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채 Feb 19. 2024

제 아들에게 고소당했습니다

즐거운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밝았다.

아, 이번주는 재판 스케쥴이 없었지- 하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것도 잠시. 스케쥴표를 확인하니 지난주의 내가 이번주 월요일에 의뢰인 미팅을 잡아놨다.


의뢰인은 나이가 지긋한 남성으로, 아들의 차에 녹음기를 설치해두었다가 덜미가 잡혀 고소당했다. 곧 공판이 열릴 예정이었고 내가 국선으로 선정되어 날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내 아들한테 고소 당할줄은 몰랐죠.

세상에 이런법이 어딨답니까?”


오후 3시. 미팅룸에 앉자마자 의뢰인은 펄펄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고소할 수 있냐며.


의뢰인은 다름아닌 아들의 차를 주로 타고 다니는 자신의 와이프, 즉 아내의 외도 증거를 잡기 위해 차량에 녹음기를 설치했었다. 그런데 6개월 내내 녹음된 것 중에 의심갈만한 정황은 없었고, 되려 느낌이 쎄하다는 엄마의 말에 차를 샅샅이 뒤져본 아들에게 녹음기가 딱걸린 것이었다. 아들은 그 길로 경찰서로 향했고 아버지를 고소했다.


“선생님. 이미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는 인정하셨고, 타인의 대화를 녹음 한 것 자체는 범죄이기 때문에 무죄 주장은 어렵습니다“


“나도 알아요! 그래도 괘씸하단 말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들과 아내, 두 사람 모두에게 처벌불원서를 얻는 것이 좋습니다.“


내 말에 의뢰인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가뜩이나 아들놈과 아내에게 잔뜩 화를 내고 지금 집에서 나와 지낸지 꽤 되었는데 처벌불원서라니? 그걸 어떻게 받아오라는거냐며 짜증섞인 목소리를 낸다.


“통신비밀보호법위반에는 벌금형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오래되긴 하셨지만 과거에도 동종전과가 있어요. 막연하게 집행유예가 나올거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변호사다운 표정을 지으며 답변했다. ‘잘못은 아저씨가 하셨잖아요. 그럼 이정도 노력은 하셔야죠.’ 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최대한 에둘러 친절히, 형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의뢰인께 양형자료를 요청했다.


그러자 짜증을 내던 의뢰인은 ‘그게 꼭 필요한거냐’며 이내 한숨을 터트리며 사실을 털어놓는다.




“변호사님. 사실은 아내가 이 늦은 나이에 이혼 소송을 제기해서 진행중입니다. 서로 감정이 상할대로 상했는데 처벌불원서를 써줄리가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 의뢰인이 처벌불원서를 못받아오겠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아내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였고, 통비법위반으로 형사사건까지 기소당한 이 상황에서 아내와 아들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가 꺼려졌던 것이다.


“그럼 제가 연락해보죠. 안되면 어쩔 수 없고요.”


지금껏 짜증을 내던 의뢰인은 내가 대신 연락해준다고 하니 옅은 미소를 띄며 단박에 아들과 아내의 연락처를 적어준다. 그리고 혹시몰라 챙겨왔다며 냉큼 이혼 소송의 기록 사본도 건넨다. ‘애시당초 이럴 목적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국선이든 사선이든 난 내 할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냥 군말 없이 기록을 받았다.




이혼 소송 기록을 검토해보니 이 아저씨, 답이 없다. 그동안 몇십년간 가정의 폭군으로 활동해오셨다. 물론 이혼 사건의 특성상 어느정도 과장은 있겠지만, 아내는 의처증에 시달려왔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폭행당하기까지 했다.


폭행 당한 일은 오래되어 입증하기가 어려웠는지 상해 사진이나 진단서 등은 첨부돼있지 않았지만 아들이 작성한 사실확인서가 버젓이 존재했다.


‘어머니는 제게 늘 미안해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매번 죄송해 했고요. 왜 저희 모자가 서로에게 미안함과 죄송함을 느껴야합니까? 어머니는 바람을 피운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을때를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중학교 1학년때였지만 아직도 선명합니다.‘


의뢰인의 말대로 처벌불원서를 얻는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감정이 곪을대로 곪은 아들과 아내에게 ‘용서해달라’고 당사자가 아닌 변호인이 연락한다면?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감정이나 의뢰인이 옳은 사람이건 아닌 사람이건 이런 당위성을 떠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그래도 전화를 건다.




“변호사님. 전화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직접 저랑 어머니께 사과하지 않으면 처벌불원서는 없습니다.“


“네 역시 좀 그렇죠? 얘기는 전달해볼텐데...”


“아버지 성격에 저희한테 사과안할거에요.”


의뢰인의 변호인이라고 신분을 밝힌 내게, 의뢰인의 아들은 매우 친절하게 응대했다. 이렇게 전화줘서 고맙다며. 하지만 동시에 단호했다.


“뭐, 사람일은 모르는거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미팅때 만난 의뢰인의 성격을 볼때 쉽게 아내와 아들에게 사과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본인의 아들과 나눈 통화 내용을 짤막히 요약해 의뢰인에게 전달했다. 의뢰인은 ‘싸가지없는 놈이 감히 직접 사과하라고 했다고요?‘라고 내게 되물었다.


처벌불원서는 물건너간 것 같으니 다른 양형자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난 아쉬운마음에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처벌불원서가 가장 양형에는 유리하니, 선고기일 1주일 전까지 잘 생각해보시고 선택하라’고 안내했다.


그가 과연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미팅룸에서 봤던 역정내는 노인의 모습에는 분명 어딘가 불안, 공포, 어둠이 묻어있었다. 그가 부디 상처입힌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의 불륜을 잊어버린 그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