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 브리핑, 그 이후


브리핑룸에 서는 것만으로도 권력은 말한다.

지난 19일, 청와대 홍보수석이 춘추관 단상에 올라 언론사들에게 사실을 바로잡는 보도를 해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제기됐던 '이재명 당시 후보의 조폭 금품수수 의혹 보도'를 겨냥한 것이었다. 발언은 정중했다. 그러나 정중함이 압력을 지우지는 않는다.

권력의 언어는 의도와 무관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 해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말의 무게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자의 위치에서 나온다. 문제의 보도들이 심각한 팩트 오류를 담고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허위 보도는 마땅히 정정돼야 한다. 해당 언론사들이 자성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방송법은 명시하고 있다. 누구도 방송 편성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언론중재법 역시 정정보도를 청구할 절차를 별도로 두고 있다. 그 모든 제도적 통로를 건너뛰고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절차를 우회하는 선택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남는 인상은 하나다.

한국 정치에는 오래된 불문율이 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언론과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리하지도 말라. 이것이 단순한 처세술로 전해지는 게 아니다. 권력자가 언론에 다가설수록, 그것이 소통인지 개입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독립은 형식으로만 남는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구조적 장치, '제4부'다. 그 기능은 거리에서 나온다. 거리를 좁히는 주체가 권력 자신일 때, 그 거리는 회복되기 어렵다. 대통령을 둘러싼 보도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안이 민감할수록, 권력은 더 조심해야 했다.

오보를 낸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성을 촉구하는 주체가 청와대여서는 안 된다. 규범이란 법으로 강제되기 이전에, 스스로 지켜져야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언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어느 언론학 박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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