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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크레용 Sep 16. 2022

2학기 학부모상담

조금만 준비하면 오히려 기다려지는 시간.


 새 학기가 시작된 것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새 학부모 상담 시즌이 시작되었다. 1학기 학부모 상담은 학부모가 아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상담이었다면, 2학기 학부모 상담은 선생님이 그동안 보아온 우리 아이에 대해 들을 내용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당부할 것이 없는 학생의 학부모라면 1학기 때 보다 2학기 상담이 더 중요한 상담이 될 수도 있다.


첫 아이가 저학년 일 때는 매번 학부모 상담이 긴장이 되어 선생님이 주도하는 질문에 그저 성실하게 대답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그런데 왜 지은 죄도 없이 나만 긴장을 하고 상담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분명 나의 엄마의 영상 때문이다. 엄마는 학부모 상담 때가 되면 낯선 엄마로 학교에 왔었다. 평소에 집에 있었는지도 모를 정장에 구두를 신고 미용실이라도 다녀온듯한 머리와 완벽한 화장을 하고서는 손에는 무엇인가를 무겁게 들고 나타났다. 그때야 그런 시대였다고 치지만 나는 왜 긴장한 거지? 그래서 아들이 고학년에 접어들 때부터 마음을 달리 먹었다. 아들 잘 키워 학교생활 문제없이 잘 하게 보내 놓았으니 긴장할 것 없이, 내가 궁금한 아들의 학교생활을 제대로 물어보고 오기로 했다. 그제서야 학부모 상담을 교육 전문가의 객관적인 의견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학부모 상담만 슬기롭게 준비해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6년 동안 6명의 전문가에게 내 아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볼 수 있었는데 긴장감으로 흘려보낸 저학년의 상담 시간이 뒤늦게 아쉽기까지 했다.




최악의 상담


10번이 넘는 아들의 초등학교 상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나쁜 상담은 3학년 1학기였다.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학기 시작 전부터 반복된 유산으로 인해 근무상태와 컨디션이 나이스하지 못하셨었다. 그런 선생님과의 상담이라 나도 어떤 방향을 취할지 고민이 되긴 했지만 우리 아들의 피해 사실은 없었으므로 그냥 평소와 같이 상담을 하고 와야겠다 싶었다. 약속한 상담 시간에 맞춰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이 수업하는 나직한 책상에 큰 몸을 구겨 넣으며 마주 앉아 상담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학부모 상담은 공식처럼 반복되는 흐름이 있다. 아이가 잘하는 부분 칭찬, 친구관계, 수업태도 등을 알려준 다음 한두 가지 당부를 한 뒤 상담은 마무리된다. 늘 그래왔듯 10분 정도 아들의 칭찬과 수업태도 등을 들으며 상담이 마무리가 되어갈 때 즈음, 선생님께서 당부를 시작하셨다. 아들이 책상 정리와 사물함 정리가 잘 안된다는 고 하시며 아이들의 책상이 줄지어진 쪽으로 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 가 00이 자리인지 아시겠죠?" 깨끗한 책상들 가운데 마구마구 흐트러진 자리가 보였다. 교과 서서 두세 권이 널브러져 있고 필기도구, 구겨진 쓰레기까지 그 책상의 상태는 누가 봐도 아이가 종소리를 듣고 정리 없이 떠난 자리는 아니었다. 드라마틱 한 상담 시간을 위해 누군가 과장되게 어지럽혀둔 상태였다. 보통 3학년 정도가 되면 정리를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책상 서랍에 몽땅 처박아 버리지 그렇게 독보적으로 책상 위에 어질러 두고 집에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쇼에도 별말을 하지도 못하고 그냥 집에서 다시 한 번 잘 가르치겠다고 문을 닫고 교실을 나오는 순간 정신은 아직 멍한 상태였지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손이 먼저 느낀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생님의 폭언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학부모 항의가 거세지자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다른 학부모들에게까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듯했다.


그 날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 이런 상태의 담임과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을 아들과 대화를 했다. "학교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니?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야. 선생님은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나빠도 3-4년이면 다른 학교로 떠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선생님의 잘잘못에 집중하지 말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어" 다음 학년부터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남은 임기 2년 동안 담임에서 제외되었다.







최고의 상담


아들이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은 지금까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4학년 1학기 상담답게 학부모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크게 할 말이 없지만 아들의 초등 생활 동안 담임선생님들께서는 아들의 글씨와 주변 정리를 당부하셨었다고 이번에도 그런 점이 혹시 문제가 되고 있는지 여쭤보았다.


" 어머니,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들이 글씨 예쁘게 쓰고 정리 잘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그런 부분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지도해야 하는 부분이니 저에게 맡겨주세요." 이다지도 당연한 책임감을 가진 선생님이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이상하게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가 학교의 책임을 다하는 상태는 정말 아름다웠다.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아도 집에서 아이를 다그치지 말라고 하셨다. 아이와 선생님과의 숙제가 엄마에게 내준 것은 아니니 그 역시 선생님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정말로 그렇게 하셨고 한 학년 내내 아들을 선생님에게 오롯이 맡길 수 있었다.







슬기로운 상담 생활



2학기 상담은 학부모에게 금쪽같은 시간이다. 현재 시점의 내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객관적인 교육적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교육 전문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지난 한 학기 동안 충분히 내 아이를 지켜본 상태이기 때문에 1학기 상담 때 보다 더 정확한 평가를 해줄 준비가 되어있다. 상담하고 싶은 항목을 미리 준비해 두면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슬기로운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1. 학교에서의 내 아이에 대해 알아보자.


부모가 아는 아이와 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집에서는 몇 마디 하지도 않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수다쟁이일 수 있고, 동생에겐 사탕 하나도 목숨을 걸면서 친구들에게는 세상 너그러운 아이일 수 있다. 학교와 가정에서의 성격차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커진다. 그 차이의 정도를 알아본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집에서는 이런 이런 성격이에요. 학교에서 우리 아이 성격은 어떤가요? "




2. 1학기 통지 표의 성적 평가에 대해 꼭 물어보자.


초등학교 통지 표에서 교과 평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수, 우, 미, 양, 가 시대는 벌써 끝이 났다. 그나마 이해 가능했던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 요함 마저 사라져버렸다. 지금 아이들 통지 표는'~~~ 할 수 있음' '~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음' 과같이 아주 구체적이고 긴 문장으로 되어있다 보니 우리 아이의 수준을 선생님이 어느 정도로 평가한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요즘 통지 표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어서 부족함, 노력 요함 같은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어, 영어, 수학 정도는 집에서도 엄마가 어느 정도 수준을 가늠할 수 있지만 나머지 교과는 내 아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가능하다면 1학기 통지 표를 들고 상담을 하며 과목 과목 여쭤보는 것이 좋다.


"선생님. 우리 아이 과학을 이렇게 평가해 주셨는데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


" 사회 과목에서 이렇게 평가해 주신 것은 우리 아이가 잘 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3. 선생님이 지켜본 내 아이의 장단점을 물어보자.


담임 선생님은 엄마와 달리 아이들에게 집착도 기대도 없다. 부모의 감정이 배제된 상태에서 바라본 내 아이의 장점과 단점을 물어보자. TV 프로그램들에서 성공한 유명인들의 과거 담임 선생님들을 찾아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 유명인이 된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도 가능성이 보였었는지 선생님께 물어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선생님은 그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일 뿐인 아이에 대한 재능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 아이의 장단점을 물어볼 때는 너무 포괄적으로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묻기보다는 엄마가 궁금한 영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더 정확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어떠 과목을 가장 좋아해요?" "학교에서 제일 잘하는 활동은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 아이가 특히 힘들어하는 과목이 있을까요?" " 학교에서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아이와 상담 후 대화.


상담을 다녀오면 차를 만들어 마주 앉아 학교에서의 상담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아이와 대화를 했다. 상담에서 들은 칭찬들을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잘 하고 있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선생님이 느끼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다. 부족한 부분을 이번 기회에 같이 고쳐 볼 것인지, 조금 더 자란 후에 고쳐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 단점은 가지고 살아가도 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평가가 아이가 생각하기에 얼마나 적당한지 들어보았다. 이 대화의 목적은 오직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단점을 고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점을 고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잔소리들을 달고 살더라도 상담 후 대화에서는 그런 잔소리는 삼가고 좋은 의도만 담아 대화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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