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뭐길래
화요일 오후.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저 한숨만 나오기 시작한다.
"대출을 연장하려고 하는데... 지방세 완납 증명서를 내래"
"그래서?"
"내가 450만 원 정도는 냈는데, 150만 원이 모자라서 네가 내주면 안될까?"
이제는 짜증낼 힘도 없다. 도대체 뭐하느라 500만 원 가까이 국세가 체납이 됐는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안돼. 돈은 못줘.'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번 달 월급으로 엄마가 달라고 하는 돈이 커버가 되는지 먼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한 뒤, '알았다'는 대답이 내 입밖으로 날아간다.
대신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에겐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답이 안나왔다. 우리 둘은 몇달 전 부터 수입의 50%를 저축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달엔 내가 그 50%를 채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도 나와 엄마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별 말은 안하겠지만 나는 또 그 앞에서 작아질게 뻔했다.
'차라리 엄마한테 차용증을 써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지금껏 대략적으로 계산만 해도 내가 빌려준 돈은 3,000만 원이 넘는다. 3,00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민사소송에서도 소액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로 '3,000만 원'이다. 이번에 대납한 국세와 생활비조로 자잘하게 빌려주었던 금액까지 합치면 4,000만 원에 달하리라.
처음엔 이정도로 금액이 커질줄 몰랐다. 대학시절 나는 우리 집이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룸 주인으로부터 '학생, 10개월 정도 월세 밀린거 알아요?'라는 문자를 받으면서 알게됐었다. 엄마한테 이게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엄마는 정말 태연한 얼굴로 '보증금에서 까면 되니 넌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답했다. 그 뒤론 용돈 같은건 내가 벌어 내가 쓰기로 작정하고 이것저것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벌어 내가 쓰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뭐가 됐든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 로스쿨 1학년 1학기때는 알바와 공부를 병행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공부에만 집중했다. 학비는 어찌저찌 장학금으로 버텼지만 생활비는 가족들에게 손을 벌렸어야만 했고, 3년 간은 엄마가 준 신용카드 한 장과 친척들의 지원, 그리고 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로 연명했다.
그와중에도 엄마는 '집이 넘어가게 생겼다'며 내 마이너스통장에서 2,000만 원가량을 모조리 빼갔다.
"지금 네가 해결 할 수 있는것만 고민해"
대학원때는 이런 상황에 힘들어하는 내게, 지도교수님의 저 한마디가 등불이 되었다. 그땐 고민해봤자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기에 무조건 집중해서 한 번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게 답이었다. 스트레스는 먹는 것으로 풀면서 열몇시간 가까이 앉아 공부를 했고 초조하긴 했어도 결국 초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젠 모든게 해결되겠지?' 내가 합격 후 이런 생각을 했던것 자체가 오만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바뀐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마이너스통장과 친척들로부터 긴급수혈을 했음에도 아직도 엄마는 '내년이면 상황이 나아진다'는 타령을 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들었던 그 말은 지금도 계속 엄마의 입가를 맴돌고 있었다.
내 벌이는 수습기간을 거치며 조금 나아졌지만 돈을 조금 모은다 싶으면 곧장 집에서 일이 터지기 일쑤였다. '차 할부금을 못내서', '세금을 못내서', '명의이전하려는데 비용이 필요해서'. 사유도 다양했다. 그래, 내가 돈을 벌고 지금껏 키워주신 노고가 있으니.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리 효도한다치고 해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서 '그래도 여유되면 꼭 갚아줘'라며 큰 탈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
엄마는 미안했던지 50만 원에서 100만 원씩 매달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한 두달 보내지 않기 시작했고 몇번 내가 '왜 안보내냐'라고 넌지시 묻긴 했지만 '돈이 없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더이상 묻기 싫은데다 분쟁이 되는 것 같아 몇달을 또 그냥 지나갔더니, 엄마는 어느새 단 한푼도 내게 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겠어. 너무 억울해."
"음...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아마도 넌 '네 미래가 저당잡혔다'는 느낌이 드는게 아닐까"
이런 사정을 남자친구에게 털어놨을때 그가 썼던 표현은 저랬다. 참 맞는말이다 싶었다. 한참 돈을 벌고, 돈을 모으는 재미와 쓰는 재미를 느껴야 할때인데. 버는 족족 빚을 갚거나 엄마에게 돈이 꼴아박히니 난 내 인생을 저당잡힌 느낌이었다.
"한번은 정리할 필요가 있어. 그건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해."
"나도 알아"
나도 안다.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가족이 뭐길래' 나는 이렇게 물러터졌는지 모르겠다. 오늘 세금을 대신 납부해주고 나서도 바로 후회했다. 안된다고 말해볼걸 그랬나.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떨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알았어'라는 말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그 돈은 아마 평생 못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어쩌면 엄마는 내 인생의 피고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엄마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면, 나는 소장에 '엄마,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래? 키워준건 고맙지만 내 미래는 어떻게 해?'라는 말을 쓰겠지. 그리고 엄마는 '나 요새 힘들어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 내년이면 해결돼'라는 답변서를 내놓을 것이다. 서로 같은 내용의 준비서면만 오갈 것이 뻔하다.
민사사건들은 3년이 걸리든, 5년이 걸리든 어떤식으로든 종결이 난다. 아무리 뱅뱅도는 사건인 것 처럼 보여도 변론기일은 다가오고 판사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내 인생에는 판사가 없다. 엄마와 나는 변론종결도, 판결선고도 없는 소송을 계속할 것만 같다. 그 끝없는 소송속에서 내가 마음 다치지 않고 그나마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