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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채 Mar 14. 2024

100억을 둘러싼 자매전쟁


'도대체 이게 얼마야... 0이 몇개야? 하나... 둘... 셋... 일곱... 100억?'


재판부에서 보내준 자료를 보고 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통장에 찍힌 0의 갯수가 무려 100억 가까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100억을 둘러싼 자매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지방의 유명한 사업가였는데, 사망 직전 동생에게 유산을 대부분 물려주고 사망했다고 한다. 


물론 나의 의뢰인인 언니, 최명옥씨는 그 재산이 동생이 모두 아버지에게서 빼앗아간거라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치매 때문에 거동도 힘들고 의사 판단도 제대로 안됐어요. 그 사이에 고년이 재산을 빼돌려간거죠. 변호사님. 할 수 있는 소송은 모두 해주세요. 내용증명도 몇차례 다 보내주시고요."


처음엔 최명옥씨가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이미 억대 자산가였기 때문이다. 동생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소송을 다 해달라니. 


'그토록 재산이 많으면서도 더 가지고 싶은걸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런데 나 조차도 그녀들의 아버지 계좌를 열어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계좌에서 한번에 30억, 50억 원 씩 현금으로 인출 할 수 있는 알부자였다. 요즘 시대에 부자라고 해봤자 현금화 할 수 없는 아파트에 눌러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문제는 최명옥씨의 동생인 최명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명확한 증거가 계좌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녀들의 아버지는 한번에 많은 돈을 인출하기는 했지만, 그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옥씨는 확신을 가지고 내게 얘기했다. 


"걔가 가져갔을거에요. 걔 계좌를 더 털어봐주세요"


하지만 재판부는 아무런 이유 없이 피고의 계좌를 털어봐주지 않는다. 이유를 잘 설명해야했다. 


최명자씨는 명옥씨에 비해서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명옥씨에 비해서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씀씀이가 커졌고, 매달 명품을 사들이기 시작했었다. 


루이비통, 샤넬 등등... 그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고급진 라인들로만 구성된. 


우리의 의뢰인은 동생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그녀가 명품을 두르고 명옥씨를 만나러 올때마다 몰래 사진을 찍어뒀었다. 나도 이혼 사건을 제외하고는 그런 식의 증거들을 제출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의뢰인이 꼭 이 사진들을 제출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어쩔수 없이 사진들을 소명자료에 끼워넣었다. 




마침내 한 달을 기다린 결과 최명자의 계좌 내역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정말 지리한 작업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계좌에 돈을 입금한 시기와 그녀들의 아버지 계좌에서 돈이 출금된 날짜를 모두 하나하나 비교해서 엑셀로 정리했다. 


결과는 대만족스러웠다. 최명자는 아버지의 계좌에서 출금을 하자마자 본인의 계좌로 2~3일에 걸쳐 나눠 입금했다. 그리고 카드로 열심히 여기저기 쓰고 다닌게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엑셀을 정리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유류분 소송에서 상당 부분을 인정 받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은 나만 느낀게 아니었던 걸까, 처음엔 최명옥의 소 제기에 코웃음을 치던 최명자와 그 변호사는 그 다음 변론기일에 '조정'을 원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조정이란, 원고와 피고가 만나 싸우지 않고 서로 의견을 맞추어 소송을 종료하고자 하는 절차를 말한다. 말그대로 싸움판에서 내려와 화해를 요청한 것. 


우리 쪽은 손해볼게 없어 조정에 응했다. 


최명자는 그녀들의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 무려 30억을 인출해대기 시작했었다. 조정에 가보니, 최명자는 그 30억 원 중 대부분은 소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게 1억 원 남짓이라고. 


나는 최명옥씨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럼 어쩔수 없죠 뭐. 1억 원에 조정 끝내도록 합시다."




나는 명옥씨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조정 장 내에서는 내가 '정말로 괜찮겠냐'고 한 열차례는 물어봤던것 같다. 그녀는 내내 아무말 없었지만 밖에 나와서야 내게 시원하게 말해줬다. 


"밝혀졌잖아요. 아버지 돈을 쟤가 흥청망청 쓴거를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리고 애 표정이 안좋더라고요. 그러게 그냥 돈 필요하다고 나한테 말을 했으면 좋게 끝났을 일을..."


멋진 의뢰인이었다. 사실 조정장에서 그녀의 동생은 계속 죽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돈을 빼돌렸다는 것이 다 들켰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 내내 언니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할 뿐더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남은 돈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토해냈다. 


어쩌면 이 둘의 자매전쟁은 돈 때문에 벌어진게 아니라 어릴적 하던 싸움이 판이 커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창하게 시작했던 자매전쟁은 언니에 의해 마감이 되었다. 최명옥씨는 그녀의 동생을 상대로 했던 모든 민, 형사 소송을 취하했다. 


"이제 늙어갈 일 뿐인데 동생하고 관계 회복도 해야죠. 너무 다 뺏어오면 그것도 좋지 않아요."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와 회의를 할때만 해도 동생에 대해 안좋은 소리를 하기 바빴는데.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니 오히려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저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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