장권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다니던 체육클럽에서 스키캠프를 가기도 했다. 수업은 귓등으로 듣고 내 멋대로 내려가기 일쑤였던 것은(강사님께는 죄송하지만) 아마 스키보다는 스키장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스키장은, 놀이공원 같은 환상의 공간이었다.
그런 기억 때문이었을까 성인이 되던 겨울 스노우보드를 배웠다. 조금 더 썰매스러운 걸 타고 싶은 욕심이었다. 솔직한 마음을 조금 꺼내 보자면, 어른이 되었다는 고양감에 내본 객기었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스키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내심 그것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동경을 살짝 드러내 본 것이었다. 처음, 자유로운 두 손으로 두 발을 스노우보드에 묶어보았다.
시작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신청한 입문 강습이었다. 초급코스를 원 없이 구르며 종일 아파하며 웃어댔다. 보드는 입문이 가장 힘들다는데, 그런 면에서 그 시간이 재밌었던 건 온전히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 해에는 시즌권도 없이 맞먹을 정도의 돈으로 입장권을 사며 스키장에 다녔다. 그렇게 자주 스키장에 간 겨울은 처음이었다. 차도 장비도 없이 잘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보드를 탔다.
'미지의 감각을 얻고 싶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하는 것은 나의 경우 그런 욕망이다.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게 어색한 느낌은 유창한 자들이 가진 '미지의 감각'을 열망하게 하는 것처럼. 모든 시작엔 크고 작은 미지가 있다. 거기서 오는 답답함이나 거부감에도 기꺼이 시작을 결심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호기심보다 좀 더 지저분한 욕망이다.
스노우보드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보다도 미지로 가득해 보였다. 짧은 겨울을 마음 급히 뒤적이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